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ECD 국가 중 미국·일본은 우리보다 의원 1인당 인구 수 많아
  • 제헌국회 의장이기도 한 건국대통령 이승만 박사가 1948년 7월 24일 중앙청 앞 광장에서 초대 대통령 취임식을 갖고 있다. 제헌국회는 통일에 대비해 미수복지구(북한)에 100석을 유보해두고, 총 의원 정수 200석으로 구성됐다. ⓒ연합뉴스 사진DB
    ▲ 제헌국회 의장이기도 한 건국대통령 이승만 박사가 1948년 7월 24일 중앙청 앞 광장에서 초대 대통령 취임식을 갖고 있다. 제헌국회는 통일에 대비해 미수복지구(북한)에 100석을 유보해두고, 총 의원 정수 200석으로 구성됐다. ⓒ연합뉴스 사진DB

    새정치민주연합 김상곤 혁신위원장이 던진 '의원 정수 확대'라는 돌멩이가 민심(民心)이라는 잔잔한 호수에 격랑을 일으키고 있다.

    현행 헌법 제41조 2항은 국회의원의 수는 법률로 정하되 200인 이상으로 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이론상으로는 국회에서 스스로 법률을 개정하는 방식으로 의원의 정수를 제한 없이 늘리는 것도 가능하다.

    하지만 그렇다면 지금까지 그렇게 하지 못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또, 국민들이 의원 정수 확대 논의에 극도의 거부감을 느끼며 분개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새정치연합 문희상 전 비상대책위원장조차 지난해 11월 18일 관훈토론회에서 "헌법을 고치지 않는 한 300명 이상(초과)으로 (의원을) 늘릴 수 없다"고 말했다. 패널이 "헌법에는 200명 이상이라는 규정만 있다"고 지적했음에도, 문희상 전 위원장은 "관행적으로 300명 이하로 못박혀 있다"며 "내 머릿속 (헌법)에는 300명 이하"라고 단언했다.

    이처럼 5선의 정치인도 의원 정수 300명을 심리적 저지선으로 여기고 있는데, 거침없이 369명이라는 숫자를 제시하는 것이 새정치연합 혁신위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듯 싶다.

    민심과 유리된 새정치연합 혁신위의 의원 정수 확대 제안으로 기왕 '판도라의 상자'가 열린 김에, 여기서 입법 연혁으로 돌아가 애초 우리 국회의 의원 정수가 어떻게 결정된 것인지를 고찰하고 바람직한 총 의원 정수에 대해 살펴보는 것도 도움이 될 것 같다.

    영국의 의회가 1066년 노르망디 공작 윌리엄의 영국 정복 이후 창설된 신분제 의회인 대위원회(Great Council), 프랑스 의회가 1302년 미남왕 필리프에 의해 소집된 삼부회로부터 비롯되는 것을 감안하면, 우리 국회의 역사는 일천하다.

    유엔은 1947년 11월 제2차 총회에서 일제의 식민 통치로부터 해방된 한반도에 의회를 구성하기로 하고, 유엔한국임시위원단을 파견했다. 유엔한국임시위원단은 당시 3000만 인구로 파악되던 한반도에 300석 정원의 단원제 국회를 창설하기로 결정했다.

    그런데 38도선 이북 지역을 장악한 소련의 괴뢰 김일성은 유엔 감시 하의 총선거를 거절했으므로 38도선 이북의 인구 1000만 명에 따른 100석의 선출을 유보해 두고, 정수 200석으로 남한 만의 총선거를 실시하게 된 것이다.

    이것이 1948년 5월 10일 치러진 5·10 총선거이다. 이로 인해 한반도에도 드디어 민의를 대변하는 의회가 처음 창설되게 됐고, 이 정통성의 명맥을 지금까지 이어받고 있는 것이 우리의 국회다. 그들만의 자칭 선거, 거짓 선거로 선출되는 최고인민회의 따위와는 애초부터 격이 다르다고 할 수 있다.

    당시 유엔한국임시위원단은 서울의 경우 각 구(區) 단위로, 그리고 서울 외의 지방의 경우 부(府)와 군(郡) 단위로 인구 15만 명부터 10만 명 단위로 지역구 1석씩을 할당했다. 비례대표라는 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200석 전부가 지역구 의원이었다. 민주주의의 본고장인 영국·프랑스·미국에서 상하 양원의 의원 전원을 지역구로만 선출하고 비례대표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비례대표라는 게 처음 생긴 것은 제3공화국 헌법부터다. 5·16 혁명 이후 전국구라는 명칭 하에 구속명부식 비례대표제를 처음으로 도입했다. 비례대표에 44석을 할당하면서 지역구를 131명으로 축소해, 의원 정수를 175명으로 맞췄다. 혁신을 운운하지만 비례대표를 늘리더라도 지역구는 줄일 수 없다고 주장하는, 기득권을 조금도 포기하려 하지 않는 근간의 세태와는 대조적이다.

    또, 이 때 헌법 제36조 2항에서 국회의원의 정수와 관한 조문이 처음으로 생겼는데, 국회의원은 150인 이상 200인 이하로 하도록 규정했다. 이 때 의원 정수의 최대치를 200석으로 헌법에서 규정한 것도 5·10 총선거 때 북한에 100석을 유보하고 남한의 의원 정수는 200석으로 하도록 한 제헌 정신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할 수 있다.

    허나 1969년 삼선개헌 때 해당 헌법 조문이 국회의원의 정수를 250인 이하로 하도록 은근슬쩍 바뀌면서 처음으로 남한 만의 의원 정수가 200인을 넘게 됐다. 이후 제5공화국 헌법 제77조 2항에서는 국회의원의 수는 법률로 정하되 200인 이상으로 하도록 규정했다. 의원 정수의 최대 제한 규정이 없어져 이론상으로는 개헌 없이도 무한히 국회의원 정수를 늘릴 수 있게 됐는데, 이는 명백한 입법의 흠결이라 할 것이다.

    따라서 연혁과 제헌 정신에 비춰보면, 이른바 '북한'이라 불리는 미수복지구에 유보된 의석을 제외한 상황에서 우리 국회의 의석은 헌법이 허용하는 최소한도, 즉 200석으로 묶어놓는 것이 이론상으로는 가장 바람직하다 할 것이다.

    왜냐하면 어느 순간 통일이 이뤄지면 인구비례로 볼 때 현재 의석의 50%에 해당하는 의석을 새로 늘려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를 감안하면 우리나라 국회의 의석 수는 지금도 적다고는 할 수 없다.

    새누리당 이인제 최고위원도 27일 최고위원회의에서 "통일한국은 인구 8000만 명 수준에서 의원 정수가 450명이 될 것"이라며 "미국은 인구수가 3억1800만 명으로 우리보다 인구가 네 배 많은 나라인데, 통일이 되었을 경우 우리 의원수가 450명 수준이라면 우리보다 작은 국민의 대표를 갖고 있는 셈"이라고 주장했다. 

    나아가 "현재 1억2000만 명이 넘은 일본은 국민의 대표인 중의원이 480명"이라며 "통일이 되더라도 통일한국보다 인구가 5000만 명 이상 많은 일본이 우리와 비슷한 의원 수를 갖게 된다"고 설명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에 비교해봐도 우리나라 국회의원 1인당 인구 수(16만7400명)는 영국(9만6264명)·프랑스(11만85명)·독일(13만7299명)보다는 근소하게 많지만, 미국(72만6733명)·일본(26만5204명)보다는 크게 적다. 선진제국과 비교해볼 때 반드시 우리가 의석 수가 적다고만은 말할 수 없다는 점을 시사해주는 대목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의원 정수를 200석으로 할 것인가. 앞서 중앙선관위는 지난 2월 24일 비례대표제 유지를 전제로 지역구 200석 비례대표 100석으로 국회를 개편하는 방안을 제안한 바 있다. 여기에서 비례대표만 폐지하면 지역구 200석만으로 의원 정수를 200석으로 하는 것도 결국 가능하다는 말이 된다.

    지금 우리의 비례대표 공천 과정을 보면 비례대표는 대의대표라는 말이 무색하게도 전혀 민의를 대변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비례대표를 철폐해 의원 정수를 축소하는 게 가장 현실적인 대책이라고 할 수 있다.

    의원 정수의 확대를 제안한 새정치연합 혁신위의 이동학 혁신위원은 27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오픈프라이머리(완전국민경선제)를 반대하면서 그 논거로 자발성에 근거한 시민들의 참여를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하지만 비례대표야말로 시민의 자발적 참여가 전무한 가운데 공천되고 있는 게 현실이다. 그렇다면 이부터 철폐하는 게 혁신일진데, 정작 비례대표를 늘리자고 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일이다.

    비례대표를 어떻게 없애느냐고 할 수도 있지만, 앞서 살펴봤듯이 제헌 국회로부터 제1~2공화국 기간 동안에는 비례대표라는 게 존재하지 않았다. 지금도 영국·프랑스·미국 등 민주주의의 발상지에 해당하는 선진 민주 국가는 모든 국회의원를 지역구에서 선출하며 비례대표가 상하 양원을 통틀어 일절 존재하지 않는다. 비례대표가 결코 민주주의의 보편적 제도가 아니라는 이야기다.

    한편 현실적인 관점에서 볼 때 우리 국회는 상원(참의원)이 없이 단원제로 운영되고 있기 때문에 국회의원의 지역대표성도 무시할 수 없는 형편이다. 단순 인구비례 원칙만 강조할 경우에는 농어촌 지역의 희생이 클 수 있다.

    이 때문에 지역구를 단숨에 200석으로 줄이면서 총 의원 정수를 200명으로 하는 것은 쉽지 않을 수도 있다. 지금도 4개 군(郡)이 묶여 한 개의 선거구를 이루고, 특정 선거구의 경우 동서 간의 거리가 100㎞가 넘는 황당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재 246석인 지역구 의석을 4석 늘려 250석으로 하되 비례대표를 철폐해 총 의원 정수를 250석으로 하는 것도 현실과의 타협 지점이 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국민 정서와도 배치되고, 통일을 대비하는 측면에서도 부적절한 의원 정수 확대 논의는 즉각 중단돼야 하며, 비례대표제 철폐를 통한 의원 정수 축소를 논의해야 할 때라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