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의중과는 무관하게 非朴되는 사람 줄여, 朴정부 성공 위한 울타리 삼아야
  • ▲ 박근혜 대통령이 전당대회가 열린 9일 잠실실내체육관을 찾아 당대표·최고위원 후보자들과 대의원들 앞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투표 내용은 제각각이었지만, 이 자리에 모인 사람들 중에서 박근혜정부의 성공을 바라지 않는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청와대 사진공동취재단
    ▲ 박근혜 대통령이 전당대회가 열린 9일 잠실실내체육관을 찾아 당대표·최고위원 후보자들과 대의원들 앞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투표 내용은 제각각이었지만, 이 자리에 모인 사람들 중에서 박근혜정부의 성공을 바라지 않는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청와대 사진공동취재단

    김무성·유승민·김종인·진영·이혜훈 의원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한때는 친박(親朴)이었지만 이제는 단순히 짤박(짤린 친박), 멀박(멀어진 친박)을 넘어 비박(非朴)의 중심적인 인물이 됐다는 것이 공통점이다. 심지어 이 중에는 당적을 바꿔 여당에서 야당으로 투신한 사람들마저 있다.

    김무성 전 대표최고위원은 한때 '친박의 좌장'이라 불렸고, 선거 캠프에 야전 침대까지 가져다놓으면서 박근혜 대통령 당선의 공신 역할을 했다. 유승민 전 원내대표는 박근혜 대통령의 비서실장이었다. 진영 의원은 현 정부에서 입각해 각료까지 지냈다. 그런데 지금은 모두 친박과 적대하고 있다.

    이들에 대해서는 이런 저런 이유로 당사자에게 책임을 돌릴 여지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별 대수롭지도 않은 사소한 일들로 이러한 사례가 점점 늘어난다는 게 문제다.

    이학재 의원은 박근혜 대통령의 비서실장을 지낸 친박 중의 친박인데, 이번에 '김희옥 비대위'에서 '일괄 복당'을 의결할 때 비상대책위원이었다는 이유로 갑자기 친박이 아닌 것으로 분류하고 비난하는 사람들이 나타나고 있다.

    '복당 문제'가 쟁점이 됐을 때,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복당하지 못하도록 막으라"고 '하교'했다는 이야기는 듣도보도 못했다. 지난달 8일 새누리당 의원단 전원이 청와대에 오찬 초청을 받았을 때, 대통령이 직접 유승민 의원과 이례적으로 긴 35초 간의 대화를 나누면서 감싸안은 것도 '복당 파문'을 직접 불식시키고 집권여당을 화합으로 이끌겠다는 의지의 표현이 아닌가.

    정작 대통령은 4·13 총선 참패 이후 전열이 흐트러진 집권여당을 추스르고 국정 추진 동력을 회복하기 위해 화합만을 계속해서 메시지에 담고 있는데, 복당 의결 때 그 자리에 있었다는 이유로 친박을 비박으로 탈바꿈시키는 걸 보면 대체 친박~비박은 누가 분류하고 결정하는가 싶다.

    대통령도 더 이상 문제삼지 않기로 행동으로 보여준 '일괄 복당 의결'을 빌미로 마음대로 특정인을 친박에서 떼어내 비박 쪽으로 옮기는 것을 보노라면 친박~비박의 '박'자가 박근혜 대통령의 성(姓)에서 따온 것은 맞는지 헷갈릴 지경이다.

    친박의 문호를 활짝 열고 넓게 끌어들여 박근혜 대통령의 든든한 울타리로 삼아 성공적인 국정의 마무리를 꾀해도 부족할 마당인데, 친박이던 사람조차 밖으로 내모니 스스로 발밑을 허물고 있는 행태가 아닌가.

  • ▲ 전당대회가 열린 9일 잠실실내체육관에서 당대표 후보자 연설에 앞서 청중들에게 손을 흔들고 있는 주호영 의원. 주호영 의원은 현 정부에서 청와대 정무특보로 지명됐으며, 국회법 파동에서의 소신 반대표, 국회선진화법에 대한 권한쟁의심판소송 제기, 공무원연금 개혁 앞장서기 등 모든 일을 도맡아서 했는데도 대통령이나 본인의 의중과 관계없이 어느 순간 비박 단일후보가 되는 기이한 경험을 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전당대회가 열린 9일 잠실실내체육관에서 당대표 후보자 연설에 앞서 청중들에게 손을 흔들고 있는 주호영 의원. 주호영 의원은 현 정부에서 청와대 정무특보로 지명됐으며, 국회법 파동에서의 소신 반대표, 국회선진화법에 대한 권한쟁의심판소송 제기, 공무원연금 개혁 앞장서기 등 모든 일을 도맡아서 했는데도 대통령이나 본인의 의중과 관계없이 어느 순간 비박 단일후보가 되는 기이한 경험을 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8·9 전당대회가 친박계의 완승으로 끝나 승리의 기쁨에 취해 있는 사이 또 알게 모르게 비박이 대거 양산될 조짐을 보인다. 내전에서 이긴 것은 대첩(大捷)이라 부르지도 않는 법인데 집안싸움에서 이긴 것에 의기양양해, 넉 달 전에 정작 이겼어야 할 야당과의 일전에서 참패한 것은 '잊어버려야 할 과거' 정도로 치부되고 있으니 한심스럽다.

    도대체 왜 자꾸 대통령의 뜻과는 관계없이 비박이 양산되는가.

    일단 이번 8·9 전당대회에서 주호영 의원이 '비박 단일후보'가 된 것부터가 생각해보면 우습다.

    주호영 의원은 분명 지난 이명박정부에서 특임장관을 지내긴 했지만, 이번 박근혜정부에서도 다른 직책도 아니고 청와대의 정무특보로 지명됐었다.

    이른바 '유승민 국회법 파동' 때는 허다한 친박들도 찬성표를 던질 때 '소신 반대표'를 던진 주역이기도 하다. "나라를 망친다"는 국회선진화법에 대한 권한쟁의소송도 주도했다. 총선을 앞두고 공무원 표심을 의식해 아무도 나서지 않으려 했던 공무원연금 개혁에도 선봉에 섰다.

    이런 주호영 의원을 박근혜 대통령이 "낙천시키라"고 친히 지시라도 했겠는가. 그런데 지난 지방선거에서 수성구청장의 공천을 놓고 주호영 의원과 갈등을 빚었던 어떤 '친박'이 사감(私感)을 앞세워 그를 낙천시켰다. 결국 특정 친박 인사의 전횡 때문에 멀쩡한 사람이 비박 진영으로 밀려나 그 진영에서 '단일후보'의 자리에까지 오르는 황당무계한 사태가 벌어졌다.

    여권의 사정에 정통한 관계자들은 "사실 주호영 의원은 오히려 지난 4년 동안 왠만한 친박보다 더 박근혜정부의 성공을 위해 온 몸을 던졌고, 남은 1년 5개월 동안에도 그럴 수 있는 사람"이라고 입을 모은다. 그런데 그런 사람이 대통령의 뜻과는 관계없이 비박 진영의 극단으로 가버렸으니 이건 대체 무슨 조화라고 해야 하나.

    주호영 의원의 사례는 극단적인 사례에 해당하지만, 전당대회를 치르다보니 어쩔 수 없이 비박 양산의 빌미가 발생하는 경우도 있다.

    비박계에서 잠재적 대권 주자라는 몇몇 사람들이 '단일화'라는 금단의 '불장난'을 시작하는 바람에 친박계도 어쩔 수 없이 대응 차원에서 결속을 하게 됐다. 이 과정에서 친박~비박 쌍방이 '지령 문자'를 내려보냈는데, 친박계의 경우 대표에 이정현, 최고위원에 조원진·이장우 의원에 투표하라고 '오더'가 내려갔다는 게 여권 관계자들의 중론이다.

  • ▲ 8·9 전당대회가 막판 친박~비박의 정면 대결로 흐르면서 오더가 남발돼 그 오더에서 배제된 후보자 및 그 지지자들의 마음은 허공에 붕 뜨고 말았다는 지적이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8·9 전당대회가 막판 친박~비박의 정면 대결로 흐르면서 오더가 남발돼 그 오더에서 배제된 후보자 및 그 지지자들의 마음은 허공에 붕 뜨고 말았다는 지적이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덕분에 이정현 대표와 조원진·이장우 최고위원이 다 당선된 것까지는 좋았는데, 이 와중에 대표는 1인 1표, 최고위원은 1인 2표인 관계로 부득이하게 '오더'에서 배제되는 친박계 후보가 생겼다는 게 문제다. 이들은 그간 박근혜정부의 성공을 위해 온 힘을 다해왔는데도 결과적으로 헤아릴 수 없는 마음의 상처를 안게 됐다.

    이 중에는 현 정부에서 입각해서 세월호 사고를 수습하는데 전심전력을 기울여,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국무회의 석상에서 "공직자의 참된 모습을 보여줬다"고 공개적으로 극찬한 사람도 있다. "공직자의 참된 모습"이라고 칭찬했던 대통령이 설마 이번 전당대회에서 "그 사람은 찍지 말라"고 한 입으로 두 말씀 했을 리가 없지 않은가.

    이원종 청와대 비서실장은 박근혜 대통령이 "주무시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100% 국사에 전념하고 있다"며 "마음 속에는 대한민국과 국민 외에는 없다"고 확인했다. 국사 행위에 전념하느라 밤잠도 줄일 지경인데, 여당 대표에 아무개, 최고위원에 아무개 아무개 아무개를 찍으라 하는 식으로 당무에 간섭할 정도로 한가하지 않다.

    그렇다면 여러 친박계 후보 중에 '찍어야 할 사람'과 '찍지 말아야 할 사람'을 나누는 '오더'는 대체 누가 작성하는 걸까. 대통령의 의중과 무관하게 만들어지는 이런 '오더'가 바로 친박의 저변을 좁히고 발밑을 허물고 결과적으로 대통령에게도 누를 끼치고 있다.

    언론도 특정 후보들이 '친박 핵심'으로부터 내려오는 '오더'에서 배제됐다는 걸 입수한 뒤, 이들을 기존 친박에서 제외해 범친박이니 친박 성향 중립이니 하는 단어로 애매하게 서술하기 시작한다. 결국 친박의 세(勢)가 줄어드는 것이다.

    한갓 초등학교 회장 선거에서 내가 정말 친하다고 생각했던 급우가 다른 후보자를 찍은 것을 알게 돼도 그 섭섭함이 오래 가는 게 인지상정이다.

    하물며 '나도 그동안 박근혜정부를 위해 온 몸을 던졌다'고 자신하던 정치인이 모든 것을 걸고 전당대회를 치르던 와중에, 누군가가 마음대로 '친박의 오더'를 작성해 자신을 '친박'의 범주로부터 배제한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의 충격과 배신감이야 오죽할까.

    이런 과정이 희한하게 거듭되니 날이 갈수록 비박만 하염없이 늘어난다. 그러니 항상 총선을 치른 직후에는 다들 친박인 것 같다가도 시간이 흘러가면 어느새 비박이 다수가 된다. 딱히 눈에 띄게 박근혜 대통령으로부터 등을 돌린 사람은 한 손으로 헤아릴 수 있는 정도에 불과한데도 그렇다.

    이제 박근혜 대통령의 임기가 1년 5개월 남았다. 더 이상 이렇게 박근혜 대통령의 울타리를 안에서 허무는 일이 반복될 여유가 없다. 무슨 큰 대첩을 치러낸 것처럼 의기양양해 있을 일이 아니라, 다시 품에 안을 수 있는 사람들은 상처가 더 덧나기 전에 보듬어야 한다. 이미 스스로 '비주류의 구심점'을 자처할 정도로 너무 멀리까지 나가버린 사람들은 어쩔 수 없더라도 말이다.

  • ▲ 친박 일색으로 구성됐다는 새 지도부가 당면한 최대 과제는 화합과 혁신이다. 이 중 화합은 오롯이 승자의 입장에 서게 된 친박계가 아량과 배포를 보여줌으로써 이루는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친박 일색으로 구성됐다는 새 지도부가 당면한 최대 과제는 화합과 혁신이다. 이 중 화합은 오롯이 승자의 입장에 서게 된 친박계가 아량과 배포를 보여줌으로써 이루는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나아가 이미 비박으로 분류되는 사람들일지라도 다시 끌어안을 수 있는 사람들은 가급적 끌어안아야 한다.

    이런 주장에 대해 친박계로 분류되는 의원실 관계자는 "그 사람들은 친박패권주의를 청산해야 한다며 우리를 죽이겠다고 달려든 사람들인데 어떻게 끌어안느냐"고 한다.

    정치가 종교도 아닌데 막무가내로 '원수를 사랑하고' '오른뺨도 내밀라'는 말을 하는 것이 아니다. 지금은 전당대회 직후라 제압이 된 상황이 아닌가.

    맹획은 반드시 제갈량을 잡아죽일 생각으로 덤볐지만, 그런 맹획을 제갈량은 일곱 번이나 잡았다 풀어주기를 반복하며 마침내 마음으로 승복시켰다. 그리고나서야 제갈량은 비로소 북쪽의 역적을 치기 위해 출사표를 내고 북벌에 나설 수 있었던 것이다.

    당내에 적대하는 계파만 없애버리면 천하통일이 되는 상황이라면 굳이 말리지 않는다. 그런데 그런 상황이 아니지 않은가.

    지금 친문패권 세력은 얼마 전 4·13의 큰 싸움을 승리로 이끌어 기세가 등등하고,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신봉하는 세력은 그 어느 때보다 세력이 외로워져 있다. 새로 선출된 대표조차 "지금 선거를 치르면 정권을 반드시 내놓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정권재창출 가능성은 현재는 제로"라고 진단하는 상황이다. 칠종칠금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

    8·9 전당대회에서 압승을 거둔 지금이 적기다. 그런 차원에서 이장우 최고위원의 발언은 주목되는 바가 있다.

    이장우 최고위원은 10일 CBS라디오에 출연해 "항상 문제는 인사인데, 탕평 인사를 함으로써 화합을 시작해야 한다"며 "이정현 대표가 제일 먼저 해야 될 일은 당직 임명을 하면서 탕평 인사를 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바로 이런 자세다. 크게 상대를 누르고 기선을 제압했을 때, 반대파의 언로(言路)나 봉쇄하거나 존재를 말살하려고 들기보다는 승자로서 '폭넓은 아량'과 '넓은 배포'를 보여주는 모습을 친박계로부터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