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승마선수 해외전지훈련...지난 3월부터 준비” 법정 증언 나와
  •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 로비에 이재용 사건 방청권 배부장소를 알리는 안내문이 설치돼 있다. ⓒ 사진 뉴시스
    ▲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 로비에 이재용 사건 방청권 배부장소를 알리는 안내문이 설치돼 있다. ⓒ 사진 뉴시스


    삼성전자가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파문이 불거지기 적어도 6개월 전인 지난해 3월부터, 마장마술 장애물 종목 등 국내 승마선수들의 독일 전지훈련을 계획하고, 이를 위해 해당 선수 및 부모들과 접촉한 사실이, 전직 삼성승마단 감독 겸 선수의 증언 및 현 삼성승마단 소속 선수의 특검 진술을 통해 확인됐다.

    18일 열린 이재용 부회장 등 삼성그룹 전현직 임직원에 대한 뇌물공여 등 혐의 15차 공판에서, 변호인과 특검은 삼성전자의 국내 승마선수 유럽(독일) 전지훈련 계획(함부르크 프로젝트)의 실체 여부, 삼성의 전지훈련 지원의 진정성 여부, 위 계획에 대한 당시 승마선수들의 기본적 인식, 승마계가 최순실과 박근혜 전 대통령과의 관계를 인지하게 된 시점 등을 놓고 한치의 양보 없는 공방을 벌였다.

    양 측의 주신문과 반대신문이 격화되면서 오전 증인신문 마지막에는 이 사건 심리를 맡고 있는 김진동 부장판사(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가 직접 나서, 증인 답변의 입증취지를 거듭 확인하는 장면도 연출됐다.

    이날 공판은 이례적으로, 증인으로 나온 최명진 전 삼성승마단 감독 겸 선수(현 OOO 승마단 감독)의 법정 증언과 함께, 최 감독의 아들이자 삼성승마단 선수인 최OO선수의 특검 참고인 진술조서 내용의 진위를 동시에 확인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오후 증인으로 출석한 이규혁 선수의 증언도 화제를 모으기에 충분했다.

    이규혁 선수는, 중학교 시절부터 장시호(최순실의 조카)씨를 알았고, 장씨와 친분을 쌓으면서 매우 가깝게 지냈지만, 장씨의 배후에 최순실씨가 있다는 사실은, 국정농단 파문과 관련한 뉴스를 보고서야 알았다고 진술했다.

    이에 대해 변호인단은, “장시호씨와 가깝게 지낸 이규혁 선수마저 그 배후에 최순실씨가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며, 이는 장시호의 배후에 김종 전 문체부 차관이 있고, 그 뒤에 최순실이 있다는 특검의 주장이, 막연한 추론에 바탕을 둔 억지에 불과하다는 점을 반증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변호인단은, 이규혁 선수와 장시호씨가 나눈 카카오톡 문자메시지의 내용을 바탕으로, 2015년 7월 ‘박근혜-이재용 2차 독대’ 당시, 장시호가 운영을 주도한 동계 영재센터를 지원하라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요구가 있었고, 이에 따라 삼성이 영재센터에 자금을 지원했다는 특검 측 주장은, 논리적으로 맞지 않는다고 항변했다.

    변호인단이 공개한 2015년 9월, 이규혁 선수와 장시호씨의 카카오톡 문자메시지를 보면, 두 사람은 영재센터에 대한 삼성의 지원계획이 무산되는 것 아니냐며 걱정을 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변호인단은, 만약 특검 측 주장대로 같은 해 7월 2차 독대과정에서 동계 영재센터 지원과 관련돼, 박근혜 전 대통령과 이재용 부회장 사이에 합의가 있었다면, 이규혁 선수와 장시호씨의 문자메시지 내용은 논리적으로 설명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삼성전자, 지난해 3월부터 함부르크 프로젝트 가동...지원 대상 선수 접촉

  • 황성수 전 삼성전자 전무. ⓒ 사진 뉴시스
    ▲ 황성수 전 삼성전자 전무. ⓒ 사진 뉴시스


    최명진 감독의 증언 및 최OO 선수의 참고인 진술에 따르면, 삼성은 지난해 3월부터 같은 해 10월 초까지 4차례에 걸쳐 최OO 선수 혹은 그 부친인 최명진 감독과 만나 함부르크 프로젝트 실행을 위한 협의 과정을 거쳤으며, 최명진 감독과 최OO 선수는 삼성의 지원 계획을, 실체가 없는 허위라고 생각한 사실이 없다고 밝혔다.

    실제 삼성은 승마선수 해외전지훈련 지원을 위한 회사 내부 품의서를 작성했으며, 최 선수의 독일 출국을 위한 항공권을 구매하고, 최 선수가 사용할 마필의 구매도 적극 검토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날 공판을 통해 새롭게 드러난 사실 한 가지는, 그 동안 의문을 자아냈던 삼성의 함부르크 프로젝트가 무산된 경위다.

    최 감독의 법정 증언 및 최OO 선수의 특검 참고인 진술을 종합하면, 삼성은 정유라 이외에 최OO 선수를 비롯 적어도 3명 이상의 선수를 추가 발굴, 독일 함부르크 전지훈련에 참여시키려고 했으나, 일부 선수가 전국체전 이후로 일정을 미루길 요구하면서 출국 일정이 지연됐으며, 10월 이후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이 터지면서 계획 자체가 없던 일로 됐다.

    물론 삼성의 함부르크 프로젝트가 정상적으로 이행되지 못한 배경에는, 최순실의 개입도 있었다. 최순실은 자신의 딸을 제외한 다른 선수에 대한 지원을 바라지 않았으며, 정유라에 대한 후원자 역할을 한 박원오 승마협회 전무의 조언조차 무시한 채, 삼성이 비덱스포츠에 송금한 지원금을 마치 자기 돈처럼 사용했다.

    이런 사실은 지난 13차 공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박재홍 전 승마국가대표 감독의 증언을 통해 알려졌다.

    최명진 감독과 박재홍 감독의 증언 및 최OO 선수의 특검 진술 등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은, 삼성은 지난해 초부터 함부르크 프로젝트를 구상·계획했으며, 해당 선수 및 그 가족과 문자메시지, 유선 통화, 대면 접촉 등을 통해 의견을 교환했다는 사실이다.

    앞선 공판에서는, 독일 비덱스포츠(코어스포츠)에 고용된 직원들이, 법인 계좌를 통해 정식으로 급여를 지급받았으며, 이들 모두 취업비자를 받았고, 급여소득 공제 등 제세공과금을 정상적으로 납부한 사실이 확인됐다.

    나아가 박재홍 감독 등은 마필 및 마필 수송용 차량 구입을 위한 업무를 수행했으며, 매 분기별로 국내 선수를 독일로 초청, 전지훈련을 시행하고자 했으나 최순실의 전횡으로 이런 계획이 모두 무산됐다는 사실도 공개됐다. 이 과정에서 최순실 모녀와 박원오 전무의 사이가 틀어졌다는 증언도 나왔다.

    증인들은 “정유라 한 사람만 지원하면 모양이 좋지 않으니 구색을 맞추기 위해 다른 선수도 선발·지원하려고 한다”는 발언을, 박상진 전 삼성전자 대외협력담당 사장이나 황성수 전무로부터 들은 사실이 없다고 진술했다. 이들의 증언은, 정유라 승마지원을 ‘부정한 청탁의 대가’로 판단한 특검의 공소사실과 배치된다.

    특검은 이재용 부회장 등을 기소하면서, 이 부회장이 3차례에 걸쳐 박근혜 전 대통령을 독대하고, 그룹의 경영권 승계를 위한 범 정부 차원의 지원을 박 전 대통령에게 청탁했으며, 그 대가로 박 전 대통령과 경제적 공동체 관계에 있는 최순실 측에 430억원 대의 뇌물을 건넸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특검은 ‘정유라 승마지원’을, 뇌물공여 혐의를 입증하는데 있어 가장 중요한 근거로 꼽았다. 덧붙여 특검은, 삼성이 컨설팅 계약을 체결한 코어스포츠는, 정유라 승마지원을 위한 실체 없는 페이퍼컴퍼니라고 판단했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서증조사 및 증인신문을 통해 드러난 사실을 살펴보면, 특검이 적시한 혐의사실을 입증할 만한 구체적 진술이나 물증은 아직 나온 것이 없다.

    오히려 박재홍 전 승마국가대표 감독의 증언이나 최OO 선수의 특검 참고인 진술조서를 통해 알 수 있는 사실은, 삼성이 다양한 종목의 승마선수 육성을 위해 ‘함부르크 프로젝트’라는 명칭의 해외 전지훈련을 계획했으며, 이를 위해 구체적인 협의를 해당 선수 및 가족과 했다는 점이다.

    코어스포츠 역시 최순실의 전횡으로 정상적 운영이 이뤄지지는 않았지만, 특검의 주장처럼 실체가 없는 페이퍼컴퍼니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따른다는 사실도 공판을 통해 드러났다.

    특검이 혐의 입증을 위한 반전의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했던 참고인 진술조서의 중요 부분이, 법정에 출석한 증인들에 의해 부정된 사실도, 특검 입장에서 본다면 상당히 부담스런 대목이다.

    상당수의 증인들은 특검 참고인 진술조서 내용과 관련해 “그런 취지로 말한 것이 아니다”라고 하거나, “그렇게 말한 적이 없다”고 부인하면서, 특검 측을 난처하게 만들었다.

    이날도 비슷한 상황이 벌어졌다.

    최 감독은 지난해 3월4일 박상진 전 사장, 황성수 전무를 만나, 삼성이 해외전지훈련을 고려하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고 증언했다.

    최 감독은, 특검이 작성한 아들 최OO 선수의 진술서 내용에 대해서도 “삼성이 아들의 해외 전지훈련을 지원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사실, 아들이 전국체전 출전을 이유로 전지훈련 출국 일정 조정을 원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고 답변했다.

    다음은 최OO 선수의 특검 참고인 진술조서 중 해당 부분 발췌.

    “황성수 삼성전자 전무가 제게 전화를 해서 독일 전지훈련에 참여할 수도 있으니 혹시 출국에 장애사유가 없는지 물었다.

    이에 제가 10월에 개최되는 전국체전에 선수로 참가할 예정이니 참고해 달라고 하니까, ‘일단 일정을 조정해주겠으니 올해 하반기에 나가서 2018년 아시안게임 때까지 독일에서 체류하는 것으로 알고있어라’라고 했다.

    황성수는 항공편 체류비용 등 전지훈련 비용 일체를 지원하겠다고 했지만, 정확히 독일 어디에서 누구와 훈련받는지는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변호인단은, 삼성이 해외 전지훈련 기간 중 최OO 선수가 사용할 말의 구매를 위해, 해외 출장을 계획했음을 입증하는 내부 품의서도 증거로 제시했다.

    변호인단이 공개한 ‘전지훈련 미필구입 출장 건 품의서’에는, 최OO 선수의 해외전지훈련에 사용할 마필 구입을 위해, 삼성이 지난해 8월23일부터 25일까지 출장을 계획한 내용을 담고 있다.

    변호인단은 최OO 선수가 암스테르담과 코펜하겐, 함부르크를 경유하는 항공권을 구매한 내역도 공개했다.

    변호인단은 지난해 8월 초, 황성수 전무가 최OO 선수에게 전화를 해서, “본인이 사용할 마장마술용 마필 두세 마리를 물색할 것을 요청했다”며, “이런 사실은 삼성의 함부르크 프로젝트가 ‘정유라 1인 지원’을 희석하기 위한 물타기용 혹은 구색 맞추기용에 불과하다는 특검의 논리가, 막연한 예단 혹은 추측에 근거한 것이란 사실을 입증한다”고 반박했다.

    반면 특검은 “최명진 감독은 삼성으로부터 해외 전지훈련 계획의 구체적 내용을 듣지도 못했고, 관련 계획서도 받아보지 못했다고 증언했다”며, “삼성의 해외 전지훈련 계획은 정유라 1인 지원을 희석하기 위한 물타기용에 불과하다”는 기존 주장을 고수했다.

    특검은 승마계가, 정유라 선수의 모친이 최순실이며, 그녀가 박근혜 전 대통령의 비선실세라는 사실을, 2013년 경북 상주에서 열린 승마대회를 전후에 알고 있었을 것이라는 추론도 내놨다.

    다음은 이에 대한 특검 측 종합의견 중 일부.

    “최명진의 최순실에 대한 인식부분을 보면, 2013년 상주경찰서에서 승마 심판과 승마협회 위원들 조사가 있었을 때부터 정유라가 정윤회의 딸이고, 정윤회의 부인이 최순실이며, 그녀가 최태민 목사의 딸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중요한 것은 정유라가 정윤회의 딸이냐 최순실의 딸이냐, 정윤회와 최순실이 이혼을 했느냐가 아니라, 정유라 선수가 어떤 든든한 정치적 배경을 가지고 있었다는 인식, 그 부모가 누구인지에 대한 인식이 분명히 있었다는 것이다.“

    변호인단은 “증인의 진술취지가 특검이 말한 그대로인지 난감하다”며, “오늘 신문을 통해 드러난 것은 삼성이 최OO 선수에게 해외 전지훈련을 제안한 최초 시점이 지난해 3월 초순이고, 같은 해 10월까지 4차례에 걸쳐 전지훈련을 위한 협의를 진행해 왔다는 사실”이라고 변론했다.

    변호인단은 ▲최OO 선수의 마필 구입을 위해 삼성이 지난해 8월 작성한 내부 출장 기안 ▲황성수 전무가 최OO 선수에게 보낸 휴대폰 문자메시지 ▲최OO 선수 출국을 위해 구입한 항공권 ▲지난해 10월4일 박상진 사장, 황성수 전무가 최명진 감독, 최OO 선수와 식사를 하면서 나눈 대화의 내용 등을 종합할 때, 삼성이 해외 전지훈련에 진성성을 가지고 있었음은 부인할 수 없다고 말했다.

    변호인단은, 최명진 감독의 진술 중 “정유라가 중심이고 ‘다른 선수는 부수적인 지원을 받을 것으로 봤다’는 부분은 증인 개인의 생각일 뿐”이며, “증인이 삼성으로부터 전지훈련 세부계획을 자세하게 듣지 못했다고 해서, 지원 계획의 실제를 부정할 수는 없다”고 했다.

    승마계가 최순실의 영향력을 인지한 시점에 대해서도 변호인단은, “이 사건 발단은 최순실의 국정농단이므로 중요한 것은 정윤회가 아니라 최순실의 영향력에 대한 승마계의 구체적 인식”이라고 짚었다.

    변호인단은 “최순실씨가 얼마나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는지, 피고인들이 이를 얼마나 인식하고 있었는지가 관건인데, 최명진 증인은 승마계에 40년이나 있었음에도, 최순실을 ‘승마선수 정유라의 어머니’, ‘힘있는 정윤회의 부인’ 정도로 인식했다고 증언했다”며, 이는 최순실에 대한 피고인들의 기본적인 인식과 다르지 않다고 반박했다.


    ◆이규혁 “장시호 평소 과장 심해, ‘파란집’ 청와대라고 생각 안했다”

  • 이규혁 전 스피드스케이팅 국가대표. ⓒ 사진 뉴시스
    ▲ 이규혁 전 스피드스케이팅 국가대표. ⓒ 사진 뉴시스


    오후 증인으로 나선 이규혁 전 스피드스케이팅 국가대표는 ‘장시호가 문자메시지를 통해 ‘큰 집’, ‘파란 집’ 등의 표현을 자주 썼는데도, 그 배후에 청와대가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느냐‘는 특검 측 질문에 “장시호가 평소 과장을 많이 해서 그의 말을 다 믿지 않았고, 다만 ’인맥이 넓고 배후에 큰 빽이 있나 보다‘ 정도로 생각했다“고 답했다.

    이규혁 증인은 중학교 시절부터 장시호를 알고 지냈지만, 그가 최순실의 조카이며, 최순실이 박 전 대통령의 비선실세라는 사실은, 지난해 말 언론 보도가 나오기 전까지는 몰랐다고 증언했다.

    변호인단은 증인신문에 앞서, 피고인들의 무죄 입증을 위해서는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신문이 반드시 필요하다며, 박 전 대통령을 이 사건 증인으로 채택해 줄 것을 재판부에 요청했다.
    앞서 특검도 지난 공판에서 박 전 대통령을 이 사건 증인으로 신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