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기문, 타 주자 압도하는 지지 확보… 문재인, 안철수보다 상승세 뚜렷
  • 충청 대망론이라는 소용돌이의 중심에 서 있는 반기문 유엔사무총장. ⓒ칸(프랑스)=뉴데일리 정상윤 기자
    ▲ 충청 대망론이라는 소용돌이의 중심에 서 있는 반기문 유엔사무총장. ⓒ칸(프랑스)=뉴데일리 정상윤 기자

    민심의 바로미터라 불렸던 충청권이 내년 12월 치러질 19대 대선을 앞두고 대망론에 꿈틀대고 있다.

    충청권은 1992년 치러진 14대 대선 이후로 줄곧 승자의 손을 들어줬다. 충청 표심이 있는 곳이 승리했고, 승리한 곳에 충청 표심이 깃들어 있었던 셈이다.

    14대 대선에서 민자당 김영삼 후보는 대전·충남·충북에서 83만5604표를 득표했다. 여권 후보였던 김영삼 후보가 충청권에서 얻은 득표는 두 야권 후보였던 민주당 김대중 후보(62만8731표)와 국민당 정주영 후보(54만9813표)를 압도하는 것이었다.

    이랬던 충청권이 15대 대선에서는 정권교체의 주역으로 부상했다. 충남 예산 출신인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와 논산 출신인 국민신당 이인제 후보가 출마했는데도, 대전·충남·충북에서 국민회의 김대중 후보는 무려 108만6252표를 얻었다. 충청권 연고 후보인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는 67만7933표, 국민신당 이인제 후보는 65만8430표를 얻는 데 그쳤다.

    당시 대선에서 김대중 후보와 이회창 후보의 표차는 39만557표에 불과했다. 그런데 충청권에서 두 후보가 얻은 득표 수의 차이는 40만8319표였다. 결국 이회창 후보의 입장에서는 충청권에서의 패배가 대선 패배로 직결됐던 것이다. 정권교체가 이로부터 비롯됐다.

    '충청의 맹주'를 자처하던 자민련 김종필 전 국무총리가 당시 'DJP연합'을 통해 국민회의 김대중 후보의 손을 들어주긴 했지만, 충남 출신 후보가 두 명이나 나왔는데 충남에서조차 김대중 후보가 득표 1위를 했다는 것은 단순한 지역 맹주 추종 심리로 표심이 움직인 것으로는 볼 수 없다. 그만큼 충청인의 정치 감각이 날카롭고 권력의 풍향에 민감하다는 뜻이다.

    이것이 드러난 게 16대 대선이다. 충남 예산 출신인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는 대권 재수 끝에 도전에 나섰다. 이회창 후보가 충청권에서 95만2914표를 얻는 사이, 민주당 노무현 후보는 120만9200표를 쓸어담았다. 이 때 김종필 전 총리는 노무현 후보의 당선을 예견하기는 했지만, 지지 선언을 하지는 않았다. 승리하는 쪽으로 움직인다는 충청 표심의 법칙이 다시 한 번 입증된 것이다.

    이후 친노패권세력의 무능이 만천하에 드러나자, 좌파 정권이 들어서는데 결정적으로 그릇된 역할을 했던 충청 민심도 싸늘하게 돌아섰다. 17대 대선에서 충청권은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에게 84만9200표를 몰아줬다. 대통합민주신당 정동영 후보가 얻은 51만8336표와는 큰 격차였다.

    이에는 전북 출신인 정동영 후보가 대통합민주신당의 대선 후보가 되자, 호남 출신을 견제하고 짓밟는 속성이 있는 친노·친문패권세력이 자당 후보에 대한 사보타주에 나서고, 창조한국당 문국현 후보를 돕는 등의 이유도 있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는 충청 민심이 권력의 풍향이 변했다는 것을 눈치 챘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18대 대선 역시 충청권에서의 승리가 대선 승리로 귀결됐다.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는 18대 대선에서 840만 유권자가 사는 서울특별시를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에게 내줬음에도 최후의 승리를 거둬냈다. 이에는 충청 표심이 결정적이었다.

    충청권에서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는 162만7946표,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는 134만4847표를 얻었다. 두 후보 사이의 표차는 28만3099표였는데, 이는 서울에서의 박근혜 후보(302만4572표)의 문재인 후보(322만7639표)에 대한 열세(20만3067표)를 메워주고도 남는 것이다.

    이처럼 역대 대선 때마다 승자를 읽어내는 민심의 바로미터 역할을 했던 충청권이 들썩이고 있다. 이른바 '충청 대망론' 때문이다. 이 지역 출신의 유력 대권 주자가 대선을 1년 반 이상 남긴 가운데, 여론조사에서 줄곧 단독 선두를 달리는 것은 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충청권 출신으로 역대 대권에 가장 가까이 근접했던 인물은 한나라당 이회창 전 총재다. 15대 대선에서 이회창 후보가 후일 대선을 앞두고 당명을 한나라당으로 개명(改名)하게 되는 신한국당의 대선 후보로 확정된 것은 1997년 7월 21일 전당대회에서의 일이었다.

    대선을 불과 5개월도 남겨두지 않았을 때였다. 세(勢)로 보더라도 7·21 전당대회 경선 1차 투표에서 이회창 후보와 이인제 후보 중 누구도 과반의 지지를 얻지 못해 결선 투표로 갔고, 이인제 후보는 이한동 전 총리, 이수성 전 총리, 김덕룡 전 의원과 이른바 반창(反昌) 4자 연대를 결성해 맞설 정도로 대세가 누구인지는 분명치 않았다.

  •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갤럽의 6월 이래 차기 정치 지도자 선호도 설문의 추세. 이 여론조사와 관련해 기타 그밖의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공정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그래픽=뉴데일리 정도원 기자
    ▲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갤럽의 6월 이래 차기 정치 지도자 선호도 설문의 추세. 이 여론조사와 관련해 기타 그밖의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공정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그래픽=뉴데일리 정도원 기자

    반면 근래 각종 여론조사에서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의 선두 질주는 독보적이다. 이렇게까지 대선까지 많은 시간을 남긴 가운데, 충청권 출신 후보의 대망론이 일찌감치 점화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인 것이다.

    1987년 직선제 개헌 이후 충청권 출신 후보가 대선에 나선 것은 세 차례다. 1987년 13대 대선에서 김종필 전 총리는 신민주공화당의 깃발을 들고 직접 나섰다. 당시 충청권은 당선자인 민정당 노태우 후보보다 많은 표를 전국 종합 4위를 기록한 김종필 전 총리에게 몰아줬다. 29년 전에 있었던, 충청 표심과 대통령 당선자가 어긋났던 마지막 사례다.

    '충청만으로는 안 된다'는 교훈을 이 때 얻었음일까. 충청권은 이후 영남 또는 호남과는 철저히 다른 길을 걸으며 승자에게 표를 던졌다. 15대 대선에서 충남 출신 투톱이 떴는데도, 되레 호남 출신 김대중 후보가 압승했다. 16대 대선에서는 단일 충청 후보가 나섰는데도, 노무현 후보가 '잘못된 승리'를 거뒀다.

    과연 충청권은 이번에는 어떠한 선택을 할 것인가. 30년 만에 충청권이 연고 후보에게 몰표를 주는 현상이 일어날 것인가, 아니면 민심의 바로미터로서의 역할을 계속해서 수행할 것인가.

    반기문 총장은 지난 5월 제주에서 열린 관훈토론에서 대권 도전을 시사하는 발언을 했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갤럽은 그 다음달(6월)부터 차기 정치 지도자 후보군에 반기문 총장을 포함했다. 이후 4개월 간 대전·충남·충북·세종에서의 여론 흐름을 살피면 반기문 총장이 압도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

    차점자를 더블스코어를 넘어 3배 이상의 지지율 격차로 앞선 적도 많다. 가장 최근에 발표된 9월 여론조사에서도 더민주 문재인 전 대표를 16%p차로 눌렀다. 현재로서는 자신의 연고지인 충청권에서만큼은 누구에게도 도전을 허용하지 않는 모양새다. 이같은 권역별 지지율이나 기타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공정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다만 야권 성향의 지지세가 더민주 문재인 전 대표에게로 뚜렷이 쏠리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는 것은 유의 깊게 지켜봐야 할 부분이다.

    충청권에서는 6월까지만 해도 국민의당 안철수 전 대표가 더민주 문재인 전 대표에 오차범위 내에서 앞서고 있었다. 그러나 안철수 전 대표는 7월에 역전을 허용한 이후로 문재인 전 대표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9월 여론조사에서 반등에 성공했으나 문재인 전 대표도 상승세를 계속하고 있어 여전히 9%p의 격차가 유지되고 있다.

    국민의당은 원내 제3당으로 전통적으로 자민련·자유선진당 등 원내 제3교섭단체를 선호해 온 충청권의 표심을 잡기에 유리하다. 게다가 색깔도 과거 충청권 지역 정당들이 사용해오던 녹색을 당의 상징색으로 사용하고 있다. 국민의당도 이러한 점을 고려해 지난 2월 2일 중앙당 창당대회를 대전광역시에서 열기도 했었다.

    그런데도 야권 지지세가 안철수 전 대표를 떠나 문재인 전 대표에게로 쏠리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중도의 고장'이라는 별칭답게 중도적인 정치 성향을 갖고 있는 충청권에서는 애당초 국민의당과 안철수 전 대표를 중도적인 이미지를 가진 것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즉 '경제는 진보, 안보는 보수'다.

    그런데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반대 논란 등에서 국민의당이 크게 좌클릭한 것이 패인으로 지목된다. 중도적인 게 아니라 더민주보다 더 좌편향돼 있는 것이라면 충청권의 야권 성향 지지층이 굳이 안철수 전 대표를 지지해야 할 하등의 이유가 없게 된다. 문재인 전 대표에게로 야권 성향 표 쏠림 현상이 발생한 것은 이 때문이다.

    문재인 전 대표가 충청권의 야권 성향 표심을 서서히 결집하고 있으나 아직은 역부족이다. 반기문 총장과의 지지율 격차가 아직은 커보인다. 최근 반기문 총장을 지지하는 사람들의 모임이 그의 고향인 음성이나 증평 등 충북 곳곳에서 활발한 움직임을 보이며 창립 대회를 준비하고 있다. 충청권의 한가위 밥상머리 화제가 단연 반기문 총장에게로 쏠릴 것으로 보인다.

    추석 명절 연휴 이후 충청권에서의 반기문 총장의 지지세가 다시 한 번 40%대에 도달하느냐. 또, 문재인 전 대표와의 지지율 격차는 확대될 것인지 유지될 것인지 혹은 축소될 것인가. 이를 살펴보면 내년 12월 대권의 향배를 파악하는데 적지 않은 단서가 될 것으로 관측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