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특검, 대부분 용두사미… 박영수 특검엔 반면교사(反面敎師)
  • 박영수 특별검사. ⓒ 사진 뉴시스
    ▲ 박영수 특별검사. ⓒ 사진 뉴시스


    박영수 특검팀이 16일 오후 기자 브리핑을 통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 방침을 밝히면서, 역대 특검의 성과와 행보가 새롭게 주목을 받고 있다.

    수사기간이 법에 의해 미리 정해지는 특검은, 그 특성상 무언가 보여줘야 한다는 조급증에 무리수를 둔 경우가 많았다. 이 부회장에 대한 ‘최순실 특검’의 영장 청구와 관련해서도 비슷한 잡음이 나오고 있다.

    특검이 이 부회장에게 적용한 핵심 혐의는 뇌물공여. 문제는 이를 위해 특검이 내세운 법리 구성에, 학계는 물론 법원과 검찰 내부에서도 거센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간 합병을 부정한 청탁의 대상으로 볼 수 있는지 △특검이 밝힌 뇌물죄 구성의 전제사실, 즉 박 대통령과 최순실씨를 ‘이익을 공유하는 관계’로 볼 수 있는지 △이런 관계만으로 제3자 뇌물죄 구성이 가능한지 △합병 이후 돈이 건네진 상황에서 대가성을 인정할 수 있는지 △미르와 K스포츠재단에 대한 기금 출연이나 동계스포츠센터 후원 등을 모두 뇌물로 판단한 것이 적절한지 등의 쟁점은, 18일 있을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은 물론이고, 앞으로 열릴 공판에서도 치열한 다툼이 예상되는 사안들이다.

    즉, 범죄 성립 여부 자체를 놓고 논란이 벌어지는 상황에서의 영장 청구는, 무리수라는 의견이 적지 않다.

    특검의 조급증은 대개 부실한 수사로 이어졌다. 실제 역대 특검의 성과는 보잘 것이 없다. ‘주범’을 포함한 주요 혐의자 대부분이 집행유예 이하의 판결로 풀려나거나 심지어 무죄를 선고받았다. ‘특검 무용론’이 나오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최순실 특검 이전, 가장 최근 도입된 ‘이명박 대통령 내곡동 사저 특검’도 시작은 창대했지만 끝은 초라했다.

    2012년 10월15일 닻을 올린 당시 이광범 특검팀은, 이명박 대통령의 아들 이시형씨와 이 대통령의 큰형 이상은 다스 회장의 주택과 사무실 등을 압수수색하고, 이시형씨 등 관련자 10명을 출국금지하는 등 수사 강도를 높였다.

    당시 특검은 김백준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을 피의자 신분으로 불러 조사하고, 대통령 부인 김윤옥 여사에 대한 서면조사도 실시했다.

    그러나 현판식 한 달 만에 내놓은 특검의 수사결과는 실망스러웠다.

    이광범 특검은 같은 해 11월14일 이 대통령의 아들 이시형씨를 불기소 처분(증여세 과세자료 국세청 통보)하고, 김인종 전 청와대 경호처장과 청와대 경호처 행정관, 경호처 시설관리부장 등 3명을 불구속 기소하는 것으로 수사를 마무리했다.

    관심이 집중된 임태희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나 특검이 피의자로 소환했던 김백준 전 비서관 등에 대해서는 ‘혐의 없음’ 결론을 내렸다.

    특검이 기대만큼 성과를 내지 못한 경우는 그 이전의 ‘게이트 정국’을 보면 더 쉽게 발견할 수 있다. 현재 진행 중인 박영수 특검을 제외한다면 지금까지 특검은 모두 11차례 실시됐다. 이 가운데 국민의 정부 말 이뤄진 ‘이용호 게이트 특검’ 정도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용두사미로 끝이 났다.

    ‘게이트’가 불거질 때마다 야당은 특검 도입을 외쳤고, 검찰의 봐주기 수사, 면죄부 수사를 비난했다. 그러면서, 제기된 각종 의혹의 진상을 규명하고 정의를 바로 세우려면, 특검 도입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런 사정은 박영수 특검도 예외가 아니다.

    박영수 특검 대변인을 맡고 있는 이규철 특검은 16일 이재용 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사실을 밝히면서, “국가경제에 미치는 상황도 중요하지만 ‘정의’를 세우는 일이 더 중요하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특검이 말한 ‘정의’가 언제나 절대적 가치를 인정받은 건 아니다.

    1999년 옷로비 특검은, 라스포사 사장 정일순씨에게 알선수재 혐의를 적용 구속영장을 청구했으나 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법원은, 관계자 진술에 일관성이 없고, 검찰의 범죄 혐의 소명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영장을 기각했다. 법원은 특검의 영장 재청구에 대해서도, 같은 이유로 기각 결정을 내렸다. 이어진 공판에서도 법원은, 특검이 적용한 공소사실 대부분을 부정하고 청문회 위증혐의만 유죄로 인정했다.

    이 사건은 특검의 무리한 수사 실태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가 됐다.

    서울 강남의 대형 로펌 파트너변호사 A씨는 “박영수 특검의 영장 청구가 법리보다는 여론을 의식해 이뤄지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며, 특검의 행보에 우려의 눈길을 보냈다.

    A변호사는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에 대한 법원의 영장 기각 사례를 언급하면서 “이재용 부회장의 경우, 뇌물죄 성립 여부를 놓고 법조인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영장 발부 여부를 심시할) 법원 입장에서도 부담이 매우 클 것”이라고 전망했다.

    “원래 특검은 그 출발이 정치권에서 이뤄지기 때문에 ‘정치적’ 성격을 띨 수밖에 없다.

    개인적으로, 이번 특검은 검찰이 수사를 중단하고 그 진행사항을 넘겨받았기 때문에, 역대 어느 특검보다 성과가 좋을 것으로 본다.

    특검의 영장 청구 방침을 보면 법리보다는 정치적인 판단이나 여론을 의식한 결정이라는 의심이 든다. 범죄 성립 여부 자체가 논란이 되고 있는 상황에서, 굳이 영장을 청구할 필요가 있을지 모르겠다.

    지난해 법원이,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에 대한 검찰의 영장 청구를 ‘혐의에 대한 다툼의 여지 등을 고려할 때 구속의 필요성을 인정하기 어렵다’며 기각한 사례도 참고할 만한 사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