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북(親北)-반미(反美) 세력, 여우 피하려다 호랑이 만난 격
  •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겸 국무총리가 9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대국민담화를 하고 있다. ⓒ뉴시스
    ▲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겸 국무총리가 9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대국민담화를 하고 있다. ⓒ뉴시스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彈劾) 소추안이 9일 오후 국회에서 가결되면서 황교안 총리 권한대행 체제로 국정이 전면 전환됐다.

    대통령에 대한 탄핵안 가결 시 헌법 71조에 따라 국무총리가 권한을 대행하도록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권한은 이날 오후 7시 3분부로 정지됐다.

    헌정 사상 9번째 권한대행이다.

    첫 번째 사례는 허정 외무부 장관이다. 그는 1960년 4.19 혁명으로 하야한 이승만 대통령을 대신해 같은해 6월 15일까지 권한대행을 맡았다. 내각 서열로 보면 부통령이 권한대행을 맡아야 했지만, 당시 부통령이 궐위 상태였기 때문에 다음 서열인 허정 장관이 자리를 맡게 됐다.

    이어 허정 장관이 정식 국무총리에 오르고 대통령 권한대행을 사임하자 곽상훈 민의원 의장이 6월 16일부터 22일까지 일주일 간 대행을 맡았다. 그러나 곽상훈 당시 대행이 일주일만에 사퇴하면서 허정 총리가 다시 권한대행을 맡았다. 그해 8월 7일까지 한달 보름가량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1961년 5.16 군사 쿠데타 이후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으로 직무를 수행하다가 윤보선 당시 대통령이 사임하자 1962년 3월 23일부터 1963년 12월 16일까지 대통령 권한대행에 올랐다. 그리고 박정희 전 대통령이 정식으로 대통령에 취임하면서 권한대행을 마쳤다.

    가장 최근 사례는 지난 2004년 3월 12일부터 5월 14일까지 63일 간 권한대행을 맡은 고건 전 총리다. 고건 전 총리는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탄핵안이 국회에서 의결되자 권한대행을 맡았다.

     

    #. 黃 총리, 권한대행 업무 즉시 안보태세 강화 발령 

    현행법에 대통령 권한대행의 직무 범위가 구체적으로 규정되지 않은 탓에 국무총리실은 탄핵안 의결될 상황에 대비해 고건 전 총리의 사례를 살펴보며 메뉴얼 준비 작업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황교안 총리는 이날 오후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안이 가결되자 주요 안보부처에 비상경계태세 강화를 긴급 지시했다.

    고건 전 총리가 2004년 3월 12일 첫 업무로 국방을 챙긴 것과 같은 수순이다.

    당시 고건 총리는 대통령 권한대행의 첫 업무로 전군에 지휘경계령을 지시했다. 또한 당시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에게 우리 정부의 외교·안보·경제 정책에 변화가 없다는 메시지를 각 외교사절에 전하라고 주문했다.

    국무총리실에 따르면, 황교안 총리는 가장 먼저 한민구 국방부 장관에게 전화를 걸어 "현재 엄중한 상황에서 북한이 국내 혼란을 조성하고 도발 가능성이 높은 만큼 군이 비상한 각오와 위국헌신의 자세로 임무수행에 만전을 기함은 물론 감시 경계태세를 강화해달라"고 당부했다.

    북한의 추가 도발 가능성과 국내 친북(親北) 세력의 분열획책을 사전에 차단하겠다는 의미다. 이에 한민구 국방부 장관은 즉시 안보 태세를 강화하고 주요지휘관 화상회의를 소집했다.

    황교안 총리는 또 훙윤식 행정자치부 장관에게도 전화를 걸어 경찰의 경계태세를 강화하라고 지시했다. "주말 집회를 포함한 각종 집회와 시위에 대해서는 평화적으로 관리하되 불법적 행위에는 법과 원칙에 따라 대응하라"고도 했다.

    윤병세 외교부 장관에게는 유엔 안보리 결의 2,321호 채택 등 대북제재를 차질 없이 이행할 것을 주문했다.

    윤병세 장관은 황교안 총리와 통화를 마친 뒤 미국 등 주요국 대사를 서울 외교부 청사로 불러 국내 정세를 설명하고 기존 정책 기조가 바뀌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친북(親北)-반미(反美) 세력으로서는 여우를 피하려다 호랑이를 만난 격이다.

     

  •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겸 국무총리가 9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임시 국무회의를 주재하는 동안 관계부처 국무위원들이 이를 경청하고 있다. ⓒ뉴시스
    ▲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겸 국무총리가 9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임시 국무회의를 주재하는 동안 관계부처 국무위원들이 이를 경청하고 있다. ⓒ뉴시스

     

    #. 권한대행 자격 첫 국무회의 "한치의 공백 없도록 혼신"

    황교안 총리는 이날 오후 박근혜 대통령의 직무가 법적으로 정지된 직후 대통령 권한대행 자격으로 7시 6분부터 정부서울청사에서 첫 국무회의를 주재했다.

    황교안 총리의 일성은 국가안보와 민생안정으로 요약된다.

    황교안 총리는 우선 "저를 비롯한 전 내각은 어떤 경우에도 국가의 기능이 안정적으로 유지될 수 있도록 책임과 소명을 다 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이어 "전 공직자들은 비상한 각오를 갖고 외교, 안보, 경제, 민생 등 모든 분야에서 국정에 한 치의 공백이 없도록 혼신을 다해 대내외의 불안과 우려를 믿음과 신뢰로 바꿔나가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무엇보다 군(軍)은 국가안보에 추호의 빈틈도 없도록 굳건한 안보태세를 확립하고, 북한이 도발하면 언제든지 즉각 대응할 수 있도록 만반의 대비태세를 유지해 주시기를 바란다"고 관련 부처에 지시했다.

    경제 활성화와 민생 안정을 위한 정책도 차질없이 추진키로 했다.

    황교안 총리는 기재부와 금융위 등 경제부처에 "불안심리가 확산돼 시장이 동요하는 일이 없도록 시장동향을 면밀히 모니터링하고 필요한 경우에는 선제적인 시장안정 조치를 취해달라"고 했다. 또한 "경제의 안정적 관리를 위한 정부 노력을 국제기구, 신용평가기관 등에 적극 설명해 우리나라 대외신인도에 영향이 없도록 각별히 노력해 달라"고 당부했다.

    황교안 총리는 "현 상황으로 인해 국민 여러분께 크나큰 심려를 끼쳐드린 데 대해서 참으로 송구하고 무한한 책임을 느끼고 있다"는 유감 표시도 잊지 않았다.

    8시 발표한 대국민 담화에서는 "국가와 국민이 하루속히 안정을 되찾을 수 있도록 힘과 지혜를 모아달라"고 혼란스러운 정치권에 부탁했다.

    "이제는 거리의 목소리가 현재의 국가위기를 극복하는 동력으로 승화되도록 국민 여러분께서도 뜻을 모아주시기를 머리 숙여 간곡히 당부드린다"고 호소하기도 했다.

     

    #. '임시 대통령' 업무 범위와 권한은 어디까지?

    황교안 체제 출범에 따른 국정 시스템이 초미의 관심사다.

    '임시 대통령' 역할을 하게 될 황교안 총리를 중심으로 국정이 운영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황교안 총리는 앞으로 국무회의를 포함한 각종 회의를 직접 주재하고 부처로부터 보고를 받아 주요 정책을 결정하게 된다.

    대통령에 대한 모든 권한이 그대로 황교안 총리에게 이양되는 셈이다. 특히 북한의 추가 도발이 눈앞으로 다가온 만큼 강력한 대북제재를 유지하는 것은 황교안 총리가 해야 할 핵심 임무 중 하나다.

    대통령의 헌법상 주요 권한은 다음과 같다.

    ▲국군통수권
    ▲행정입법권
    ▲공무원임면권
    ▲예산안 제출권
    ▲법률안 거부권
    ▲국민투표 부의권
    ▲조약체결 비준권
    ▲외교사절 접수권
    ▲헌법기관의 임명권 
    ▲법률개정안 공포권
    ▲사면·감형·복권 권한
    ▲헌법개정안 발의·공포권

    국정운영의 중심은 청와대에서 국무조정실로 바뀌게 된다.

    다만 청와대 비서실과의 협업은 필수적이다. 기존 총리실이 담당하지 않았던 외치를 돌봐야 하기 때문에 청와대의 지원을 수시로 챙겨야 한다. 총리실과 청와대의 보좌를 동시에 받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핵심 정책 발표 등은 대통령 권한대행의 신분을 고려해 총리실보다는 청와대 비서실을 활용할 가능성이 크다.

    청와대 비서실은 대통령 권한대행 체제를 지원하면서도 한광옥 비서실장 주재로 수석비서관회의와 일일회의를 통해 국정 현안을 점검하는 등 고유 업무를 계속 수행할 것으로 보인다.

    황교안 총리는 청와대 회의에는 참석하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앞서 2004년 고건 전 총리는 청와대 회의에 참석하지 않고 결과 보고만 받았었다. 당시 사례에 비춰 볼 때 황교안 총리도 청와대 방문은 최대한 자제할 것으로 전해졌다.

    헌법재판소법에 따르면, 탄핵 심판은 최대 6개월까지 소요될 수 있다. 파면 결정이 나온다면 황교안 총리는 차기 대선이 치러지기까지 60일의 준비 기간을 포함해 총 8개월 간 대통령 권한대행으로서의 직무를 수행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