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는 내 차로 몽골문화촌으로 가기로 했다. 가는 도중 제일 먼저 나타난 주유소에서 기름을 잇빠이 넣고, 삼 천 원 짜리 기계 세차도 했다. 금이 간 헤드라이트 유리를 갈아끼고 차 표면에 왁스를 발라주면 내 차는 새 차 같을 거였다.

    새 차 같다는 게 지나친 과장이라면, 적어도 도난당했던 흔적만큼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을 거였다. 지금은 기름을 넣고 삼 천 원짜리 기계 세차를 했지만, 도난당했다는 흔적이 완전히 없어졌다는 자신이 서지는 않았다.

    헌데, 잇빠이 기름을 넣고 삼 천 원짜리 세차를 하고 몽골문화촌을 찾아가는데, 우리는 한가지 문제점이 있다는 걸 발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는 혹시 몽골문화촌에 우리를 패고 내 차를 훔쳐간 그 놈, 케이사모가 있지 않을까 하는 의구심에 몽골문화촌을 찾아가고 있는 건데, 실제 케이사모가 몽골문화촌에 있으면 어쩔 거냐는 거였다. 몽골문화촌에서 케이사모를 발견한다 하더라도, 우리는 케이사모를 어째 볼 수 없었다. 우리 셋이서 케이사모를 상대해도 우리는 케이사모를 제압하지 못하고, 오히려 우리가 제압당하고, 늘씬하게 줘터질 뿐이라는 것을, 우리는 경험을 통해서 알고 있었다.

    케이사모가 실제 몽골문화촌에 있다면, 더 큰 일 날 일이었다. 케이사모가 우리 눈에 띄는 거야 상관없는 일이었지만, 우리가 케이사모의 눈에 띌 경우였다. 우리를 발견하면, 케이사모는 우리를 가만두지 않을 것이었다. 자기가 있는 곳을 알아냈다는 데에 대한 분노와 우려에서, 증거인멸이라는 차원에서, 어쩌면 우리를 살려두려하지 않기까지 할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런 가능성에까지 생각이 미치면 솔직히 몽골문화촌으로 가는 길이 꺼려졌다. 굳이 거기까지 갈 필요가 뭐가 있는가. 차를 찾았으면 됐지. 그걸로 족하고 그냥 덮어두면 됐지. 남양주 경찰서의 오순경이 그랬던 것처럼….

    대책이 있어야 했다. 그러나 만족할 만한 대책이 떠오르지 않았다. 오순경이 우리와 함께 왔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오순경이 동행한다면, 아무리 케이사모라 하더라도 두렵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러나 오순경이 우리와 동행해 몽골문화촌까지 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런 일이 안 일어났다는 점에서 그게 불가능한 일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일이었다.

    대책을 세워야 한다는 생각이지만, 대책이 없는 채로 우리는 몽골문화촌에 도착하고 있었다.

    몽골문화촌에 도착하는 우리의 기대는 반 반이었다. 한편으로는 몽골문화촌에서 케이사모를 발견하기를 바랐고, 또 한편으로는 몽골문화촌에서 케이사모를 발견하지 못하기를 바랐다. 발견하기를 바란 것은 케이사모에게 복수를 하기 위해서였고, 발견하지 못하기를 바란 것은 케이사모에게 또 직싸리 두들겨 맞고 차까지 뺏기게 될까봐 여서였다.

    차를 파킹시키고, 표를 끊어 몽골문화촌의 대극장 안으로 들어갔다. 지금은 세 시 십 오 분이 조금 넘어 있었고, 오후 세 시 공연이 진행되고 있었다. 공연은 한 시간 반 정도 진행이 되는 것 같았다.

    극장의 문을 열고 어두운 객석 안으로 들어섰을 때 무대 위에서는 건장한 몽골 남자와 아리따운 몽골 여자가 나와 몽골의 초원에서 난다는 몽골 초원의 소리를 내고 있었다. 한 여름날의 매미나 쓰르라미 소리를 닮은 그 소리는 어찌 들으면 귀에 거슬리기도 했고, 또 어찌 들으면 몹시 아름답기도 했다. 하여간 인간의 소리 같지는 않고 자연의 소리 같다는 느낌은 강렬했다.

    우리는 한 이 삼 분 정도 인간의 목소리가 내는 몽골 초원의 자연의 소리를 어두운 객석에서 선 채 듣고 있다, 다시 극장문을 열고 복도로 나왔다. 우리가 보고 싶은 것은 객석에서 보는 무대가 아니었다. 무대 뒤의, 현실의 몽골 배우와 스텝과 단원들의 모습이었다.

    실은 그 모습은 한 일 이 개월 전 처음 몽골문화촌을 찾아왔을 때 본 모습이었다. 그 때 우리는 무작정 오르그뜨를 찾으러 왔다가, 오르그뜨 아닌 사람들만 확인하고 돌아가야 했었다. 지금 우리가 다시 이 곳을 찾은 것은 케이사모를 찾기 위해서였다. 우리는 오르그뜨 때와 마찬가지로, 케이사모를 찾으러 왔다가 케이사모 아닌 사람들만 보고 발길을 돌려야 할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예감이 있었다. 기이한 예감이었다. 나 뿐만아니라 지만이도 그랬고 성규도 그와 같았다. 이 곳에 틀림없이 케이사모가 있으리라는 예감이었다. 세 사람이 동시에 동일한 예감을 지닌다는 것은 기이한 일이었다. 좀처럼 일어나기 어려운 일로, 신비한 일이기까지 했다.

    나는 표를 끊고 대극장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부터 그와같은 예감이 왔는데, 지만이는 어두운 객석 안으로 들어서서 남녀 몽골 가수들이 내는 초원의 소리를 듣는 순간 예감이 왔고, 성규는 어두운 객석에서 문을 열고 다시 복도로 나오는 순간 그 예감이 왔다. 꼭 같은 시간에 그 예감이 온 것은 아니지만 거의 같은 시간대에 왔다는 점에서 동시라고 할 수 있었고, 같은 내용이었다는 점에서 동일한 예감이었다고 할 수 있는 것이었다.

    우리가 '관계자 외 출입금지'라는 푯말을 무시하고 배우들의 대기실로 침입해 들어갔을 때, 그러나 우리가 발견한 것은 우리의 예감과는 거리가 먼 것이었다. 그러니까, 다른 말이 아니고, 케이사모를 발견할 수 없었다는 것이었다.

    케이사모처럼 거구의 장대한 체격을 지닌 남자는 없었다. 다들 몸이 다부지고 잘 다듬어져 있긴 하지만, 키들이 작았다. 아니, 한 사람 케이사모에 필적할 만한 체격과 키를 지닌 사람이 있긴 있었다. 그러나 그 사람은 케이사모처럼 칭기즈칸을 연상시키긴 하지만, 케이사모는 아니었다.

    우리가 자신들을 살피며 대기실 안을 두리번거리고 다니자 몽골 배우들이 놀란 듯 했다. 우리에게 뭐라 소리치기도 하고 저들끼리 쑤근덕거리기도 하는데, 하나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대체로 우리더러 누구냐고 묻는 소리이거나, 어떻게 여길 들어왔느냐 당장 나가라 하는 등등의 얘기였을 터였다. 우리는 몽골 배우들이 소리치는 그 소리의 내막을 대강 짐작했지만, 무시했다. 무시하고 계속해서 두리번거리며 돌아다녔다.

    그 때였다.

    "누구세요. 어떻게 여길 들어온 거예요." 하는 또렷또렷한 한국어 말소리가 들려왔다. 통역이었다.

    통역이 우리 앞에 나타나 섰을 때, 우리는 그 통역이 구면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처음 오르그뜨를 찾아 이 곳을 찾았을 때, 그 때도 우리 앞에 나타났던 통역이 그녀였던 것이었다.

    "아, 누군지 알겠어요. 당신들…그 때 그 사람들."

    몽골 통역이 우리더러 그 때 그 사람들 하는데, 뜬금없이 심수봉의 '그 때 그 사람'이라는 노래가 떠올라왔다. 심수봉의 노래 '그 때 그 사람'에서 그 때 그 사람이 누구였었지. 

    물론 우리가 아닌 건 분명했다. '그 때 그 사람'이라는 영화도 만들어졌었던 걸로 기억한다. 한석규가 주인공으로 나왔던 걸로 기억하는데, 영화 '그 때 그 사람'에서의 그 때 그 사람은 또 누구였었지.

    여기서도 그 때 그 사람이 우리가 아닌 것만큼은 분명했다. 하여간 그 영화로 전에는 좋아했던 한석규를 무척이나 혐오하게 되었고, 지금은 한석규를 좋아하지도 싫어하지도 않지만, 한동안 그로인해 한석규와의 관계가 껄끄러웠던 게 기억났다.

    "어떻게 알고…"

    몽골 통역은 말을 하다 말았다. 말을 하다마는 몽골 통역의 낯빛은 어두웠다. 우리가 그 때 그 사람들이라는 걸 확인하는 순간부터 어두워지기 시작한 낯빛이었는데, 우리를 다시 본 게 몽골 통역을 불안하게 만드는 모양이었다.

    말을 하다 말고 우리를 보고 불안해하는 몽골 통역의 모습에서, 우리는 의심했다. 우리의 예감이 틀리지 않는 게 아닌가 하는, 예감이었다. 다시말해, 케이사모가 동시에 동일하게 떠오른 우리의 예감처럼 여기에 있다는 것이었다. 그렇지 않다면 몽골 통역이 왜 말을 하다 말고, 우리를 보고 불안해 한단 말인가.

    그 순간이었다. 우리는 모두 보았다. 아니, 우리가 모두 본 게 사실이고 거의 동시에 보았다는 점에서 시간상의 갭을 문제삼는 게 어리석은 거지만, 우리 셋 모두 동시에 본 거기에 간발의 차이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 무시해도 좋은 만큼의 간발의 차이이지만, 간발의 차이를 굳이 고려한다면, 가장 먼저 본 것은 성규였다.

    성규가 무언가를 발견하고 저거 저거 하는 놀라는 의성어를 내었고, 나와 지만이 그 놀라는 의성어에 순간적으로 이끌려 성규가 바라보는 방향으로 시선을 던진 거니까. 나와 지만이 가운데서는 누가 먼저 보았는지 사실 가늠하기 어렵다. 측정불가라는 것이다. 하긴 나와 지만이 중 누가 먼저 보았든 그게 무슨 대수란 말인가. 대수인 것은, 나와 지만이도 보고 성규가 내지른 놀라는 의성어와 거의 진배없는 의성어, 저거 저거 하는 소리를 내질렀다는 그것이었다.

    우리가 거의 동시에 보고 거의 동시에 놀란 그것은, 오르그뜨였다. 우리가 들어온 문의 반대편 문을 열고 대기실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는데, 그녀가 오르그뜨였다. 배우처럼 짙은 화장을 했고, 아이보리색의 롱드레스를 입고 있었지만, 그녀가 오르그뜨라는 건 대번에 알 수 있었다.

    놀란 것은 우리만이 아니었다. 우리를 발견한, 아니 정확히는 성규를 발견한 오르그뜨도 놀라고 있었다. 나와 지만이를 보고 오르그뜨가 놀랄 리는 없는 일이었으니까. 누가 누군지 모르는 거니까. 한 열 걸음쯤 떨어져 있었음에도 오르그뜨가 놀라는 기색이 역력히 눈에 들어왔다.

    성규를 발견하고 놀라는 것과 거의 동시 동작이었다. 오르그뜨가 방향을 틀었고, 다짜고짜 달아나기 시작했다. 오르그뜨가 달아나는 모습을 확인하고 있는데, 내 눈 앞을 휙 스쳐지나가는 한 줄기 바람이 있었다. 

    성규였다. 성규가 어느새 달아나는 오르그뜨를 쫓고 있었다. 근데, 보니까 그 뒤를 또 지만이가 쫓고 있었다. 문득 보면, 나도 쫓고 있었다. 지만이의 뒤에 바짝 붙어서. 무슨 강한 인력에라도 끌려가듯이 무의식적으로. 혹은 조건반사적으로 그렇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러나 쫓고 쫓기는 것은 이게 다가 아니었다. 내 뒷꽁무니를 쫓는 자가 하나 더 있었다. 몽골 통역이었다. 그 여자가 왜 내 뒤를 쫓고 있는 건지 모르겠지만, 아마 그녀 자신도 그녀가 왜 내 뒤를 쫓고 있는지 모를 가능성이 높았다. 무의식적으로 혹은 조건반사적으로 쫓고 있는 게 분명해 보였으니까.

    오르그뜨가 달아난 곳은 공교롭게도 무대 위였다. 오르그뜨가 무대 위로 달아난 게 의도적이었는지 얼떨결에 그리 된 건지는 모르겠다. 오르그뜨가 무대 위로 달아나면 우리가 못 쫓아오리라 생각하고 그리 한 거라면, 오르그뜨는 오판한 것이었다. 그 때 우리는 오르그뜨가 가는 곳이라면, 지옥이라도 쫓아갈 판이었으니까.

    그러나 오르그뜨는 의도적으로 무대 위로 달아난 건 아닌 것 같았다. 자기가 달아나 나선 곳이 무대 위라는 걸 깨닫곤 몹시 당황하고 어쩔 줄 몰라 하는 태도였으니까.

    당황하고 놀란 건 오르그뜨만은 아니었다. 우리가 오르그뜨를 쫓아와 나선 곳이 무대 위라는 것을 발견하곤 우리도 너무 놀래었다. 객석과 객석을 꽉 메운 사람들을 보고는 두려워지기까지 했다. 모르겠다. 성규와 지만이는 어땠을지. 나의 경우는 그와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