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선 교사들 “투표로 뽑힌 교장이, 눈치 안 보고 직무수행 할 수 있겠나”
  • 전교조 깃발.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전교조 깃발.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문재인 정부가 '교육민주주의 회복'을 교육 정책의 핵심기조로 내세우고 있는 가운데, 교육부가 '교장선출보직제' 등 그동안 전교조가 주장해온 정책을 추진 중이라는 언론보도가 이어지며 교육계가 술렁이고 있다.

    앞서 문화일보는 5일 '교장도 인기투표로? 학교현장 투표바람 정치판 우려' 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교육부가 교육민주주의 회복을 명목으로, 교장선출보직제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교육부는 보도내용과 관련해 '검토 한 적이 없다'고 일축했으나, 교육계에서는 친(親)전교조 성향의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현실을 고려할 때, 언제든 실현될 수 있는 사안으로 보고 있다. 정부가 '선출보직제'를 시행하지는 않더라도, 현재 시행중인 교장공모제를 확대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교장선출보직제는 교사들이 투표를 통해 교장을 직접 정하는 제도다. 현재는 교육감이 공립 초·중·고 학교장 후보자를 지명하고, 대통령이 임명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전교조는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연일 교장선출보직제 도입을 주장하면서 정부에 대한 압박의 수위를 높이고 있다. 전교조가 ‘촛불의 명령’을 앞세워 제도 도입의 당위성을 역설하면서, 이에 대한 교육현장의 우려 역시 높아지고 있다.

    교육계는 선거를 통해 교장을 임명하게 될 경우 ▲교원 생태계 혼란 ▲교육의 정치화 ▲교장 지휘권 상실 등 부작용이 매우 크게 나타날 것으로 전망했다.

    교장으로 승진할 수 있는 문호를 넓히고, 수직적인 교원 생태계 구조를 바꾸겠다는 취지로 도입한 교장공모제가, 선출직 교육감들의 논공행상 도구로 전락하는 등 오히려 교육현장의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상황에서, 이보다 더 급진적인 교장선출보직제 시행은 무리라는 것이 교육계의 일반적인 견해다.

    교장공모제는 현재 일정한 자격 기준을 갖춰야만 교장에 임명되는 직급제·자격제 대신 자질평가로만 교장을 임명한다. 교원으로서 재직 경력 15년 이상의 평교사에게 교장직위를 개방하는 내부형과 교원 자격이 없는 특정 분야 전문가를 교장으로 초빙하는 외부형으로 구분된다.

    내부형 교장공모제의 경우, 속칭 진보교육감들이 전교조 소속 교사들의 승진을 위한 도구로 이용하면서, 교육계 내부에서 적지 않은 잡음을 일으켰다.


    ◆교육의 정치화 우려

    '교장선출보직제'가 교육현장을 정치투쟁의 장으로 오염시킬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관계자는 "선출이라는 것을 통해 민주성만을 내세우다 보면 전문성이나 학교 현장의 안정성이 저해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선출보직제는 교직 사회를 장악하기 위한 정치적 도구로 악용될 수 있다. 학연, 지연 문화가 남아있는 한국 교원 사회에서 시행되는 교장선출제는 악용될 가능성이 크다"고 비판했다.

    같은 이유로 학연, 지연, 자기사람 심기 등의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는 내부형공모제 확대에도 반대했다.

    교총의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내부형공모제로 교장이 된 교원의 약 84%는 전교조 소속이었다.

    17개 시·도 교육청 중 전교조 출신이나 친(親)전교조 성향의 ‘진보교육감’이 재직하고 있는 곳은 13곳으로, 이들 지역에서는 내부형공모제가 '진보교육감들'의 코드·보은 인사를 위한 수단으로 변질됐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심심치 않게 나오고 있다.


    ◆교장 권한의 실추...해외 사례도 없어

    교육학을 전공한 성균관대 A교수는, 교장을 투표로 뽑는다면, ‘학교 관리자’로서 교장의 권한이 크게 약화될 것으로 내다봤다.

    A교수는 “‘유권자’인 교사의 마음을 얻어 선택을 받아야 하는 교장이, 과연 학교에 대한 관리·감독 직무를 성실히 수행할 수 있겠느냐”며, 반대의 뜻을 분명하게 밝혔다.

    그는 “선진국의 사례를 보더라도 '교장선출보직제'를 도입한 경우는 없다”며, “현재 시행되고 있는 내부형공모제도 지나치게 자격조건을 낮춘 측면이 있다”고 꼬집었다.

    “미국과 독일 모두 교장이 되기 위해서는 일정한 자격을 갖춘 뒤 공모할 수 있다. 한국처럼 평교사가 아무런 훈련 과정 없이 교장이 되는 사례는 찾기 힘들다. 학교가 누군가의 직무 연수 공간이 돼서는 안 된다.


    ◆교원 생태계 '혼란'

    교장선출보직제 도입에 대한 교육계의 반응은 대체로 부정적이다.

    한 교육계 관계자는 “이 제도는 그 동안 교장으로 승진하기 위해 온갖 수고와 희생을 마다하지 않은 현장교원들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다”면서, “기존 시스템이 갑자기 붕괴될 경우 심각한 혼란이 예상된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교장이 되기 위해 20년 30년 준비해온 사람들이 한둘이 아는데, 이들은 어디서 보상을 받을 수 있느냐“고 되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