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정된 70분 훌쩍 넘겨… 潘, 한미정상회담 관련 전략·전술 자문
  • ▲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이 2일 청와대 본관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오찬을 함께 하며 외교에 관해 자문하고 있다. ⓒ뉴시스 사진DB
    ▲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이 2일 청와대 본관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오찬을 함께 하며 외교에 관해 자문하고 있다. ⓒ뉴시스 사진DB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이 문재인 대통령을 만나 110분간 열변을 토했다.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관련 '자충수'로 한미 관계 파탄을 자초하고 있는 문재인 대통령을 상대로 해법과 수습책을 자문한 것으로 보여, 향후 새 정부의 경망스런 외교 행태가 조금이라도 개선될지 주목된다.

    반기문 전 총장은 2일 청와대 본관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오찬 회동을 가졌다. 두 사람의 만남은 애초 오찬을 포함해 70분 예정의 일정으로 돼 있었으나, 예정된 시간을 훌쩍 뛰어넘어 2시간 가까이 진행됐다.

    이날 회동에서 반기문 전 총장은 다양한 외교 경험과 사례를 들어 자문에 응한 것으로 전해졌다. 문재인 대통령은 주로 경청하면서 반기문 전 총장의 진정성 있는 자문에 깊은 인상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오찬 회동이 끝난 뒤 반기문 전 총장은 본관 2층 백악실 앞에서 작별 인사를 나누자며 문재인 대통령이 멀리까지 나오지 않을 것을 부탁했지만, 문재인 대통령은 직접 1층 현관 앞까지 나아가 반기문 전 총장을 배웅했다.

    이처럼 진중한 대화를 이끌어낸 계기는 무엇일까. 회동에 배석한 박수현 청와대 대변인은 "당면한 외교현안에 관한 심도 깊은 대화를 나눴다"고 설명했다. 당면한 외교현안이란 당장 이달말로 예정된 한미정상회담을 앞두고 불거진 사드 관련 갈등일 수밖에 없다.

    미국에서 막 귀국한 반기문 전 총장은 미국 정치권의 분위기를 전했다. 반기문 전 총장은 "미국 조야에서도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높은 평가와 기대를 함께 하고 있다"고 의례적인 '립 서비스'를 한 뒤 "미국에서 주로 오바마 전 정부의 인사들을 만났지만, 한국 걱정을 많이 하더라"고 전달했다.

    평생을 외교관으로 생활한 반기문 전 총장의 수사법을 고려해보면, 미국 공화당 뿐만 아니라 민주당 인사들도 문재인정권의 정책에 대해 깊은 우려를 하고 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당장 지난달 31일 문재인 대통령을 만나 "미국 납세자들의 세금 9.23억 달러를 들여 한국에 사드를 배치하는데 논란이 생긴다는 게 놀랍다"고 우려한 딕 더빈 상원의원도 민주당 소속이다. 당적에 관계없이 미국 정치권이 문재인 대통령의 최근 행보를 우려하고 있다는 내용이 전달됐을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반기문 전 총장을 향해 "국내정치는 소통을 하면서 풀어가면 되지만, 외교 문제는 걱정"이라고 토로한 것도, 뭔가 일이 잘못 돌아가고 있는 것에 대한 심경을 가감없이 토로한 것으로 해석된다.

    결국 파국으로 치닫고 있는 한미 관계의 물꼬를 돌릴 방안으로, 이달말에 열릴 한미정상회담과 관련해 자문이 집중된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해 박수현 대변인은 "당연히 한미정상회담에 대한 조언이 여러 가지 있었다"면서도 "전략적으로 중요한 전술이라 공개하지 않는 게 좋겠다"고 말을 아꼈다.

    실제로 문재인정권의 최근 행보에 대한 미국 조야의 우려는 경계수위를 넘어 위험수위에 다다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미국 상원의 민주당 원내총무이자 예결위 국방소위 간사인 딕 더빈 의원은 지난달 31일 문재인 대통령을 만나 사드 논란과 관련한 우려를 전달했다.

    그럼에도 청와대가 자신의 우려를 국내에 전하지 않자, 직접 연합뉴스와 인터뷰를 갖고 문재인 대통령과의 회동에서 꺼냈던 자신의 지적을 가감없이 토해냈다. 이 자체가 정치적으로 대단히 의미 있는 행위가 아닐 수 없다는 관측이다.

    특히 "한국이 사드를 원하지 않는다면 그 예산(9.23억 달러)을 다른 곳에 쓰겠다"고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언급한 것은, 실제 그 발언이 문재인 대통령과의 회동에서 나왔느냐 여부를 떠나 우리나라 국민들에게 특정한 '시그널'을 보냈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지난 1991년 미군이 필리핀에서 전격 철수했듯이 한미 관계가 파탄으로 귀결되는 사태가 발생한다면, 그 책임소재가 누구에게 있는지를 미리 경고했다는 뜻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이처럼 한미동맹 자체가 위태로운 상황을 맞아 반기문 전 총장은 문재인 대통령의 의중을 물었고, 문재인 대통령은 "사드 조사는 전적으로 국내적 조치"라는 자신의 입장을 반복 해명한 것으로 보인다.

    반기문 전 총장은 이날 회동 도중 문재인 대통령에게 "주요 해외 언론과의 인터뷰를 잘 활용해, 대통령의 생각을 세계에 널리 알리는 게 중요하다"고 조언한 것으로 전해졌다. 문재인 대통령의 실제 진의가 그러하더라도, 국내정치를 겨냥한 그같은 뜻이 미국 조야에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지고 있지 않은 현실을 꼬집은 것으로 해석된다.

    정치권 관계자는 "미국의 유력 정치인이 '사드 배치 자체를 재검토할 경우, 한미동맹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의미의 경고성 발언을 하고 갔다"며 "한미동맹이 위태로운 가운데 맞이하게 된 한미정상회담인데, 이를 앞두고 반기문 전 총장이 토한 열변을 통해 문재인 대통령이 뭔가를 느끼고 앞으로 바뀔는지는 두고봐야 안다"고 유보적 태도를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