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엔아! 유엔아! 그래서 어쩌라구?
    “북한은 외부 지원 필요한 식량 부족국가”

    이 덕 기 / 자유기고가

      “유엔 식량농업기구 FAO는 9일 발표한 ‘작황 전망과 식량 상황’ 2분기 보고서에서 북한을 외부 지원이 필요한 37개 식량부족국가에 포함했습니다. 식량농업기구는 지난해 곡물 생산량이 전년보다 부분적으로 회복됐지만 주민들의 수요를 충족시키기에는 불충분하다며, 대부분 주민이 계속해서 식량 부족을 겪을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그러면서 올해 북한이 외부 지원이나 수입으로 충당해야 할 식량 부족분은 51만t 에 달한다고 밝혔습니다....” 

      엊그제 언론 보도 내용의 일부다. 하늘의 높이나 바람의 방향, 온도의 변화 등으로만 계절이 바뀌거나 시절이 닥치는 걸 알게 되지는 않는다.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이런저런 언론 보도나 인구(人口)에 회자(膾炙)되는 말들을 접하면, ‘때가 됐음’을 직감(直感)한다. 
      필경 얼마 지나지 않아 북녘에 극심한 가뭄이 들었다는 소식이 전해질 것이고, 뒤이어 며칠 후에는 물난리 장면이 TV뉴스를 장식하는 게 관행(慣行)이었다. 더불어서 유엔을 위시한 국제사회라는 데서 ‘인도주의’ 타령과 함께 ‘인도적 지원’이라는 듣기에도 감격스러운 합창이 들려올 것이다. 
      물론 남녘에서도 이에 대한 맞장구가 울려 퍼지곤 했다. 특히 올해는 유엔과 국제사회의 타령에 앞서거니 선창(先唱)이 나올 확률이 높고, 그 맞장구라면 소리가 어느 때보다 더욱 거세질 게 뻔하지 않은가. ‘북악(北岳) 산장’에 드리워진 달빛을 보면...
  •   “북한이 언제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은 상태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그들을 미친 정권이라고 부르면 안 된다. 그들은 누구도 그들이 존속하길 바라지 않는 적대적인 세계 속에서 최소한 단기적으로는 매우 영리한 판단을 거듭하면서 효과적으로 권력을 유지해온 집단이다...” 

      “영리한 판단”이기보다는 “교활한 책략”이고, 그 책략의 교활함을 더더욱 돋보이게 하는 건 국제사회 및 남녘의 헛똑똑한 이른바 ‘인도주의자’들이다. 그러하니 북녘의 돼지새끼와 그 언저리들에겐 “가뭄과 물난리, 그리고 돌림병까지도 축복(祝福)”이 된지 오래다. 
      북녘 주민의 굶주림은 이미 세습독재의 통치(統治) 도구가 되어버렸고, 재난(災難) 이야말로 주민들을 더욱 쥐어짤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된다. 유엔과 국제사회의 얼간이들에게는 “맡겨 놓았던 것 내 놓으라!”는 강짜를 부려도 괜찮은 ‘갑’(갑)이 될 수 있다. 
      ‘일석이조’(一石二鳥)라던가 ‘일거양득’(一擧兩得), 또는 “또랑 치고 가재 잡고” 등의 조상님네들 말씀을 떠올리게 된다. 인민들의 신음을 앞세워 유엔과 국제사회의 눈먼 돈과 식량을 떳떳하고 당당하게 뜯어내 착복(着服)하면서도 거의 비난이나 욕을 듣지 않는 재주가 참으로 용하다.

      그렇기 때문에 이미 “핵무기와 미사일 개발·제조에 들어가는 막대한 자금”이니, “세습독재의 우상화와 호화·사치에 쓰이는 엄청난 비용” 등등 운운하는 건 너무 식상(食傷)하다. 하지만...

      “최근에 진행한 전략무기 시험들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시험 발사할 시각이 멀지 않았다는 것을 확증해줬다. 뉴욕까지 거리는 1만4000㎞ 정도이고 미국의 모든 곳은 우리(北)의 타격권 내에 들어 있다...”

      글쎄, 이 대목에 이르면 유엔과 국제사회의 리더격을 자임하는 양키나라의 속내가 궁금해진다. 올해도 유엔은 북녘에 대한 이른바 ‘인도적 지원’을 그저 그렇게 반복하게 될런지... 이제는 깨닫고도 남을 만하지 않은가.
      이른바 북녘에 대한 ‘인도적(人道的) 지원’이라는 건 돼지새끼의 ‘국제적 도적(盜賊)질을 용인(容認)해주는 헛발질’, 즉 ‘인도적(認盜的) 헛발질’에 불과하다는 검증된 사실을 말이다. 그런데...
      
      “우리 국민의 쌀 소비량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는 가운데 정부와 민간이 보유한 현재 쌀 재고량이 1970년대 이후 역대 최고치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2017년 현재 쌀 재고량은 모두 351만 톤이다. 이중 정부양곡은 233만 톤, 민간 재고는 118만 톤에 달한다. 이는 정부의 쌀 재고량 통계 작성이 시작된 1970년 이후 역대 최고치다...” 

      요즘 북녘에 쌀 퍼주고 싶은 유혹을 느낄 분들이 많을 듯도 하다. 그리고 이런 상황에서 북녘에 쌀을 보내면 안 된다고 하면, 그 분들은 옛 이야기에 나오는 ‘놀부’ 취급을 할 것이다. ‘냉혈적 반북주의자’(冷血的 反北主義者)라는 지탄도 당연히 뒤따르지 않겠나. 

      그러나 “쌀이 남는다고 북녘에 준다면 배곯는 북녘 동포들에게 돌아간다는 보장이 있느냐?”는 케케묵은 우문(愚問)의 답은 “없다”라는 게 정설(定說)이 된지 오래다. 또한 누구 뒷주머니나 입에 들어가던 간에 쌀을 북녘에 보낸다고 해서 핵미사일이 날아다니지 말라는 확실한 보장도 없지 않은가. 

      결국 현 상황에서는 ‘놀부 심뽀’, 즉 ‘냉혈적 반북주의’를 버리거나 거부(拒否)하면 할수록, 북녘 동포가 세습독재의 ‘영원한 노예’ 상태로 남게 되는 시간이 길어질 수 있다는 역설(逆說)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다시 한 번 북녘 세습독재 유지·연장의 묘수(妙手)를 갈파한 현자(賢者)들의 말씀을 적는다. 

      “사회가 빈곤하면 빈곤할수록 정권을 바꿀 에너지가 사회내부에서 생성되지 못한다. 반면 정권은 일정한 무력(武力)으로 어떤 농민 반란도 진압할 수 있다.”

      “가난하면 적(敵)을 선택할 수가 없다. 우선은 가난에 지배당하고, 결국에는 운명에 지배당하게 된다.” 
    <더  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