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메기 살을 튀김이 아니라 팬 프라이 해주었더니…"
  • # 1

  • 뽀미에르의 오너 셰프 이동송 ⓒ 이동송
    ▲ 뽀미에르의 오너 셰프 이동송 ⓒ 이동송

    가게를 오래 하다보니 개성 강한 손님들이 가지각색으로 있다.

    삼성동으로 이사와 알게 된 곽 상무.
    친한 친구의 친구이다.

    어느날 둘이 함께 우리 레스토랑에 왔다.
    말이 많다.
    아버지와 대를 이어 단골로 가는 무슨 호텔 레스토랑 수석 셰프는 곽 상무가 가면 주방에서 뛰어나와 인사를 하고 자신만을 위한 특별 메뉴를 해준다고 너스레를 떤다.
    청담동 그 뭐 유명하다는 스시집 마구로는 도쿄 긴자에서나 느낄 수 있는 바로 그 맛인데, 스시바 옆에 나란히 앉은 연예인들은 맛도 모르면서 폼잡고 미식가 흉내를 낸다고 목청을 높인다.

    다른 집엔 없는 독특한 메뉴 때문인지는 몰라도 처음 온 이후 부지런히 왔다.
    올 때마다 가져오기 귀찮다며 아예 와인을 한 박스 통째로 가져다 놓았다.

    그런데, 안 먹는게 많다.
    속초에서 공수해오는 가리비 요리를 해주려고 했는데, 관자 알레르기가 있다고 그런다.
    새우는 날 것은 안되고. 조개도 종류에 따라 먹는 거 안먹는 거 있고, 문어 오징어 한치도 다 안되고.
    아니 그러면서 무슨 스시집들 베스트 클라이언트라고 큰소리를 치나.

    일일이 갖다 모으기 조차 힘든 재료들을 가지고 장시간 세심하게 공들인 음식을 준비하면, 플레이팅이 떨어진다고 하질않나.

    결국 파스타 하나 끓여달라고 한다.
    내 귀엔 라면 하나 끓여달라는 것처럼 들린다.
    우리 레스토랑엔 파스타 메뉴가 없다.
    특별한 재료로 만드는 나만의 독창적 파스타가 있지만, 그건 나와, 그리고 16년째 나와 함께 일하는 우리 사장을 위한 거다.  


    # 2

    한 10번 째 왔을 즈음이었나….
    곽상무가 희한한 얘길한다.
    자기가 안 가본 나라가 없고 안 먹어본 음식이 없는데, 제대로 된 생선 프라이, 그것도 팬 프라이(pan-fry)가 없다고 한다.
    약간은 진지한 태도로.

    뭐야??
    아니 그 좋은 해물은 입도 못대면서 생선 프라이(fry)를 찾아?
    뭐 그럴 수도 있겠지만.

    일본 출장 경험이 좀 있는 나도 생선 덴뿌라야 꽤 먹어봤지만, 튀김옷 없이 팬 프라이(pan-fry)한 생선은 없었다.
    딱걸렸다.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요리가 생선 프라이인데.

    우리 아버지는 엄청난 생선광이셨다.
    정말 하루도 빠지지 않고 일본제 후지카 곤로에 프라이 팬을 얹어 놓고 생선 프라이를 해서 드셨다.
    자연스럽게 옆에서 같이 지지고 했던 것이 열살쯤이라고 하면, 나의 생선 프라이 경력은 얼추 40년쯤 된다.
    일주일 후로 약속을 잡았다.


  • 홍메기, 은대구라고도 한다. ⓒ뉴데일리
    ▲ 홍메기, 은대구라고도 한다. ⓒ뉴데일리

    # 3

    홍메기.
    은대구라고도 하는데, 대구와는 생긴 모양이 완전 다르다.
    가늘고 뾰족하게 끝나는 꼬리부분이 정말 귀엽다.
    뭐라 표현할 수 없는 독특한 맛이다.
    물도 많고 담백하고, 게다가 유쾌한 기름기가 혀를 즐겁게 한다.

  • 홍메기 머리 부분을 확대해서 찍은 사진. ⓒ 이동송
    ▲ 홍메기 머리 부분을 확대해서 찍은 사진. ⓒ 이동송

    홍메기 정리작업.
    살이 물러서 살짝만 잘못 잡아도 살점이 함몰된다.
    왜 이런 생선을 붙들고 씨름을 하는지 모르겠다.
    흔하지도 않고 싸지도 않다.

    초세밀 작업으로 유니폼 목 언저리가 땀으로 완전 젖을 때까지 몰입한다.
    뱃살쪽에 잔가시가 많기 때문이다.
    생선가시는 눈으로 확인하는 게 아니라 손끝의 감각으로 잡아내야 한다.

    가시 나오는 생선 요리는 가치가 없다.
    가시 몇 개쯤 손님들에게 양해를 구해야하거나, 아예 무시해버릴거면 레스토랑일 집어 치워야 한다.
    미식을 위해서가 아니라 음식의 기본이기 때문이다.
    아주 느긋하고 편안하게 즐기는 홍메기 프라이를 탄생시키기 위해, 끝까지 정신차리고 집중해야 한다.

    7시15분에 정확히 맞춰 나가는 앙뜨레(entrée).
    오늘은 곽 상무를 위한 홍메기 프라이 앙뜨레(entrée)로 시작한다.

    생선 프라이는 보통 두번째 메뉴인데, 날이 날인 만큼 첫 타로 나간다.
    홍메기 양은 푸짐하고, 곽 상무가 맡겨논 화이트 와인도 충분히 있다.


  • 홍메기 살 정리 작업은 까다롭다. 하루전 손질해 마리네이드해 놓은 홍메기살.  ⓒ 이동송
    ▲ 홍메기 살 정리 작업은 까다롭다. 하루전 손질해 마리네이드해 놓은 홍메기살. ⓒ 이동송
     
  • 하루전 마리네이드해 냉장보관한 홍메기살을 실온으로 올리는데 3시간 정도가 소요된다.  ⓒ 이동송
    ▲ 하루전 마리네이드해 냉장보관한 홍메기살을 실온으로 올리는데 3시간 정도가 소요된다. ⓒ 이동송

    # 4

    4시다.
    전날 마리네이드 해놓은 홍메기를 냉장고에서 꺼냈다.
    실온으로 생선온도를 올리기 위해선 3시간이 필요하다.

    매일 매일의 7시15분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 치명적인 시간이다.
    해산물이나 생선요리와 함께 부르고뉴(Bourgogne) 지방 샤도네이(Chardonnay)를 페어링(pairing)하는 시간이다.
    아슬아슬한 미식의 시간이다.


  • 팬 프라이 홍메기살 앙뜨레와 페어링한 부르고뉴산 샤도네이 화이트 와인.  ⓒ 이동송
    ▲ 팬 프라이 홍메기살 앙뜨레와 페어링한 부르고뉴산 샤도네이 화이트 와인. ⓒ 이동송

    7시5분이다.
    10분안에 끝내야한다.
    이미 30분 전부터 달구고 있는 뜨거운 주물팬이 기다리고 있다.
    가스불과 긴장감이 내 머리부터 먼저 달군 상태. 


  • 거칠은 느낌이 나는 이태리 맷돌 통밀가루로 크러스트를 만들었다. ⓒ 이동송
    ▲ 거칠은 느낌이 나는 이태리 맷돌 통밀가루로 크러스트를 만들었다. ⓒ 이동송

    오늘은 이태리에서 공수해 온 맷돌 통밀가루 <Petra 9>을 홍메기 껍질쪽에만 묻혀서 크러스트(crust)를 만든다. 

    카놀라유와 올리브유를 반반 팬에 두르고 크러스트(crust)가 묻은 홍메기를 부드럽게 터치다운한다.
    40년간 들었던 그 소리가 난다.
    분명 생선인데 생선 냄새가 아니다 라는 느낌이 짧게나마 지나가는 여유는 있다.
    너무 순식간에 끝난다.


  • 카놀라유와 올리브유를 반반 팬에 두르고 크러스트한 홈메기를 프라이한다. ⓒ 이동송
    ▲ 카놀라유와 올리브유를 반반 팬에 두르고 크러스트한 홈메기를 프라이한다. ⓒ 이동송
     
  • 프라이한 홍메기살을 키친 타월 위에 올려 여분의 기름을 제거한다. ⓒ 이동송
    ▲ 프라이한 홍메기살을 키친 타월 위에 올려 여분의 기름을 제거한다. ⓒ 이동송
     
  • 프라이한 홍메기살 그 자체를 즐길려면 토판염만 살짝 올리기도 한다.  ⓒ 이동송
    ▲ 프라이한 홍메기살 그 자체를 즐길려면 토판염만 살짝 올리기도 한다. ⓒ 이동송

    이제부턴 초스피드로 플레이팅해서 나가야 한다.
    나의 홍메기 프라이는 따끈함에 매력이 있다.

    정확히 7시15분이다.
    배고프다고 아우성치는 곽 상무 접시는 내가 직접 들고 나가서 서빙한다. 


  • 팬 프라이한 홈메기살. 곽상무의 반응이 궁금하다. ⓒ 이동송
    ▲ 팬 프라이한 홈메기살. 곽상무의 반응이 궁금하다. ⓒ 이동송

    감으로 확인할 수 밖에 없는 홍메기 프라이.

    그러나 손님 표정을 보면 젓가락이 닿기 전에 어떤 상태인지 알 수 있다.
    그냥 밝은 표정.
    일단 퇴장.

    그리고 이야기.

    "셰프! 생선 프라이 인정합니다"

    예상했던 대로다.
    어쩜 표현이 그렇게 인색한가.

    알 수 없다.
    홍메기 프라이가 진짜 맛있었는지.
    아니면 너무 기대 이상 이어서 놀랬나?

    아무튼 곽 상무 오늘은 마지막 코스까지 트집 안잡고 넘어갔다.
    나도 속으로는 타협을 했다.
    생선은 무슨….
    그 놈의 파스타 해주자.

    그렇지만 정말 생선 프라이를 좋아한다면, 나와 친구가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