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한이 지금 원하는 평화 협정

    김미영 (전환기정의연구원 대표)


  • 국제제재에도 불구하고 북한 장거리미사일과 핵실험 문제가 계속되면서
    그 해법으로서 미국과 북한 간의 평화협정이 다시 거론되고 있다.

    올초 북한의 4차 핵실험 이후 중국은 '비핵화'를 전제로 미-북 평화협정 체결을 주장하며
    적극 주선하고 있다. 중국의 이같은 노력은 한반도 문제에 대한 중국의 전략적 ‘승부수’임에
    틀림없다. 북한의 체제 생존 보장을 통한 한반도 현상유지와 영구적 분단을 염두에 둔
    중국의 대한반도 전략의 속내가 표명되고 있는 것이다.

    최근 제임스 클래퍼 미국 DNI 국장의 방한이 미-북 평화협정과 관련돼 있다는 보도가 있었듯
    미국 역시 미-북 평화협정을 북핵문제 해결의 대안으로 검토하고 있는 정황이 감지된다.
    미북간 평화협정이 우리 안보에 핵심 이슈로 부상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상식은 미국과의 평화협정은 한반도에서 '미군의 철수'를 의미한다는 것이었다.
    공식적으로는 김일성의 발언을 수정 또는 폐기할 수 없게 되어 있는 북한에서 '미군철수' 주장이 반복되는 것이 이상할 것은 없다. 실제로 이번 7차 당대회에서도 김정은은 할아버지 김일성의 유훈대로 평화협정과 미군철수 주장을 반복했다.
     
    그러나 북한이 미국과의 평화협정으로 진정 얻고자 하는 것은 다른 내용일 것으로 보인다.
    물론 북한이 작금의 협상과정에서도 '주한미군 철수’ 카드를 쉽게 버리지는 않을 것이다. 

    60여년 전 휴전회담 당시 북한은 미국이 결코 포기하지 않을 것으로 보이는 '포로의 자유의사에 의한 송환'이라는 카드에 반대하며 치열한 전투를 계속했다. 이를 놓고 2년 이상 협상을 끌면서 결국 미국의 이 요구를 수용하는 척하며 실속을 챙겨 휴전협정을 맺었다. 
     
    겉으로 말하는 것과 달리 북한은 진짜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미군철수’ 요구를 포기할 수 있다. 2007년 9월 18일, 미국 워싱턴 미국언론인클럽(NPC)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은 “2000년 평양에서 10시간 정도 김정일과 대화했을 때 김정일은 확실히 미국과의 관계 개선을 열망했으며 주한미군이 지금은 물론 통일 후에도 한반도에 주둔해야 한다고 말했다.”고 밝힌 바 있다.
    이는 지금도 북한이 실리를 위해 주한미군 주둔을 반대하지 않을 수 있음을 시사한다.

    아버지 김정일을 이어 지금 김정은이 내심 추구하는 평화협정의 내용이란
    겉으로 내세우는 미군철수, 연방제통일이 아닐 수 있다는 얘기다.
    북한 스스로 가능하리라고 보고 있지 않을 것이다.
    다만 핵 폐기는 수용하지 않을 것으로 본다. 

    지금 북한이 진짜 원하는 평화협정이란, 즉,
    △ 북한의 NPT 재가입 및 기존 북핵 동결(사실은 북핵 증강속도 조절)을 조건으로,
    △ 미국의 대북 적대시 정책의 포기 즉 북핵 관련 제재 철회, 대북 불가침 공약,
    △ 한국의 비핵화 정책 준수, 대북 경제지원일 것으로 보인다. 

    만일 미국이 이를 수락한다면 북한의 거듭되어온 '핵개발을 통한 벼랑끝전술'은
    결국 성공으로 끝나게 되는 셈이다.
    중국 역시 간절히 원하는 이런 종류의 평화협정은 사실상 북핵을 공인하고 한반도 비핵화란 명분으로 한국의 핵무장을 봉쇄하고 결국 북한 체제의 생존을 미국이 보장하는 것으로서
    이는 남북 분단을 영구화시키는 것이다.
    나아가 한국의 안보주권은 유명무실화되고 대북 경제원조 부담까지 떠맡게 돼
    사실상 제2의 대만이 되는 것이다.

    미국에서는 현재 대외 군사개입에 대한 염증, 그리고 경제 불황과 빈부격차 격화 등으로
    자국의 안보에 결정적인 위협이 되지 않는 한 대외개입을 자제하자는 고립주의 경향이 강화되고 있다. 이런 또한 미국이 중국을 충분히 통제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반영한다.
    미국의 에너지 혁명으로 인한 제조업 부흥 등 경제회복과 중국의 경제 성장률의 급속한 하락으로 중국 위협론은 급속하게 세를 잃고 있다.

    현재 미국은 북한의 핵이 자국에 심각한 위협이 되지 않는 선에서 북핵을 묵인하는 평화협정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우리 사회의 한미동맹의 전략적 가치에 대한 경시와 의심 역시 
    미국의 평화협정 체결 검토의 중요한 배경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물론 가시화되지 않는 시나리오로 끝나기를 고대한다.
    그러나 북한핵에 대한 국제사회의 무기력증이 우리에게 이상적인 방향으로 정리되기에는
    중국이라는 난관이 너무 크다. 현실을 냉혹하게 보면 그렇다.
    북핵문제 해법으로서 대북제재가 효과 없는 이유도
    결국 중국이 북한을 계속적으로 지원하고 있기 때문 아닌가.
     
    북한은 현재 배급체제가 거의 무너져 시장으로 인민생활이 유지되고 있고,
    2014년 북한의 무역규모는 10조 원가량으로 GDP 대비 무역의존도가 최소 30%에서 최고 50%에 달한다. 중국은 북한의 대외무역에서 90%이상을 차지하고 조·중우호송유관을 통해 북한 석유의 70%이상을 공급하고 있다. 북한 경제는 더 이상 폐쇄경제가 아닌 것이다.
    오히려 중국에 일방적으로 기댄 대외의존도 높은 경제로 전환돼 있는 상태다.

    이렇게 보면 북핵위기에서 우리의 진정한 상대는 북한이 아니고 중국일 수 있다.
    북한이 원하는 평화협정이란 중국이 북한의 명줄을 쥐고 있는 한
    중국이 원하는 평화협정이 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강력한 자유민주주의 통일 대한민국 대신 속국화시킬 수 있는 대만 수준의 주권을 가진
    약체 국가를 원하는 중국과, 도저히 해결책이 안 보이는 북한 핵문제를 미봉하고자 하는 미국과, 최소한 핵 동결과 함께 체제를 보장받고 유지하기 원하는 북한을 앞에 둔 우리의 자세는
    과연 어떠해야 할까?

    우리는 어쩌면 63년 전 휴전협정시 우리를 배제하고 미국, 북한, 중국이 주도한 당시와 비슷한
    상황에 직면해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당시 이승만대통령은 바로 자유와 번영의 대한민국을 지켜내기 위해 필사적으로 휴전협정을 거부했지만 휴전이 불가피해지자 강력한 의지와 지도력으로
    한미상호안보조약을 체결하였고 이는 오늘날 대한민국 안보와 번영의 기초가 되었다.

    지금 우리는 객관적으로 불리한 이 모든 상황에서 다시 자유롭고 번영하는 통일 대한민국으로
    나아갈 준비가 되어 있나? 바야흐로 이 역사적 도전에 응전해야 할
    중요한 진실의 순간(Moment of Truth)이 우리에게 다가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