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신문 "대통령이 단독으로 결정할 수 있는 사안이 없다" 추가 의혹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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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5일 오후 청와대 춘추관에서 이뤄진 박근혜 대통령의 대국민 사과는 이례적일 정도로 신속하게 준비됐다는 후문이다.

    전날 JTBC 측의 보도가 나온 직후 청와대가 당혹감 속에서 심야에 긴급대책회의를 연지 불과 19시간 만이다.

    최순실(최서원으로 개명·60)씨를 둘러싼 의혹이 혼잡할 정도로 난무하자 하루빨리 논란을 진화하기 위해 '대국민 사과'라는 정면돌파 카드를 꺼내든 것으로 보인다.

    박근혜 대통령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최순실씨에 대한 연설문 전달이 자신의 지시로 이뤄진 일임을 인정하고 국민들에게 머리를 숙였다. 직원들에게 죄를 뒤집어 씌우지 않겠다는 박 대통령의 의리와 책임감이었다.

    박 대통령은 "최순실씨는 과거 제가 어려움을 겪을 때 도와준 인연으로 지난 대선 때 주로 연설이나 홍보 등의 분야에서 저의 선거 운동이 국민들에게 어떻게 전달되는지에 대해 개인적인 의견이나 소감을 전달해 주는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JTBC> 방송은 지난 24일 최순실씨가 사무실을 비우면서 건물 관리인에게 처분을 부탁하고 간 컴퓨터에서 44개의 대통령 연설문을 포함해 모두 200여개의 파일을 발견했다고 보도했다.

    이 컴퓨터에는 박근혜 대통령의 공식 행사 연설문을 비롯해 국무회의 발언, 대선 유세문, 2012년 대선후보 TV토론 자료 등이 담겨 있었다.

    JTBC 측은 최순실씨가 해당 파일을 받아본 시간은 박근혜 대통령이 실제 연설을 하기 전으로, 비선(秘線) 실세 의혹을 받고 있는 최순실씨가 각종 연설문을 사전에 받아본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이에 박 대통령은 "저로서는 좀 더 꼼꼼하게 챙겨 보고자 하는 순수한 마음으로 한 일이지만,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치고 놀라고 마음 아프게 해 드린 점에 대해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사과의 뜻을 표했다. 사실상의 고백이다. 

    다만 박 대통령은 "취임 후에도 일정 기간 동안은 일부 자료들에 대해 의견을 들은 적도 있으나, 청와대의 보좌 체계가 완비된 이후에는 (최순실씨에게 도움을 받는 것을) 그만뒀다"고 설명했다.

    JTBC 측의 보도 직후, 진위(眞僞) 여부와는 상관 없이 쏟아지는 후속 의혹들을 선제적으로 차단한 해명으로 풀이된다.

     

  • ▲ ⓒ 한겨레신문 인터넷판 캡처.
    ▲ ⓒ 한겨레신문 인터넷판 캡처.

     

     

    #. JTBC 특종에 정국 들썩이자, 한겨레 "30㎝ 자료"

    JTBC 측의 특종 보도가 입소문을 타자 한겨레신문은 인터넷판을 통해 "최순실씨 사무실 책상에는 항상 30㎝ 정도 두께의 대통령 보고 자료가 놓여 있었다"고 주장했다.

    한겨레는 "(항상 쌓여 있던 30cm 정도 두께의) 자료는 주로 수석들이 대통령한테 보고한 것들로, 거의 매일 밤 청와대의 정호성 제1부속실장이 사무실로 들고 왔다"고 했다.

    한겨레는 해당 의혹은 이성한 전 미르재단 사무총장과의 인터뷰를 통해 제기됐다고 했다.

    보도에 따르면, 최순실씨는 주로 자신의 논현동 사무실에서 각계의 다양한 전문가를 만나 대통령의 향후 스케줄이나 국가적 정책 사안을 논의했다. 이런 모임을 주제별로 여러 개 운영했는데 일종의 대통령을 위한 자문회의 성격이었다.

    이성한 전 미르재단 사무총장은 문제의 모임과 관련해 "적을 떄는 2명, 많을 때는 5명까지 모였는데 나도 몇 번 참석한 적이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모임에 오는 사람은 회의 성격에 따라 조금씩 바뀌었지만 차은택씨는 거의 항상 있었고 고영태씨도 자주 참석했다"고 했다.

    한겨레는 모임의 논의 주제에 대해, "10%는 미르-K스포츠재단과 관련한 일이지만 나머지 90%는 개성공단 폐쇄 등 정부정책과 관련된 게 대부분으로 최순실씨는 이를 박근혜 대통령의 관심사항이라고 표현했다"고 못을 박았다.

    심지어 한겨레 측은 "이 모임에서는 인사 문제도 논의됐는데 장관을 만들고 안 만들고가 결정됐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다음과 같이 부연했다.

    "대통령이 단독으로 결정할 수 있는 사안이 없다. 최씨한테 다 물어보고 승인이 나야 가능한 거라고 보면 된다. 청와대의 문고리 3인방도 사실 다들 최씨의 심부름꾼에 지나지 않는다."

    한겨레 측의 의혹 제기에 청와대는 이렇다 할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박 대통령의 대국민 사과 이후 굳게 입을 다문 비서진들이다.

    다만 춘추관 출입기자 사이에선 "아무리 친한 사이라고 해도, 어떻게 최순실이 대통령을 넘어서는 권력을 가질 수 있겠냐"며 의혹이 부풀려졌을 가능성을 지적하는 의견이 많았다.

     

  • ▲ 새누리당 정진석 원내대표가 25일 최순실씨를 둘러싼 의혹과 관련해 박근혜 대통령에게 해명을 요구하고 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새누리당 정진석 원내대표가 25일 최순실씨를 둘러싼 의혹과 관련해 박근혜 대통령에게 해명을 요구하고 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진상 규명 없이는 '의혹 폭탄' 바로 잡을 수 없어

    정치권에선 "한겨레의 의혹 제기는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는 얘기도 나왔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박근혜 대통령이 JTBC 보도를 인정하면서 앞으로 무분별한 의혹 제기가 봇물을 이룰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 관계자는 "최순실씨에 대한 진상 규명과 스스로의 입장 표명이 제대로 이뤄지기 전까지는 부풀려진 의혹 보도를 막을 길이 없다"고도 했다.

    구체적인 해결 방안이나 쇄신책 제시 없는 대국민 사과 조치만으로는 의혹 정국을 바로 잡을 수 없다는 지적인 셈이다.

    새누리당의 시각도 비슷했다.

    김현아 새누리당 대변인은 박 대통령의 대국민 사과 직후 공식 브리핑을 통해 "이번 문건 유출 사건에 대해 반드시 진상규명이 있어야 한다"고 밝혔다.

    김현아 대변인은 "지금이라도 객관적이고 신속한 수사로 이번 사건의 실체를 수사해서 납득할 만한 조치가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새누리당은 국민 우려와 심려를 불식시킬 수 있는 엄중한 후속 조치를 당내 의견을 모아 요구한다"고 말했다.

    청와대의 명확한 후속 조치가 뒤따르지 않을 경우, 야당이 주장하는 국정감사(국감)와 특별검사(특검)는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박 대통령의 대국민 사과를 계기로 정국 주도권은 불과 하루만에 거대 야당에 다시 넘어가게 됐다. 전날 개헌(改憲) 제안을 계기로 가까스로 정국 주도권을 잡는가 싶더니 24시간도 안돼 레임덕 위기에 놓인 박 대통령이다.

    친문(親文)-친북(親北) 성향인 더불어민주당은 최순실씨 의혹과 관련, 특검 도입을 당 차원에서 추진키로 했다.

    윤관석 수석대변인은 "진상규명을 위해 오는 26일 의원총회를 열고 최순실 게이트 특검을 당 차원에서 추진키로 했다"고 말했다.

    그는 "대통령도 기자회견에서 인정했 듯 비선실세가 국정에 개입한 것이 확인되고 있는데, 이 부분에 대해 철저한 수사가 필요하고 청와대 비서진의 전면교체가 필요하다고 의견을 모았다"고 했다. 상설특검 대신 수사권이 보장되는 특검법을 따로 발의하겠다는 의사도 밝혔다.

    안철수 국민의당 전 대표는 "특검을 포함한 성역 없는 수사로 짓밟힌 국민들의 자존심을 다시 세우고 박근혜 대통령도 당연히 수사대상에 포함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안철수 전 대표는 청와대 비서진 전면 교체, 내각 총사퇴도 요구했다.

    비박계의 움직임도 심상치 않다. 하태경 의원은 "국회는 특검을 발동해서 비선실세 최순실의 국정농단 사건을 엄정 수사해야 한다"고 특검 도입을 요구했다. 김용태 의원은 "여야가 특검 도입을 합의하면 공정하고 엄정한 수사를 위해 대통령이 당적정리 등 필요한 조치를 할 것으로 기대한다"면서 박 대통령의 탈당을 요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