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혁신’ 말하기 전에 지하철 안전부터
  • ▲ 19일 오전 서울 강서구 지하철 5호선 김포공항역에서 승객 한명이 스크린도어에 끼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승객들이 열려있는 사고현장에 열려 있는 스크린도어를 바라보고 있다. ⓒ 사진 뉴시스
    ▲ 19일 오전 서울 강서구 지하철 5호선 김포공항역에서 승객 한명이 스크린도어에 끼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승객들이 열려있는 사고현장에 열려 있는 스크린도어를 바라보고 있다. ⓒ 사진 뉴시스


    소중한 생명 하나가 다시 숨을 거뒀다. 이른 아침 붐비는 출근길, 서울지하철 5호선 김포공항역에서 그는 어이없는 죽음을 맞았다. 사고가 난 뒤 희생자와 관련해 알려진 정보는 30대 중반의 남성이란 사실 뿐이다.

    누군가의 아빠였거나 누군가의 아들이었을 아까운 목숨은 불과 다섯 달 전 비슷한 사고로 유명을 달리한 구의역 사고 희생자와 같이 ‘사고’로, 사랑하는 이들의 곁을 떠났다.

    19일 아침 서울지하철 김포공항역 승강장에서 벌어진 참변(慘變) 소식을 접한 시민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안타깝다는 반응을 나타냈다. “겁나서 지하철 못 타겠다”는 말이 자연스럽게 흘러나왔다.

    구의역 사고 직후 전직 대법관을 위원장으로 하는 진상조사위원회을 꾸려, 다시는 같은 비극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겠다던 박원순 서울시장의 약속을 떠올리는 이들도 많았다.

    사고 직후 서울시는 김포공항역에 ‘사고수습현장지휘소’라는 거창한 이름을 붙인 임시행정기구를 만들었다. 같은 날 오후 2시에는 5호선 운영을 책임진 서울도시철도공사 사장직무대행이 기자들 앞에 나와 상황을 설명했다.

    도시철도공사는 사고 브리핑 전부터 사과와 사죄라는 표현을 여러 차례 써가며, 자세를 한껏 낮췄다. 그러나 브리핑 내용은 그들이 입으로 말한 사과와는 다소 거리감이 있었다.

    ‘현실적으로 기관사가 사고 상황을 구체적으로 확인하는 것은 어렵다’는 도시철도공사 사장직무대행의 설명은, 이번 사고가 언제든 일어날 수 있었음을 스스로 인정한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는 점에서 무책임하다는 비판을 피하기 힘들어 보인다.

    사람이 전동차와 스크린도어 사이에 갇히는 경우를 대비한 매뉴얼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다는 사실도 새롭게 밝혀졌다.

    지하철 안전을 강조하면서 출범했던 구의역 사고 진상조사단은, 무엇을 살핀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다. 당시 서울시는 스크린도어 뿐만 아니라 지하철 시스템 전체를 전수조사 하겠다고 공언했다. 서울시가 말한 시스템이 기계장치만을 말한 것이라면 진상조사단에, 민변 소속 변호사와 노조관계자, 시민단체 대표 등이 대거 참여한 의미가 없다.

    이번 사고는 인명피해 없이 마무리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어느 때보다 안타까움이 크다.

    승객의 인터폰 신고가 있었지만, 기관사는 약 30초간 전동차 문을 연 뒤, 그대로 출발했다. 승객이 전동차와 스크린도어 사이에 끼었다는 인터폰 신고를 받고도, 기관실 시스템에 경고등이 들어오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운행을 계속했다는 기관사의 진술은,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렵다.

    그렇다고 이번 사건의 책임을 기관사 개인에게만 떠넘겨서는 안 된다. 기관사 개인의 책임을 묻기에 앞서, 비상 상황이 발생하는 경우 대응방법을 정한 매뉴얼조차 없는 허술한 운영 시스템에서, 그 원인을 찾는 것이 합리적이기 때문이다.

    도시철도공사는 “이번 사고를 거울삼아 원인을 규명하고 재발방지 대책을 세우겠다”고 말했다.

    서울지하철에서는 이미 몇 년 째 ‘거울로 삼아야 할’ 사고가 일어나고 있다. 그때마다 서울시는 ‘재발 방지, 대책 강구’라는 말을 앵무새처럼 반복하고 있다.

    박원순 시장은 사고 직후, “안타깝고 부끄러운 일입니다. 투명한 공개와 원인 규명만이 더 안전한 서울을 만들기 위한 지름길”이라는 내용의 글을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렸다. 박 시장은 위 글을 통해, 철저한 사고원인 파악과 언론 공개, 기존 대책에 대한 재평가 등을 강조했다. 박 시장은 구의역 사고가 일어났을 때도 이와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 ▲ 박원순 시장 페이스북. ⓒ 화면 캡처
    ▲ 박원순 시장 페이스북. ⓒ 화면 캡처


    서울시장과 서울지하철 모두, 다섯 달을 사이에 두고 판박이처럼 닮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박원순 시장은 구의역 사고 뒤, 기자회견을 통해 ‘메피아 척결’을 외쳤다. 마치 모든 책임이 메피아에게 있는 것처럼.

    이번에도 사고의 원인을 말하며, 정부의 구조조정 탓, 메피아의 부패 탓을 한다면, 서울지하철 사고는 언제든 다시 재현될 수 있다.

    사고의 직접적 원인은, 서울지하철 운영 체계가 안고 있는 내재적 혹은 구조적 허점에 있다. 공공부문 구조조정이 사고의 원인이란 주장은, 정치적 구호는 될 수 있어도 근본적인 해법이 될 수는 없다.

    박원순 시장이 협동조합과 마을기업, 마을공동체에 쏟는 정성만큼 ‘안전’에 관심을 기울인다면, 이번과 같은 사고는 충분히 예방할 수 있다.

    박 시장이 기회가 있을 때마다 강조하는 ‘사회 혁신’은, ‘안전’이 담보된 뒤 추진해도 늦지 않다.

    “지하철 타기 겁난다”는 말이 자연스럽게 나오는 상황에서, ‘사회 혁신’을 운운하는 것은 코미디나 다름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