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民辯과 正平委도 '北인권' 말하라

      “양심에 호소한다-홀로코스트(유태인 학살)”라는 문건은 이렇게 적고 있다.
    ”유태인들을 가스실로 몰아넣고 문을 닫았다. 그리곤 배기가스나 독가스를 방출했다“
    나치의 처형 수용소에서 있었던 만행이었다.
    전 세계가 전율했다.
    인간이 어디까지, 얼마나 악마 화(化)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 광기(狂氣)였다.
    얼마 안가 사람들은 그걸 잊었다. 가끔씩 영화에나 나오는 장면이 되었다.

     그러나 그로부터 70년-.
    인류는 그와 똑같은 장면을 영화가 아닌 현실에서 생생하게 마주하게 되었다.
    수많은 탈북자를 만나 취재한 자료로 ‘감춰진 수용소(Hidden Gulag)’라는 책을 써낸
    인권 연구가 데이비드 호크는 함경북도 회령의 ‘22 수용소(지금은 폐쇄)’ 경비병이었던
    권혁의 증언을 이렇게 전하고 있다.

  • ”나는 유리로 만든 가스실에서
    1가족 4명이 질식사하는 걸 보았다.
    부모들은 토하며 죽어가면서도
    자녀들의 입에 자신들의 입을 대고
    숨을 불어넣어 주었다.
    과학자들은 유리 밖에서 그들을 관찰했다.“

      데이비드 호크에 이어 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회(위원장 마이클 커비)가
    ‘북한인보고서’를 발간했다. 거기엔 이런 구절이 있다.

    “조사위원회는 북한에 의해 조직적이고 광범위하며 심각한 인권 침해가 자행되었으며
    지금도 계속 일어나고 있다고 본다. 많은 경우 인권 침해는 북한 정책에 기반을 둔
    반(反)인도범죄에 해당한다. 이러한 인권 침해의 주요 가해자는
    조선노동당의 핵심 기관인 국방위원회와 북한의 최고지도자의 통제 아래 있는
    국가안전보위부, 인민보안부, 정찰총국, 검찰, 사법부, 조선노동당 관료들이다.“
    지옥 나찰(羅刹)들과 야차(野次)들의 얼굴을 지목해 보인 셈이다.

      미국 정부가 김정은 등 15명의 북한 최고위층을 ‘인권제재 대상자’로 지정한 것은
    바로 이런 근거자료에 기초한 것이다. 이건 무얼 말하는가?
    미국의 행정부와 의회, 그리고 민간 싱크 탱크들이
    “협상에 의한 북한 비핵화는 불가능하다는 판단 하에
    이제는 북한의 레짐 체인지(정권 교체)까지도 불사(不辭)하는 단계로 갔다”는 반증일 수 있다.

    이번에 찍힌 15명은 전 세계에 지명수배를 받은 반(反)인도 범죄 당사자로서,
    언젠가는 그 공소사실로 국제 형사법정에 회부될 수도 있다.

      참담한 것은, 한반도에서 일어나고 있는
    ‘악마의 사육제’에 대해 바다 건너 미국의 조야(朝野)는 저렇게 팔 걷어붙이고 나서는데,
    우리 안에서는 그저 ‘강 건너 불’ 보듯 한다는 사실이다.

    ‘한반도 안의 아유슈비츠(유태인 처형수용소)’에 대한
    분노도, 경악도, 비탄도, 아픔도 없는,
    일종의 문명감각의 마비증상 같은 게 우리 사회를 엄습해 있는 느낌이다.
    김정은 일당이 핵-미사일을 거머쥐었대도,
    그들이 수용소 안 임신부 배위에 널판을 깔고 양쪽에 서서 시소를 한 대도 그저 그만...
    이니, 우리는 과연 깨어있는 영혼을 가진 윤리적 존재 맞는가?

      그래서 묻고 싶다.

    웰빙 여당이야 이런 덴 전혀 관심 없는 사람들이니 제쳐버리고,
    그렇다면 평소에 인권을 소리 높여 외쳐온
    일부 진보단체와 종교단체의 의향은 어떤지 물어보고 싶다.
    그들이야말로 이젠 우리 내부의 인권문제에만 그렇게 매달릴 게 아니라,
    이보다 몇 천 배는 더 처참할 북한의 인권말살에 대해서도
    함께 비통해하고 절규하고 저항할 순 없겠는가고.

      ‘민주화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의 한 멤버는
    중국의 북한식당 근무자 13명의 탈북과 관련해 페이스북에 이렇게 썼다.
    “북의 가족들은 납치된 거라고 한다. 어느 게 진실일까요?
    당사자에게 물어보는 게 가장 빠르겠지요. 그래서 만나러 갑니다.
    국정원이 못 만나게 할 것 같지만 그래도 시도해 봐야지요.”

    그렇다면 의뢰한다.
    북한은 우리 납북자들이 자진월북 했다고 억지 부린다.
    그러나 그들은 분명히 강제로 끌려갔다.
    그러니 민변이 북에 가 ’인신보호 구제심사 신청‘ 좀 해주었으면 한다.
    보위부가 납북자들을 못 만나게 할 것 같지만 그래도 시도해봐야지요.

      2013년 인권주일을 맞아 한국천주교 정의평화위원회는
    “정보기관, 군-경 등 권력이 한계를 넘으면 인권과 자유에 대한 침해”라고 선언했다.
    밀양 송전탑-제주 해군기지 반대를 편든 것이었다.
    그렇다면 인권과 자유가 ‘침해’는 고사하고 ‘아예 없는’ 북한 수감자들을 위해서도
    뭔가 한 소리 질러줘야 할 것 아닌가?
    아우슈비츠 생존자인 정신과 의사 빅터 프랑클은
    세상을 품위 있는 차원과 저속한 차원으로 나눴다.
    수용소 같은 저속한 차원에 맞서는 덴 보수 진보가 따로 있을 수 없지 않은가?

    류근일 /뉴데일리 고문, 전 조선일보 주필

    류근일의 탐미주의 클럽(cafe.daum.net/aestheticismclu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