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아름답다. 너도 그렇다."(나태주 시인 '풀꽃')

    시인의 말처럼 모든 가치 있는 것들은 숨어 있다. 오랜 시간 바라보고 깊이 빠져 보아야 그 숨겨진 가치를 알 수 있다. 뮤지컬 배우 박혜나도 자세히, 오래 보아야 예쁘고 사랑스럽다.

    2006년 창작뮤지컬 '미스터 마우스'로 데뷔한 박혜나가 어느새 배우 생활 10년을 맞았다. 그녀는 앙상블로 시작해 '햄릿', '싱글즈', '영웅을 기다리며', '남한산성', '심야식당', '위키드', '드림걸즈', '데스노트', '오케피' 등에서 주조연을 가리지 않고 다채로운 인물을 연기해왔다.

    능수능란하게 캐릭터 사이를 오간 박혜나의 배우 인생 10년은 2013년 뮤지컬 '위키드'를 기준으로 나뉜다. 오디션에서 계속 떨어져 "오디션이 취미"라고 스스로 말할 정도로 운이 없던 그녀에게 인생 최고의 작품 '위키드'를 만난 것.

    2013년 초연 당시 '위키드' 앙상블로 오디션에 응시한 박혜나는 오리지널 크리에이티브 팀의 눈에 띄며 총 4번의 오디션을 거쳐 앙상블에서 커버로, 다시 초록마녀 '엘파바'로 캐스팅되는 극적인 드라마의 주인공이 됐다. 특히 디즈니 애니메이션 '겨울왕국'에서 엘사의 주제곡 'Let it go'(렛잇고)의 한국어 버전 더빙을 맡으며 최고의 한 해를 보냈다.

    "알바로 교과서 음악 녹음을 했는데, '위키드' 개막 일주일 전에 연락을 받고 '렛잇고'를 녹음했어요. 알바한다는 마음으로 가볍게 갔는데 오디션이라는 거예요. 사람 기회라는 게 참 신기했어요. 오디션을 볼 때마다 떨어져서 몇 개월 쉬었거든요. 다시 입시생처럼 공부한다는 마음으로 모든 걸 내려놓으니 행운처럼 기회가 몰려오더라고요. 제 삶의 터닝포인트였죠."

    2013년 뮤지컬 '위키드'를 터닝포인트로 보면 박혜나는 7년이라는 긴 무명시절을 보낸 셈이다. 시간은 배우의 감정을 한층 여유롭고 깊이 있게, 그리고 단단한 내공을 만들어준다. 박혜나의 시간도 허투루 보내지 않고 그렇게 흘렀기에 기회가 찾아왔을 때 잡을 수 있었던 것이다.

    "초연 때도 언급했지만 일부러 '엘파바'를 분석하지 않았어요. 내 것으로 입히는데 시간이 걸렸을 뿐, 머리로 이해하는 건 어렵지 않았죠. 엘파바라는 인물이 와 닿았거든요. 지금은 무뎌졌지만 예전에는 피해의식이 있었어요. 성취하기 위해 노력해도 잘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좌절하지 않고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았죠. 그런 점에서 엘파바와 닮은 것 같아요."
  • 시간의 간격을 두고 같은 역할로 무대에 오를 수 있다는 것은 배우에게는 큰 축복이다. 현재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공연 중인 '위키드'는 초연을 이끌었던 히로인 박혜나-정선아가 각각 '엘파바'와 '글린다'로 다시 출연하며, 여기에 차지연-아이비가 합류해 탄탄한 라인업을 완성했다. 무엇보다 박혜나는 정선아와 함께 초연 당시 종연까지 1년 가까이 공연하면서 쌓아온 경험을 통해 더 깊어진 무대를 보여주고 있다.

    "했던 거고, 다시 해야 하니까 '더 발전된 모습을 보여줘야 하지 않을까'하는 여러 생각이 들었어요. 원래 생각과 걱정이 많은 스타일이에요. 그래도 '위키드'를 1년 해봤으니까 무대 위에 섰을 때 여유가 좀 더 생기더라고요. 몸이 기억해서 알아서 움직여 줄 때가 있어요. 정말 신기했죠. 초연에서 '엘파바'를 1년이나 했기 때문에 관객들이 지루하게 받아들일 수 있지만 무대는 항상 살아 숨 쉬는 곳이에요. 같은 공연을 반복하지만 매일이 같을 수가 없어요. 오히려 더 단단해지죠. 매일 첫 단추를 끼는 기분이고 하루하루가 도전이에요" 

    "음식은 똑같아도 담는 그릇에 따라 느낌이 다르듯이 배우와의 호흡도 마찬가지에요. 아이비와는 동갑이고 '위키드' 속에서도 친구인데, 서로 다른 길을 걸어오다 무대에서 만나니 좋은 시너지를 일으키는 것 같아요. 정선아는 완벽한 글린다이고, 믿고 가는 배우에요. 차지연은 카리스마와 내면에 가지고 있는 특유의 아우라가 엘파바와 교집합 된 부분이 많아요. 이들과 선물 같은 귀중한 시간을 보내서 행복해요"

    박혜나는 2013년 뮤지컬 '헤이,자나!'에 함께 출연하며 연인으로 발전한 배우 김찬호와 지난해 11월 30일 결혼식을 올렸다. 김찬호는 뮤지컬 '페임', '코요테 어글리', '헤이, 자나!', '오디션', '너에게 빛의 속도로 간다', '살리에르', '총각네 야채가게' 등에 출연했다.

    "결혼하고 나서 재미있어졌어요. 같이 지지하고 걸어나갈 사람이 있다는 생각에 안정감도 생겼고요. 함께 분식집을 해도 재미있을 것 같아요. 대구 지방공연할 때 처음에는 청소도 안하고 좋았는데, 막공날이 다가올수록 보고 싶고 더 애틋해지더라고요. 2세 계획은 아직 때가 아닌 것 같아서 1~2년 뒤쯤 생각하고 있어요."

    2013년 '위키드' 한국어 초연부터 참여한 박혜나는 국내 최다 엘파바 기록을 세우고 있다. 지난 5월 27일 150회 공연을 채운 그녀는 "뮤지컬 '위키드'를 통해 발전할 수 있었고,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게 한 감사한 작품이다. 최선을 다해서 매회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무대에 서고 싶다"는 소감을 밝히기도 했다.

    '오즈의 마법사'를 기발한 상상력으로 뒤집은 뮤지컬 '위키드'는 초록마녀 엘파바와 하얀마녀 글린다의 우정과 사랑을 그린다. 8월 28일까지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공연된다.
  • 다음은 박혜나와의 소소한 일문일답

    - '위키드' 대구 지방공연을 끝낸 소감? 
    대구는 뮤지컬이 활성화된 도시이고 메카라 기대가 컸다. 새로운 관객들을 만날 수 있어서 즐겁고 행복했다. 지방공연은 처음이었는데, '위키드'라는 좋은 작품으로 공연해 기뻤다.

    - 초록분장으로 인해 피부 트러블은 안 생기나?
    초록칠을 얼굴 전체와 가슴 부위, 팔은 중간까지 바르다 보니 착색이 된다. 또, 피부가 건조해져 주름이 생기더라. 다행히 뾰루지는 나지 않는다.

    - 건강관리는 어떻게 하는지 궁금하다.
    최대한 말을 아끼고, 운동 외에는 다른 곳에 에너지를 소비하지 않는다. '위키드'만 공연하면 수도하는 것 같다.

    - 함께 작업하고 싶은 배우가 있는지?
    누구와 호흡을 맞춰보고 싶기보다는 내가 그런 배우가 되고 싶다.

    - 초연부터 호흡을 맞추고 있는 배우 정선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사랑스러움의 끝을 보여주는 최고의 배우다. 정선아를 '정의의 선아'라고 부른다. 무대에 대한 애착이 크고 책임감이 남다르다. 스스로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고, 무대 밖에서는 스태프처럼 케어한다. 에너지가 넘치고 성격도 좋다. 같이 공연하면 행복한 배우다.

    - 기억에 남는 팬이 있다면?
    뮤지컬 '오케피' 공연할 때 한 어머니가 찾아와서 딸에 대한 편지를 전해주셨다. 신중하게 답장을 해주려고 했는데 그 편지가 없어졌다. 너무 안타까웠다.

    - 뮤지컬 '위키드' 공연 이후의 계획은?
    일단 쉬려고 한다. 허리가 좋지 않아서 건강관리에도 집중할 생각이다. 그 동안 정신적, 체력적으로 계속 소모만 했기 때문에 나를 채우는 시간을 갖고 싶다.
    [박혜나, 사진=클립서비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