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와 평등, 과연 피의 대가로서 얻어진 결과인가?"

  • 필자가 40대 중반 때, 미술에 대한 특별한 관심과 지식이 있는 것도 아니면서도 불란서로 출장 갈 때마다 몇 차례 베르사유(Versailles)궁전에 갈 기회가 있었다. 

    한번은 그곳 파리에 살고 있는 지인(知人)가족들과 함께 베르사유 궁전 뒤 넓은 정원을 가로지르고 있는 십자형 인공호수의 어느 한편 잔디위에서 바비큐를 즐긴 후 궁전 전시관으로 들어가 여기저기 역사미술관을 둘러보다가 어느 전시실 입구에서 주춤 놀란 적이 있었다.

    그때까지 몇 번을 갔어도 그 전에는 한 번도 본 바 없는 전시실에 온통 피를 뿌려놓은 듯 한 그림들로만 꽉 차있었던 때문이었다. 특히 콩코드 광장(Concord Square)에 설치해 놓은 기요틴(guillotine) 단두대에 목이 잘리는 장면과 목이 잘리려고 쭉 줄지어 서 있는 풀죽은 사람들의 행렬과 잘린 목들에서 쏟아져 나오는 피가 콩코드 광장을 지나 세느강(Seine river)으로 흘러들어가는 장면을 생생하게 그린 그림이 제일 소름끼쳤고 또 너무나도 사실처럼 적나라하게 그려져 있었다.  
    그 방의 전시물이 전하는 시기가 도대체 언제 것들이기에, 온통 핏빛으로 장식되다시피 한 것일까? 도대체 그 시기의 상황이 피와 무슨 상관이 있는 걸까? 

    궁금하여 설명을 읽어보니 바로 루이 왕조가 무너진 1789년 불란서 혁명 발발 때부터 나폴레옹이 등장하기까지 10여 년 간의 것이란다.  
     
    불란서는 18세기 루이왕조(Louis) 14세 때 유럽에서 최강의 국가였으나 루이 16세 치하 때인 1789년 7월 14일 바스티유(Bastille) 감옥습격으로 시작된 불란서혁명(French Revolution)으로 왕정을 포함한 구체제(Ancient Regime)가 무너지고, 민간 혁명정부가 들어섰으며 동년 10월 5일 ‘자유・평등・박애’를 기치로 하는 ‘인권시민장정(The Declaration of the Rights of Man and the Citizen)’이 선포되었단다. 

    그러나 얼마 뒤 민간혁명정부에 의한 교회재산의 몰수, 뒤이은 중과(重課)소득세의 징수, 곡물가의 동결, 정부 가격(價格)제 불이행에 대한 극형(極刑)실시, 개인 신분증소지의 의무화, 이웃상호간의 감시(監視)제도 실시, 중상주의(mercantilism)에 의한 경제정책의 실패와 지나친 지폐의 남발로 인한 재정혼란 등이 가중되게 되었다. 

    이런 가운데 1792년에 제1차 공공안전위원회(The First Committee of Public Safety)가 발족되자마자 반역자 처단명분으로 피의 학살이 파리 시가(市街)를 휩쓸게 되었고 뒤이어 정권이 여러 번 교체되면서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기요틴의 이슬로 사라져갔는데 불란서 대혁명 후 4만 명 이상을 죽인 이 피의 잔치는 1799년 나폴레옹의 독재정치가 등장할 때까지 10년간 지속되었다는 설명이었다. 



  • 필자는 바로 그 시기의 미술품들을 전시한 방을 본 것이었다.
     
    불란서가 220여 년 전 불란서 혁명(French Revolution)을 통해 왕정(王政)에서 민정(民政)으로 또 다른 민정(民政)으로 바뀌는 와중에서 무정부(anarchy)상태와 국가주의(國家主義)를 경험한 후 결국 전체주의(totalitarianism)의 독재(獨裁)로 옮겨가는 약 10년간 흘린 그 엄청난 피범벅과 살육으로 과연 무엇을 얻었단 말인가? 결국 나폴레옹 독재체제를 얻기 위해 그 많은 피를 흘렸단 말인가? 
     
    그리고 가깝게는 1969년부터 1975년 사이에 캄보디아 폴포트(Pol Pot)가 자행한 인종말살(genocide)획책은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의 엄청난 해골더미가 보여주듯 그 잔학상이 끔직한데 그들은 이를 통해 또 무엇을 얻었단 말인가? 

    해골더미가 현재는 관광자원 역할(?)을 하고 있는데 과연 지금의 관광자원을 확보하기 위해 그토록 그 많은 살육을 자행했단 말인가? 
     
    2004년 여름 어느 국제학술회의 만찬장에서 만난 한 중국인 교수와 이런저런 얘길 나누는 중에 ‘왜 중국 사람들이 등소평(Deng Xiaoping)을 모택동보다 더 높이 평가하느냐’는 나의 질문에 그의 답은 의외로 명쾌했다. 

    일반적으로 중국 사람들은 모택동에 대해서는 언급을 안 하면서 다만 등소평을 중국을 건진 사람으로 생각한다며 그 이유는 ‘문화혁명(文化革命)을 끝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흔히 등소평 하면 이념보다는 실용노선(實用路線)을 강조한 사람으로만 알고 있던 나의 기대와는 전혀 다른 답이라서 그 이유를 물었다. 

    그 교수의 설명에 의하면 문화혁명이 1965년경부터 1975년 등소평이 재등장할 때까지 10년간 지속되었는데, 한창 절정에 달했을 때는 단 세 명만 모여도 하나의 집단으로 인정되어 삼권(三權: 입법권, 행정권, 사법권)을 부여받고 무슨 일의 어떤 내용이든지 그 집단 맘대로 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테러와 다름없는 온갖 행태의 폭력(暴力)과 무자비(無慈悲)의 소용돌이가 중국 전역 여기저기를 휩쓸었다는 것이다. 예컨대 학교 제자들이 자기 스승을 걸상 여러 개를 높이 쌓아올린 맨 꼭대기에 앉힌 후 밑의 의자를 뽑아내 떨어뜨리는 헬리콥터 심판이라든가, 심판 대상자의 집 자식을 2층이나 3층에서 아무렇게나 마구잡이로 내던져버리는 등등… 참으로 말로 다 할 수 없는 별 기괴(奇怪)한 잔악(殘惡)한 형태의 행태들이 중국 전역을 휩쓸었다는 것이다. 

    10여 년간의 문화혁명 기간 중에 겪었던 불안․공포와 상호불신(相互不信)과 암흑(暗黑)의 시기를 겪어보지 않은 이는 누구도 상상할 수 없을 것이라며 이를 등소평이 끝냈으니 그가 바로 중국을 건졌고 중국은 문화혁명으로 인해 적어도 20년 이상 후퇴했다는 설명이었다. 

    편집자 주 :

  • 히틀러의 나치 전체주의가 벌인 유태인 대학살.
    일본 천황전체주의가 저지른 난징대학살.
    월평균 4만영씩 처형한 스탈린 전체주의의 대학살.

    모택동 전체주의에 의해 벌어진 [대약진운동](1958~1962).
    역시 모택동 전체주의가 주도한
    [문화대혁명](1966~1976).
    그리고 크메르 루주에 의해 저질러진 [킬링필드](1975~1979) 아니던가?

    [스탈린 대학살]의 희생자는 약 4천5백만명.
    [대약진운동]
    의 희생자는 약 4천5백여만명.
    [문화대혁명]의 희생자는 약 2천5백만~3천여만명.
    [유태인대학살] 희생자는 약 6백만명.
    [킬링필드]
    의 희생자는 캄보디아 전인구 4분의 1에 달하는 2백여만명.


    특히 [대약진운동]과 관련, 영국에서 가장 권위를 인정받는 논픽션상인 BBC <새뮤얼 존슨상>의 2011년 수상작으로 홍콩대 프랑크 디쾨터 교수(런던대 박사)가 쓴 <마오의 기근>에 따르면, 그동안 2,500만명 정도로 알려진 희생자수가 최근 중국 공산당이 공개하기 시작한 문서를 통해 4,500여만명에 육박한다는 것으로 밝혀졌다.

    2010년 9월 출간된 이 책은 <이코노미스트>, <인디펜던트>, <선데이타임스>, <이브닝스탠더드> 등의 <2010년 올해의 책>으로 선정됐다.


     
    또 2010년 튜니지아(Tunisia)로부터 시작되어 리비아・이집트・시리아 등 아랍권 여러 곳으로 퍼져나가던 쟈스민 혁명(Jasmine revolution)을 통해서는 무엇이 얻어지고 있는가? 

    아랍권에도 보다 많은 자유가 흘러들어가는 듯 보이더니 불과 5-6년 사이에 아랍난민들의 유럽으로의 대탈출이라는 쓰나미가 일어나면서 Brexit를 촉발시키고 터키의 독재를 가능케 하고 있으며 또 다른 어떤 결과를 야기할 찌도 모를 정도로 혼미다. 그러나 길게 보며 결국 그곳에도 자유가 커지고 넓어지기를 기대해 본다.    
     
    30여 년 전 베르사유 궁 미술 전시실을 나오면서 저 피의 결실은 무엇이었냐고 자문했던 질문이, 10여 년간의 홍위병을 앞세운 문화혁명(文化革命)으로 중국이 20년 이상을 후퇴했다며 중국인 교수가 치를 떨면서 들려줄 때, 폴포트의 만행이 상기되어 올 때, 그리고 불과 5-6년 전에 아랍권에서의 불었던 쟈스민 혁명을 목격하면서 다시 한 번 더 강하게 필자의 뇌리를 때렸다.

    그리고 2016년 하반기 들어 최장수 공산(共産)독재자 카스트로의 죽음을 보면서 아울러 공산(共産)혁명가 차베스가 남기고 간 베네수엘라의 경제 및 국가파탄 모습을 목격하면서 한 번 더 무슨, 무슨 혁명이란 이름으로 당하고 흘린 그 엄청난 질곡(桎梏)과 피의 대가로 과연 무엇들이 얻어졌단 말인가를 되묻게 된다.

    불란서 혁명 때 흘린 그 엄청난 피에 대해서는 많은 역사학자들이 자유・평등・박애라는 고귀한 가치를 얻기 위한 피였다고들 강변하기도 하지만 과연 그런가? 약간 논리의 비약이긴 하지만 역사가 과연 인간에 의해 엮어져가는 것일까? 아니면 마치 보이지 않는 손(invisible hand)이라는 가격메커니즘을 통해 수요와 공급의 균형화(balancing)가 이루어지는 시장의 가격메커니즘에서처럼 역사도 일견 사람들에 의해 이뤄지는 것 같지만 결국은 안 보이는 어떤 손에 의해서 역사가 진행되어 가는 건 아닌가? 

    이런 추론을 해보는 것은 불란서 혁명이 있은 지 150여년이 지난 1946년에서야 비로소 불란서에서 여자에게 투표권이 주어졌기에 평등의 가치를 내세웠던 불란서 혁명에 의해 남녀평등이 실현되었다고는 결코 보여 지지가 않기에 말이다. 한편 불란서 이웃 스위스에서는 1971년에서야 여자에게 투표권이 주어졌다는 사실은 현재 우리나라에서 국가정체성을 부정하는 것까지도 표현의 자유라고 외쳐대는 종북좌파로 불리는 반국가무리들의 존재가 얼마나 엄청 자유를 왜곡하며 거짓과 허위로 무지한 사람들을 선동하며 혹세무민하는가를 새삼 깨닫게 해준다.

    피로서 자유가 얻어진다면 1980년대 중후반 구소련연방이 해체되고 자유의 물결이 흘러들어가고 시장경제에 편입되게 된 것도 과연 피의 대가로서 얻어진 결과인가? 그게 아니지 않은가? 그렇다면 구소련연방은 왜 1980년대 중후반에 해체되었는가? 아니 왜 해체될 수밖에 없었는가? 이 물음에 대한 답은 여러 관점과 각도에서 제시될 수 있을 것이나 필자는 혁신의 관점에서 이해해 보고 싶다.



  • 가치창조(value creation)의 동인인 창의성과 혁신이 최대한 발현되려면 각자 개인에게 사유재산권을 보장해주며 윈윈(win-win)의 단순 룰(simple rule)을 제시해주고 자유를 최대한 허용해 줄 때라야 가능하다는 자기조직화(self-organization)의 메시지가 원용될 수 있음을 카오스(chaos)이론과 복잡성(complexity)이론은 전해준다.

    이는 혁신활동이 자유롭게 허용되는 시장경제와 자유민주주의 하에서는 혁신의 결과는 언제나 시장의 고객들에 의해 객관적으로 평가받게 되므로 끊임없이 보다 더 혁신적인 활동이 촉진되게 되고 그래서 국부(國富)가 증대되게 됨을 의미한다. 곧 혁신기술이 체화되는 시장경제/자유민주주의 체제에서는 국부가 증대하나 그렇지 않은 곳에서는 경제가 피폐화될 수밖에 없다는 얘기이다.
    1980년대 초반을 전후한 디지털화(digitalization)혁명과 뒤이은 인터넷혁명은 계획지상주의(至上主義)와 엄격한 통제 및 감시체제를 기본으로 하는 공산권에서는 결코 편승할 수 없는 대(大)질풍노도와도 같은 충격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혁신은커녕 개선・개량이라든가 심지어는 정비・보수기능마저도 찾아볼 수 없는 공산체제하에서 피폐화될 대로 피폐화된 낡은 체제가 디지털 혁명으로 전혀 새로운 기술경제패러다임으로 이동하자 구소련연방은 1985년서부터 무너지기 시작했고 1989년에 완전히 붕괴되면서 자유의 물결이 쏜살같이 급격하게 구공산권으로 흘러들어갔던 것이다.
     
    긴 역사의 흐름 속에서 보면 자유는 때론 느리게 또 때론 거세게 또 어떤 땐 잠시 거꾸로 꼬이기도 하지만 길게 보면 세월과 함께 점점 더 넓게 퍼지는 비대칭(非對稱)의 한 방향으로 신장되어왔음을 보여주는데 특히 근・현대사는 이런 경향을 잘 보여준다.
     
    그러나 이 자유(自由)물결의 흐름은 결코 오만(傲慢)과 냉혈(冷血)과 폭력(暴力)과 파괴(破壞)와 살육(殺戮)을 일삼는 포악(暴惡)한 인간들에 의해서가 아니고, 남아선호(男兒選好)로 여아(女兒)영애(令愛)를 살해하면 할수록 계속하여 여아(女兒)를 더 낳게 하여 성비(性比)까지도 맞추어 주시는 만드신 분의 질서에 의해서 엄격하게 진행되고 있음을 실감케 한다.
     
    지금도 세계 이곳저곳에서 무슨 혁명, 무슨 혁명을 내걸며, 민족주의, 국가주의, 자본주의, 민주주의, 공산주의, 상대주의, 다원주의, 물질주의, 모던이즘, 포스트 모던이즘, 실증주의 등등 그 많은 이견(異見)과 상충(相衝)의 대 혼란 속에서 자유와 평등과 정의를 외쳐대지만 참으로 옳은 자유와 평등과 정의에 대한 합의(合意)는커녕 말잔치만 풍성하고 반목(反目)만 심한 글로벌 촌의 오늘의 모습이다. 



  • 그러면 지금 우리의 모습은 어떠한가?

    박근혜대통령의 오랜 친구로 보이는 측근 최순실에 대한 주변관리의 부실과 국정농단에 대해 사실과 진실은 없고 오직 극소수를 제외한 거의 모든 언론과 미디어매체들이 소설 쓰듯 써대는 과장, 거짓, 허위, 날조와 쩍하면 민심・국민 운운하는 함량미달의 정객들과 민주화의 탈을 쓴 종북좌파들의 괴설과 요설에 선동되는 일부시민들과 전문 시위꾼들이 벌이는 촛불시위에 밀려 (아직은 박대통령의 확정된 범죄행위라든가 확정적으로 들어난 것이 없다는 의미로 이해바람) 드디어 박대통령의 조기퇴진이 발표되기에 이르렀다.

    특정지역으로부터 일사분란하게 동원되어 오는 시위꾼들은 그렇다손 치더라도 농촌트랙터 1,000대를 촛불시위에 동원해대는 그 자금력과 조직의 핵심은 누구며 그 배후는 과연 어디인가?

    그러면 그렇지. 횟수를 더해가면서 촛불시위 속에서 야금야금 등장한 ‘혁명동지’‘이석기석방’‘부역자’‘목숨만은 살려주마’‘불태워 죽이리라’ 등등의 구호는 이들이 누구인가를 드디어 담대하게 노골적으로 내보이고 있다.

    이들이야말로 대한민국의 적화(赤化)를 꿈꾸는 북쪽무리들의 핵무장을 도우며 그들과 내통하고 있는 여적・이적자들이 아닌가, 라고 의심을 품으며 오랫동안 침묵해 온 많은 국민들이 이제 그 시급성을 깨닫고 여적・이적자들을 모두 밝혀내 박멸・괴멸・섬멸시켜야 한다는 목소리를 거세게 내기 시작했다.

    우리는 이 땅을 지켜야만 한다.

    왜냐하면 우리와 우리 새끼들이 살아야 할 곳은 오직 대한민국 이곳 뿐이기 때문이다.

    이쯤에서 다시 한 번 자유(自由)/평등(平等)/정의(正義)와 혁명(革命)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본다.

    ‘일하지 않는 자는 먹지도 마라!’ 또 ‘가진 자는 더 가질 것이고 못 가진 자는 가졌다고 생각하는 그것마저도 빼앗길 것이다.’ 라는 바이블의 경구(警句)는 ‘결과의 평등(equality of consequences)’을 부정하며 ‘더 일하는 자는 더 가질 것이고 덜 일한 자는 덜 가질 것이며 아예 아무 일도 하지 않은 사람은 아무 것도 못 가질 것’임을 일러준다. 그래서 평등은 ‘결과의 평등’이 아닌 ‘기회의 평등(equality of opportunities)’에서 찾을 때라야 참으로 옳은 평등이요, 정의는 ‘뿌린 대로 거두는 인과응보(因果應報), 사필귀정(事必歸正)의 질서’로부터 찾을 때라야 참으로 옳은 정의임을 또한 일깨워 준다. 그리고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라는 말씀은 ‘자유는 언제 어디서나 진리 편에 섰을 때’라야 만 참으로 옳은 자유임을 또한 선언하고 있다.  


    - 한양대 김인호 명예교수; 다이나믹 매니지먼트 학회장


    ■ 필자 소개

  • 김인호(金寅鎬) : 한양대 명예교수, Dynamic Management Society 회장.

    지난 50여 년간의 대한민국 산업화 경험을 독자적으로 이론화한 Dynamic Management View 이론의 주창자.

    세계유수 전략경영학술지 Technology Analysis & Strategic Management (SSCI)에 등재되는 Dynamic Management View 이론의 실용적 접근법을 세계경영학계와 국내・외 산업계로 확산시키고 있는 국내 석학.

    중국 북경대와 천진 난까이(Nankai) 경영대 석・박사과정에서 이 이론을 정규과목으로 채택하고 있음. 그리고 현재 Dynamic Management View 관점의 한국 대기업 진화논리가 세계유수출판사인 Wiley 경영백과사전 (3판, 2015)에 실려 전 세계로 보급.

    주요논문으로는 Dynamic Management View: Logic of Profit Seeking based on the Adaptation to Technological change and Needs Evolution through Needs-Focused Innovation, Technology Analysis & Strategic Management (SSCI, 2017 forthcoming) 있으며, 저서로는 Dynamic Enterprise Strategy (Peking Univ. Press, 2013), Why Industrial Hegemony Shifts (Lambert Academy Publishing, 2010), Dynamic Management Theory (Hanyang Univ. Press, 2008), 다이나믹 매니지먼트과 기업일반이론 (비봉출판사, 우수학술도서), 세계 산업주도권 이동원리(한국경제신문사, 삼성맨 필독서), 기업파워는 어디에서 오는가? (한국경제신문사, 제7회 전경련 자유경제출판문화상, 1996) 등이 있음.

    이익추구(Profit Seeking) 일반이론으로 불리는 ‘Dynamic Management View’와 ‘소유와 경영의 조화 (Harmony of Ownership and Management)’라는 한국특유의 기업지배구조(corporate governance)로 대한민국 산업화 성공을 설명하는 Korean Style Management가 12월 12일 홍콩에서 열리는 2016 Strategic Management Society  Special Conference 에서 소개될 예정.



    [사진 = 베르사유궁전(Chateau de Versailles) 홈페이지 / 픽사베이 (https://pixaba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