화제의 신간 [사상의 거장들]-40년전 유럽과 40년후 한국

젊은 보수에게 바치는 책 "그들은 어떻게 세계를 속였던가?"

박정자 칼럼 | 최종편집 2017.06.13 16:0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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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의 신간: 사상의 거장들- 피히테, 헤겔, 마르크스, 니체>소싯적에 ‘운동권 물’ 좀 먹어 봤다면...


박정자 /상명대 명예교수


1970~80년대 권위주의 정권 때 대학을 다니면서 ‘언더서클(지하동아리)’을 기웃거려 본 50~60대들이라면, 마르크시즘 서적을 함께 읽고 토론하는 자리에서 반문이 허용되지 않는 분위기에 답답함과 당혹감을 느껴 본 적이 한두 번쯤 있을 것이다. 󰡔사상의 거장들󰡕은 바로 그런 분위기에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음을 속시원히 설명해 주는 책이다.

논리학에 ‘크레타 사람의 역설’이라는 것이 있다. 크레타 사람이 말했다. “크레타 사람은 거짓말쟁이다.” 이 말이 참이라면, 이것을 말한 그 크레타 사람은 거짓말쟁이가 아니므로 이 문장은 동시에 거짓이어야 한다. 이 말이 거짓이라면, 그 크레타 사람은 거짓말을 했으므로 이 문장은 동시에 참이어야 한다.

사회주의 중국의 문화대혁명기(‘문혁’, 1966~76), 마오쩌둥(모택동)이 내건 문혁의 금과옥조는 ‘반항함이 옳다(조반유리造反有理)’였다(320쪽 그림 참조). 그렇다면, 이 구호를 내건 마오이즘과 문혁에 대해서도 이의를 제기하거나 저항해도 좋은가? 누구나 다 아는 얘기지만, 이는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논리적으로 거짓인 구호, 현실적으로 비참한 중국 인민의 현실 앞에, 프랑스 공산주의자들을 비롯한 서유럽의 신좌파(New Left) 지식인들은 침묵했다. 일찍이 저자 글뤽스만은 “철학자는 성 밖의 진실을 소리 높여 외치는 카산드라가 되어야 한다”고 했다. 전체주의의 인권 탄압 현실을 대놓고 비판하지 못하는 철학은 직무유기를 하는 것이고, 이는 그들이 지적으로 무뎌져 있기 때문이라고 글뤽스만은 지적한다. 󰡔사상의 거장들󰡕은 이러한 지적 둔감성의 근원에, 피히테 헤겔 마르크스 니체 등 이름만으로도 사람을 주눅들게 하는 ‘사상의 거장들’(!)이 있다며 직격탄을 날린다. 그리고 이러한 통렬한 비판이 결국 1980년대 이후 동독과 소련을 비롯한 동유럽 사회주의 블록의 몰락을 촉발하는 기폭제가 되었으니, 글뤽스만은 그 자신의 말대로 ‘철학의 카산드라’가 된 셈이다.

󰡔사상의 거장들󰡕은 1977년에 프랑스어 초판, 1980년에 영역판(Master Thinkers)이 나왔다. 번역자 박정자 교수는 영역판이 나오기 전인 1978년에 이 책 국역을 󰡔주간조선󰡕에 연재한 바 있다. 한국어 완역 단행본으로 나오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프랑스어 원저에는 주석(미주)에 번호와 정확한 위치가 없으나, 국역판은 일일이 주석 자리를 표시하고 번호를 매겼다. 원저에 없는 도판들을 책 내용의 흐름을 따라 적소에 첨가해 이해를 높였다. 유럽, 특히 독일과 프랑스의 근현대사와 지적 전통이 버거울 독자들을 위해 책머리에 35쪽 분량을 역자 해제(‘옮긴이의 말’, 7~35쪽)를 마련했다.


‘이념의 사기꾼들’이 된 독일 사상의 거인들

책 앞표지에 찍힌 네 사람의 얼굴에, 공부 좀 해 본 사람이라면 가슴부터 뛰기 시작할지도 모른다. 피히테, 헤겔, 마르크스,니체 − 게다가 책 제목, ‘사상의 거장들’이라니!

그러나 제목 바로 아래 찍힌 부제와 뒤표지 헤드라인들은, 미안하지만 이러한 순진한 기대를 깡그리 배반한다. “그들은 어떻게 유럽과 세계를 속였는가”, “그들은 이념의 사기꾼들이었다.”

이 책이 ‘네 사람의 에이스(A’s)’(제2부 해당 타이틀, 153쪽. 기초적 전기사항은 435~437쪽)라고 부르는 이들에 대한 비판을 이해하려면 당연히 이 네 사상가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는 필수다. 각 사상가에 할애한 절들의 제목은 그들 사상의 요지를 뽑아 효과적으로 비꼬고 있다. “왜 나는 혁명적인가”(피히테), “왜 나는 박식한가”(헤겔), “나는 어떻게 숙명이 되었는가”(마르크스), “나는 어디를 통해 모든 것 위에 올라가게 되었는가”(니체). 네 사람 모두 독일(정확히는, 1870년에 이르러서야 독일로 통일되는 지역)인인 것이 우연의 일치인 것만은 아니다. 책은 독일을 서슴없이 ‘파시즘의 본거지’(84)라고 단정하는가 하면, 19세기 독일 관념론이라는 지적 전통을 ‘독일병(病)’(166쪽~ )이라며 싸잡아 비난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렇다고 이 책이 유대계 프랑스인의 민족감정 섞인 반(反) 독일론인 것만도 아니다. 자국 프랑스혁명기의 대학살들(예를 들어 9월 학살, 414~416쪽), 심지어 혁명의 부산물인 나폴레옹의 대두와 부르주아 독재(420쪽~ )까지도 파시즘적 현상으로 여지없이 비판하고 있으니 말이다(거꾸로, 독일인인 헤겔이 예나에 입성하는 나폴레옹을 보며 “저기 세계정신이 지나간다!”며 찬탄했던 것과 비교해 보라! − 194쪽 그림).

결국 문제는 파시즘, 전체주의이다. 나치와 공산주의는 현실에서 견원지간이었지만, 글뤽스만의 돋보기 아래 히틀러와 스탈린과 마오쩌둥(그리고 역사상의 수많은 식민주의와 독재정권들)은 ‘파시즘’이라는 이름 아래 하나다. 더욱 경계할 것은, 파시즘의 이 모든 광기가 이성, 발전, 법이라는 이름 아래 행해질 때이다(417쪽). 반인륜적인 광기 또는 광신이 이성의 탈을 뒤집어씌운 원죄가 바로 이들 네 명 ‘사상의 거장들’에 있으며, 이성의 탈을 썼기에 역시 이성을 등대로 표방하는 지식인 그룹들이 동시대 파시즘의 만행을 고발하는 데 머뭇거릴 수밖에, 차라리 둔감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

라블레, '반지', 소크라테스 − 만만찮은 지적 도전

󰡔사상의 거장들󰡕의 지적 도전 첫 번째. 본문은 프랑스 16세기 소설가 프랑수아 라블레(François Rablais, 1494~1553)의 󰡔가르강튀아󰡕 이야기로 시작한다. 루이 필리프의 왕정복고기를 풍자한 화가 도미에(Honoré Daumier)의 그림(1831) 속, 모든 것을 먹어치우는 거인 가르강튀아 말이다. 󰡔가르강튀아󰡕 연작의 알레고리를 글뤽스만은 20세기 중국 사회주의와 효과적으로 매칭한다. 소설 속 텔렘(Thélème) 수도원의 모토 ‘네 맘대로 하라’는 문화대혁명의 ‘반항함이 옳다’의 알레고리이다. 파뉘르주의 수도사는 단 하나, ‘네 맘대로 하라’라는 규율만을 받았으나, 결국은 한 사람이 제안하면 모든 사람이 일사불란하게 똑같은 일을 하게 되는 패러독스에 다다른다. ‘반항함이 옳다’고 했으나, 정작 반항하라고 명령하는 그 권력에 대해서만은 반항이 허용되지 않는 역설 말이다.

지적 도전 두 번째. 니체 비판은 당연히 바그너 비판으로 연결된다. 나치즘(그리고 그 만행의 하나인 홀로코스트)의 길을 예비한 작곡가로 흔히 지목되는 바그너의 오페라/악극 중에서도 󰡔반지󰡕 3부작은 책의 제1부와 뒤의 니체 비판에 필수적이다. 제1부에서, 전체주의(󰡔반지󰡕의 보탄Wotan에 해당)가 힘을 얻는 세 가지 방법 중 하나가, 우직하고 힘세고 선하되 무지한 사람(즉, 지크프리트)을 이용하는 ‘지크프리트의 길’이다(115쪽). 이 아날로지는 니체 비판에서, 󰡔반지󰡕 전체(즉, 󰡔라인의 황금󰡕부터 󰡔신들의 황혼󰡕까지)를 관통하는, ‘근대적 개인’ 지크프리트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알레고리로 되풀이된다(395쪽~ ).

지적 도전 세 번째. 라블레 소설 중 둘(󰡔제3서󰡕, 󰡔제4서󰡕)의 주인공 파뉘르주(Panurge)는 철학자 소크라테스의 알레고리이다. 자유롭도록 태어난 인간이 실제로는 자유롭지 못하게 되어 가는 과정을 그 사회에서 유일하게 보고 있는 사람이 파뉘르주/소크라테스이다. 공동체 구성원 중 유일하게 전체주의를 꿰뚫어 보고 전체주의화(化)에 저항하는 파뉘르주/소크라테스는 어떤 의미에서 혁명가와도 같다(136쪽). 레닌이나 카스트로 같은 ‘직업혁명가’ 말고, 혁명이라는 말의 순수한 본래 뜻에서이다. 그러나 (마치 카산드라의 숙명과도 같이) 아무도 이들의 말을 들어주지 않으니 소크라테스적 혁명은 실패할 수밖에 없고, 소크라테스는 끝내 죽음을 맞고, 이를 의연하게 받아들인다(122쪽 그림 참조). 파뉘르적/소크라테스적 방법은 불가능하다(123쪽~ ). 푸코(Michel Foucault)나 사르트르(Jean-Paul Sartre) 같은 사상가들의 이름을 언뜻언뜻 맞닥뜨리는 것은 덤이다.

[사상의 거장들] - FAQ와 두줄 답변

(Q1) 사상의 거장들, 또는 불후의 고전들에 대해 너무 무례한 것 아닌가요?

(A) 거장들의 고전은 문장이 훌륭하거나 이론이 정밀하다는 등의 뛰어난 점이 확실히 있지만, 그것들의 내용까지 모든 시대에 통용될 진리인 것은 아닙니다. 현재(그리고 예측가능한 미래)의 올바른 가치를 기준으로, 배울 것은 배우되 비판할 것은 비판하는 것이 고전의 참다운 현대적 수용입니다.

(Q2) ‘유대계 프랑스인’이라는 작가의 출신 때문에 편파적으로 독일에 적대적인 것은 아닌가요?

(A) 역사적으로 프랑스가 독일(그리고 해협 건너 영국)과 사이가 나빴던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를테면 일본의 정한론(征韓論)이나 중국의 동북공정을 한국인이 비판한다고 해서 그것을 편파적이라 할 수 있을까요?

(Q3) 포퍼 󰡔열린사회와 그 적들󰡕의 데자뷔 느낌이네요.

(A) 역시 전체주의 비판인 카를 포퍼(Karl Popper)의 이 책(1945)은 플라톤, 헤겔, 마르크스를 비판하고 페리클레스, 소크라테스, 칸트를 옹호하니까, 과연 세 명(헤겔, 마르크스, 소크라테스)이 󰡔사상의 거장들󰡕과 겹치네요. 그만큼 그들이 비판받거나 지지받을 이유가 있다는 뜻이겠지요?

(Q4) 하지만 피히테는 민족주의자였고, 마르크스의 유물론은 헤겔의 관념론을 전복했고, 니체도 안티헤겔주의자 아닌가요? 이들을 한통속으로 싸잡아 비난할 수 있을까요?

(A) 동아시아 침략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나 2차대전을 일으킨 도조 히데키도 일본 입장에서는 민족주의자였지만 인류에게는 죄인이지요? 청나라와 일본은 똑같이 한반도를 놓고 전쟁까지 했지만, 그렇다고 한쪽이 불의이고 다른 쪽은 정의가 되나요?

(Q5) 내용도 문장이 너무 어려워요. 프랑스 책들은 다 그런가요?

(A) 아픈 지적이네요. 모든 책이 모든 사람들을 똑같이 만족시킬 수는 없으니, 지적 도전의 좋은 기회로 삼으시기를 권합니다.

(Q7) 그래도 배경설명이라든가 이런 것은 좀 있어야 하잖아요.

(A) 미흡하나마 꽤 많은 분량의 역주를 별색으로 넣었습니다. 전체적으로는 맨 뒤 ‘역사의 종말’(401~431쪽)로 역사적 배경을 파악하고, 이어서 상당히 긴 옮긴이 해제(7~41쪽)를 읽은 뒤 본문에 도전해 보기를 권합니다.

(Q7) 200년 전 사람들에 대한 40년 전의 비판이라니, 참 낡은 얘기네요.

(A) 첫 번째 FAQ에서도 말했지만, 과거의 굵직한 논쟁에서 비판적으로 학습할 줄 알아야 미래가 밝아지는 겁니다. 그래서 이 책을 이 땅의 ‘젊은 보수’들에게 바치고자 합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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