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스팔트 우파 내팽개친 조선일보, 정체성 잃은 '혼탁 보도' 지속

  • 소위 조중동 류(類)로 불리는 메이저 신문과 마이너 신문을 구분짓는 잣대는 무엇일까? 혹자는 신문의 부수나 홈페이지 방문자수를 거론할지도 모른다. 또 한 해 매출 규모나 기자들의 머릿수도 양적 평가의 주요 기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독자들의 뇌리에 새겨진 이미지는 좀 다른 듯 하다. 30여년째 국내 10대 유력 일간지에 거론되는 매체들의 면면을 봐도 그렇다. 매출 규모만 놓고 보면 일부 매체들은 10위권 밖으로 밀려나야 마땅하나, 지금도 '메이저 신문을 꼽아보라'는 질문을 건네면 의례히 이들 매체들을 거론하는 이들이 부지기수다.

    한 신문 종사자는 이렇게 얘기한다. 독자들 마음을 얻기가 마누라 환심사는 것보다 더 어렵다고. 실제로 그렇다. 시류(時流)에 민감한 독자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별의별 노력을 다해도 막상 회원 가입자수나 트래픽을 보면 제자리 걸음을 걸을 때가 많다. 그만큼 충성도가 높은 '신규 독자'를 얻기가 어렵다는 얘기다. 반대로 말하면, 한 번 자리를 굳힌 독자들은 좀처럼 다른 신문으로 눈길을 돌리지 않는다. 같은 성향의 신문을 복수 구독하는 경우는 있어도, 다른 성향의 신문까지 정기 구독하는 이들은 거의 없다.

    결국 신문의 레벨과 경중(輕重)을 나누는 건, 어떤 절대적인 '규모지표'가 아니라 호불호가 분명한 독자들의 '인식'과 '주관'에 달려 있다고 하겠다. 한 번 독자가 된 이들은 웬만해선 신문을 바꾸지 않는다. 일단 성향과 논조가 자신과 맞는다는 판단이 서면 계속해서 해당 신문을 구독하고 그 신문을 통해 바깥 세상을 보려는 경향이 있다. 마치 한 번 응원하기 시작한 야구 구단을 평생토록 지지하고 좋아하는 것처럼 신문 애독자들도 자신들이 보는 신문에 대해선 대단한 애착심을 갖고 있다.

    따라서 '골수 독자'들의 충성도가 높고, 그 독자들의 힘이 강한 매체가 바로 메이저 신문이라 할 수 있다. 여러 매체들 중에서도 역사성이 깊고 고정 독자층이 탄탄한 조중동이 정상급(頂上級) 메이저 언론이라 불리는 까닭도 바로 여기에 있다. 동일한 기준으로 볼 때 '아스팔트 좌파 독자층'을 보유한 한겨레신문 역시 간과하기 어려운 주요 언론사로 분류된다.



  • '1등 신문' 독자들이 심상치 않다?


    현존하는 우리나라 신문 중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닌 조선일보는 자타 공인 국내 1위 신문사다. 국내 최다 발행부수를 자랑하는 조선일보가 '양적인 면에서' 국내 최고 일간지라는 데에는 아무도 이견을 달지 못할 것이다.

    그런데 최근 들어 조선일보 독자들 사이에서 '불길한 징조'가 감지되고 있다. "오늘부로 조선일보에 대한 애정을 끊겠다"며 '절독 선언'을 하는 독자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 실제로 반평생 조선일보 애독자를 자처해온 한 어르신은 "요즘은 조선일보가 대체 무슨 소리를 하고 싶은 건지 통 모르겠다"며 "얼마 전 다른 신문으로 갈아탔다"는 푸념을 늘어놨다. 부모님이 아시는 한 지인 분의 얘기다.

    온라인상에서도 비슷한 징후가 나타나고 있다. 각종 기사에 달린 댓글을 읽어보면 "조선일보에 실망했다"는 말들이 심심치않게 나온다. 박주신(박원순 서울시장 아들)씨 '병역비리 의혹'을 단 한 줄도 언급하지 않을 때부터 조선일보를 비판하던 독자들은 최근 '송희영 주필 사건'에 '우병우 수석 사태'까지 터지자, "조선일보의 정론직필(正論直筆) 정신이 무너졌다"며 "조선일보는 더 이상 보수우파신문이 아니"라고 등을 돌리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성적이 바닥을 긴다고 지지하는 야구단을 바꾸지 않는 것처럼 신문이 평소와 다른 목소리를 낸다고 이를 단박에 내치는 독자는 없다. 대부분 비판은 할지언정 비난은 하지 않는다. 애정을 담보한 비판은 오히려 자신이 읽는 신문에 자양분이 될 거라고 믿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그런 면에서 최근 조선일보 독자층에서 일고 있는 변화의 움직임은 심상치 않다. 종교 만큼 바꾸기 어렵다는 신문을 과감히 바꾸고, 타 신문에 쏟아내던 '독설'을 조선일보에 퍼붓는 일부 네티즌들의 모습은, 반세기 이상 이어온 '보수 언론계'에 일대 지각변동이 일어나고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 김진태 새누리당 의원이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통해 ‘박수환 게이트’에 연루된 유력 언론인이 조선일보 송희영 주필이라고 밝히고 있다.  ⓒ 뉴시스
    ▲ 김진태 새누리당 의원이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통해 ‘박수환 게이트’에 연루된 유력 언론인이 조선일보 송희영 주필이라고 밝히고 있다. ⓒ 뉴시스



    '나사 풀린' 조선일보, 송희영 사태로 극명


    조선일보가 '나사'가 풀렸다는 것은 영화 '내부자들'을 연상케 하는 송희영 주필의 호화스런 외유 행적이 발각된 뒤 조선일보가 취한 태도를 보면 알 수 있다.

    범법 여부를 떠나 송 주필의 행적은 조선일보가 쌓아올린 명성과 자존심에 깊은 상처를 냈다. 모두가 이를 '권력형 비리'의 단면으로 바라보는 그때, 조선일보는 '사실 관계'를 명확히 밝혔어야했다. 누군가가 따로 지적하기 전에 오해가 생긴 것은 풀고, 잘못한 점이 있었다면 깨끗이 사과하는 부형청죄(負荊請罪)의 모습을 보였어야했다.

    그러나 조선일보는 송 주필의 해명만 실은 뒤, 비난 여론이 거세지자 뒤늦게 사표를 수리하는 '꼬리자르기 식' 행동을 보였다. 1면 하단에 사과문을 게재한 날에도 조선일보는 사설을 통해 "언론인 개인 일탈과 권련 비리 보도를 연관짓지말라"는 앙칼진 목소리를 냈다.

    이 칼럼에서 조선일보는 "기자들이 권력 비리의 의문을 갖고 발로 뛰어 파헤친 기사를 그 언론에 있는 다른 특정인의 도덕적 일탈과 연결지어 음모론 공격을 펴는 건 청와대가 할 일은 아니"라며 '조선일보 경영진이 우 수석 측에 (대우조선 사장)연임 민원을 넣었다가 거절당하자 우 수석 관련 기사를 쓰게 했다'는 청와대 고위 관계자의 말을 반박하는 태도를 보였다.

    일선에서 뛰는 기자들이 '부패 기득권 세력'의 식구로 치부되는 수치스러운 상황이 전개됐음에도 불구하고 조선일보는 진상조사는 커녕, 이번 사태를 송 주필 개인의 실수로 묻어버리려는 모양새를 취했다.



  • "박지원 의원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앵무새 보도 남발


    언론이 권력을 비판하는 자세는 옳다. 하지만 오랜기간 보수우파 독자층을 대변해온 조선일보가 정부와 여당을 앞장서서 매도하고 그들의 치부를 물고 늘어지는 모습은 낯설기 그지없다. 최근 들어선 보도의 균형 감각도 상실한 듯 하다. 단적인 예로 야당을 비판하는 기사보다 정부 여당을 비판하는 기사가 날이 갈수록 많아지는 양상이다.

    온라인 이슈, 일명 '스팟 뉴스(spot news)'에 대응하기 위해 신설된 조선일보 디지털뉴스본부의 최근 기사들을 살펴보자. 표본을 기자 한 명의 기사로 한정하면 느낌이 좀 더 명확해진다.

    요 근래 A기자가 작성한 기사 중 정치 부문 기사들을 보면, 죄다 야당 입장에서 쓴 기사들 뿐이다.

    24일 오전 박근혜 대통령이 국회 시정연설을 한 사안을 기사화 할 때에도 A기자는 '대통령이 이러이러한 얘기를 했다'는 스트레이트가 아니라, '대통령이 밝힌 내용을 야당 측의 누가 비판을 했다'는 식으로 쓰고 있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24일 박근혜 대통령이 예산안 시정연설에서 '개헌'을 전격 제안한 것과 관련해 "대통령 눈에는 최순실과 정유라 밖에 안보이느냐, 재집권 생각 밖에 없느냐"라며 강하게 비난했다.

    24일 박근혜 대통령이 국회 시정연설에서 개헌 추진을 공식 발표한 가운데 노회찬 정의당 의원이 “급조된 개헌정국 배경이 불순하다”고 비판했다.


    더욱 특이한 점은 A기자가 박지원 국민의당 원내대표가 공개석상이나 SNS상에서 발언을 하면 이를 대부분 기사로 소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19일 최경희 이화여대 총장이 사퇴한 가운데, 박지원 국민의당 비상대책위원장 겸 원내대표가 최순실씨의 딸 정유라씨의 입학 및 학점 특혜에 대한 진상 조사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박지원 국민의당 원내대표 겸 비상대책위원장이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의 국감 출석을 촉구했다.

    박지원 국민의당 비상대책위원장이 손학규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공감대를 형성했다.

    박지원 국민의당 비상대책위원장이 고 백남기씨의 부검과 관련해 "고 백남기 선생을 끝까지 지켜야 한다"고 밝혔다.

    박지원 국민의당 비상대책위원장 겸 원내대표는 박근혜 대통령이 '이 사람들이 아직도 있어요?'라고 발언하자 고위 공직자들의 사퇴가 결정됐다는 보도와 관련해 "이런 말은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을 향해 하셔야 된다"고 지적했다.


    A기자는 박지원 원내대표 외에도 더불어민주당의 공식 성명이 나오면 이를 즉각 기사로 반영하면서도 새누리당 측의 입장이나 성명은 거의 반영하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행태만 보면 거의 야당 출입 기자를 능가하는 수준이다. 같은 사안을 두고도 야당 측 인사의 발언만 인용·소개하는 모습은 마치 골수 좌파 언론을 방불케 할 정도.

    스트레이트 형식의 기사라 '발언 전달'만으로 야당 측의 입장을 두둔한다고는 볼 수 없지만, 기사 꼭지수나 형평성을 고려하면 명백히 야당 측에 우호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물론 상황에 따라 야당 인사의 발언이 화제선상에 올라 이를 집중적으로 기사화했을 수는 있다. 그러나 꾸준히 여당이 아닌 야당 측 인사들의 발언만 골라 기사화했다는 점은 A기자 뿐 아니라 디지털뉴스본부 데스크의 편집 방향마저 의심케 하고 있다.   

    디지털뉴스본부의 총책임자는 신효섭 본부장으로 명기돼 있으나, 실질적인 데스킹 업무는 부본부장인 박은주 기자가 담당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국일보 출신으로 문화부에서 잔뼈가 굵은 박 기자는 지난해 '돌아온 것은 공허함만 남았다. 대통령의 국어 실력'이라는 제하의 칼럼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문법에 맞지 않는 문장을 사용했다"고 주장해 파란을 일으켰던 인물.

    당시 박 기자는 박 대통령의 구두 발언을 문장으로 옮겨놓은 뒤 문법에 어긋나는 부분을 '첨삭 지도'하는 사상 초유의 시도를 해 '지나친 트집잡기'라는 비난을 받은 바 있다.



  • 김갑수 "정권이 바뀌면 '작살낼 놈'들을 작살내야"


    계열사이긴 하지만 TV조선 얘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애당초 보수 언론의 기치를 걸고 야심차게 출발한 TV조선은 한때 보수층 시청자들을 안방극장으로 결집시키는 등 본래의 목적에 충실한 모습을 보였으나, 종편 재승인심사를 거치고 수익구조 개선 노력을 기울이면서 점차 'JTBC화(化)' 하는 행태를 띠고 있다.

    오락 프로그램 편성 비중이 낮다는 방통심의위 지적과 더불어 정치적 편향성이 두드러진다는 각계의 비난에 시달리던 TV조선은 근자에 들어 파격적인 인재(?) 등용으로 관심을 끌고 있다.

    MBC 앵커 출신으로 각종 구설에 휘말린 최일구 전 기자를 프로그램 진행자로 깜짝 기용하는가하면, '종편 저격수' 최민희 전 의원을 패널로 들어 앉히는 묘수를 부리기도했다. 독설가로 정평이 난 표창원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김갑수 문화평론가가 '강적들'에 출연한 것도 TV조선 시청자들에겐 '충격'을 주기에 충분했다.

    정권이 바뀌면 국정원장 직을 이재명 성남시장이 맡아야 합니다. 대선에서 승리한 이후에 국가정보원장이 '작살낼 놈'들을 작살내는 역할을 하셔야 합니다.

    문제는 내년에 대선이 있을까하는 점입니다. 대선 전 내란에 준하는 사태가 유도 될 수 있고, 교전이 일어날 수도 있고, 생각하기 싫지만 유력 후보의 암살도 있을 수 있습니다.

    지금은 '대선에서 이길 수 있을까'가 아니라, 대선이 없어질지도 모르는…, 우리 모두가 엄청난 인명살상을 각오해야 될지도 모르는, 그런 상황을 제어해 대선에서 승리해야 합니다.

        - 문화평론가 김갑수 (정청래 전 의원의 출판기념회 중에서)


    다행스럽게도 TV조선의 '실험'은 대부분 실패로 끝났다. 최일구가 진행하던 'B급 뉴스쇼 짠'은 시청률 부진으로 '순식간에' 막을 내렸고, '강적들'의 김갑수는 얼마 전 정청래 전 의원의 출판기념회 자리에서 망발을 내뱉은 이후 '하차 통보'를 받는 굴욕을 겪었다.

    그러나 TV조선의 이같은 '기회주의적 발상'은 앞으로도 계속 시도되리란 전망이다. 박한명 미디어그룹 '내일' 대표는 지난 6일 바른언론연대가 개최한 토론회에서 "종편의 편파성 불공정성 선정성 등의 문제는 종편의 생존문제에서 비롯된다고 볼 수 있다"며 "미디어환경을 무시하고 정부가 채널 사업자를 과다 선정하면서, 종편사들이 양질의 고품격 콘텐츠 제작보다 저비용 고효율의 손쉬운 콘텐츠 제작에 매달릴 수밖에 없도록 만들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이날 박 대표는 "특히 종편사는 3년마다 정부로부터 방송 재승인 심사를 받도록 돼 있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정치권력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며 "4.13총선에서 여당이 참패하면서 여소야대로 끝나자마자 TV조선이 곧바로 프로그램을 개편, 보수우파 색을 확 빼고 다음 정권에 대비하는 태세로 변신한 것도 거기에서 기인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해 눈길을 끌었다.

    조우석 미디어펜 주필도 비슷한 취지의 칼럼으로 조선일보의 '변절'을 고발한 바 있다. 조 주필은 지난해 시사주간지 '미래한국'에 기고한 칼럼에서 "TV조선이 앞장서고, 조선일보가 뒤따라가는 구조는 JTBC와 함께 좌편향의 길을 걸어갔던 중앙일보와 완전히 닮은꼴"이라며 "조선일보의 타락은, 조선일보의 선동 언론화는 한국 사회를 받쳐오던 공공재(公共材)의 훼손 혹은 손실을 의미한다"고 경고했다.

    전문가들의 주장을 굳이 빌리지 않더라도 조선일보의 변화는 독자들이 먼저 감지하고 있다. 지면에서, TV화면에서 조선일보의 낯선 얼굴을 목도한 이들은 하나같이 대한민국의 체제 위기를 걱정하고 있다.

    오늘날의 조선일보를 만든 '독자들의 외침'을 조선일보가 재삼 외면하는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어쨌거나 지금 대한민국은 명백한 체제 위기(regime corruption) 직전의 상황이며, 여기에 일조한 조선일보 지면은 그래서 유죄다. 당신들의 각성을 기대한다.

          - 조우석 미디어펜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