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재철 "국제적 제재 흐름 속에서 한미동맹은 무시할 요소가 아냐"

  • 박근혜 대통령이 1일 오후 중동 4개국 순방길에 올랐다.

    박 대통령은 순방 기간 중 4개국 정상과 각각 양자회담을 갖고 의료·제조업·IT 분야와 같은 고부가가치 신성장동력에서의 협력을 확대하는 등 실질적 협력 증진 방안을 논의할 예정이다.

    7박9일 간의 일정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9일 낮 한국에 돌아온다.

    오는 5월 모스크바에서 열리는 러시아의 70주년 전승기념식 참석 여부는 아직도 불투명하다. 박근혜 대통령의 행사 참석을 두고 청와대가 신중한 자세를 견지하고 있는 가운데 어떠한 결론도 내리지 못하고 일단 중동으로 떠나는 모양새다.

    9일이면 정확히 두 달 앞이다. 러시아의 전승기념식처럼 껄끄러운 행사일수록 참석 여부를 서둘러 결정하는 것이 좋다는 것이 정가의 대체적인 견해다. 시간을 질질 끌다 불참 입장을 밝힐 경우 양국 관계가 겉잡을 수 없을 정도로 악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청와대가 최종 결론을 내리는데 있어서는 더욱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관측된다. 박 대통령과 참모들이 귀국해 본격 논의를 시작한다 해도 우리의 외교적 이익을 계산하고 의견을 조율하는데 있어 적잖은 시간이 필요하다. 결국 5월 러시아 전승기념일을 눈앞에 두고 부랴부랴 러시아에 참석 여부를 통보하는 상황이 올 가능성까지 제기된다.

    러시아 정부는 최근 한-러 외교장관 회담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행사 참석을 공식 요청했다. 러시아 측 국제문제 전문가들도 한-러 관계발전을 명목으로 박 대통령의 러시아행(行)을 압박하는 모습이다. 

    반면 미국 정부는 일찌감치 오바마 대통령의 불참 계획을 밝힌 뒤, 우방 국가에 대한 러시아의 잇단 외교적 압박에 불편한 시선을 보내고 있다. 백악관은 지난달 10일 박 대통령의 방러에 부정적인 태도를 즉각적으로 보였었다.

  • 지난해 3월 우크라이나 동부 접경지역에 러시아군이 집결했다는 소식을 전하는 외신. ⓒ알 자지라 아메리카 보도화면 캡쳐
    ▲ 지난해 3월 우크라이나 동부 접경지역에 러시아군이 집결했다는 소식을 전하는 외신. ⓒ알 자지라 아메리카 보도화면 캡쳐


    우크라이나 사태를 둘러싼 서방과 러시아의 긴장 갈등은 날이 갈수록 첨예해지고 있다.

    지난달 26일 주요 외신에 따르면, 미국과 영국에 이어 폴란드까지 군사 훈련단을 파견하겠다고 발표했다. 또한 존 케리 미 국무장관은 "러시아에 대한 추가 경제제재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우크라이나 총리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서 물러나야 한다"면서 전면전을 경고하기도 했다.

    일촉즉발(一触即发)이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 대한 가스공급 중단 카드를 꺼내든 직후 경제가 최악의 위기상황으로 치닫자 서방의 개입이 점차 확대되고 있다.

    그야말로 우크라이나 사태가 '폭풍 전야'로 번지고 있는 듯한 양상이다. 심지어 우크라이나 사태가 서방과 러시아 간 '제2의 냉전'으로 확산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런 심각한 상황을 아는지 모르는지 청와대는 여전히 묵묵부답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오는 5월 러시아 전승기념식에 참석할 경우, 당장 우방국들과 등을 지게 되는 상황을 맞을 수 있는데도 그저 "검토 중"이라는 입장만 되풀이 할 뿐이다.

    '한미동맹'의 약화를 노리는 좌파진영은 박근혜 대통령이 반드시 러시아에 가야 한다고 연일 부채질을 하고 있다. 좌파진영의 주장에 동요하는지, 청와대 내에서 박 대통령을 보좌하는 주철기 외교안보수석은 안절부절하며 방향을 잡지 못하는 분위기다.

    서방의 경제제재 속에서 대규모 무장행사를 벌이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속내와 국론분열을 꾀하는 좌파진영의 주장을 명확히 꿰뚫고 있다면 사실 답은 간단할 것이다. 국제질서를 추구하는 것은 물론 우방국과의 신의(信義)를 져버릴 수 없는 중차대한 문제다.  

    박 대통령이 러시아에서 북한 김정은과 만나는 장면이 연출되는 것이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적절한지를 놓고도 정치권에서는 부정적인 의견이 쏟아져 나온다.

  • 지난해 11월11일 APEC 정상회의가 끝난 후 박근혜 대통령과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환담을 나누는 모습. ⓒ청와대 홈페이지
    ▲ 지난해 11월11일 APEC 정상회의가 끝난 후 박근혜 대통령과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환담을 나누는 모습. ⓒ청와대 홈페이지


    지난달 25일 새누리당 최고중진연석회의에 참석한 심재철 최고위원의 발언내용이다.

    "오는 5월 9일 러시아의 2차 대전 승리 70주년 기념행사에 박근혜 대통령의 참석여부가 관심을 끌고 있다. 러시아의 승전축하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와 러시아가 1990년 외교관계를 맺었다는 점 등을 고려할 수도 있겠지만 러시아의 옛 이름 '소련'이 해방된 한반도를 분단의 질곡에 빠트린 역사적 원죄가 있음을 잊지 말아야한다.

    또 러시아에서 김정은을 만날 수 있다는 희망 섞인 관측도 있으나 그것이 잠깐의 조우가 아니라 제대로 된 남북 정상회담이라는 보장도 없는 상태다. 이런 상태에서 만약 박 대통령이 김정은과 함께 푸틴의 좌우에 들러리 서는 모양새가 연출된다면 우리나라의 체면이 얼마나 구겨지겠는가?"


    심재철 최고위원은 이번 러시아 행사에 참석하면 9월 베이징에서 열리는 중국의 톈안먼 열병식(天安門 閱兵式)도 외면하기 어렵다는 점 또한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중국도 오는 9월 대일승전행사를 벌이고 우리나라를 초청할텐데 이번에 러시아에 간다면 중국에도 갈 수밖에 없게 된다. 하지만 중국 역시 한반도 분단의 '원죄'가 있으며 중국의 2차 대전 승전에 대한 축하는 반일연대로도 해석될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러시아의 크림반도와 우크라이나 사태 개입에 반대하는 국제적인 제재 흐름 속에서 한미동맹 관계도 무시할 요소는 아니다. 푸틴은 100억달러의 북한 부채를 탕감해주는 등 여전히 김정은 체제의 주요한 지원자이다. 박 대통령의 러시아 승전기념 방문은 득보다는 실이 더 많을 것으로 보인다. 일관된 기준을 세워야한다."


    집권 초기 우리의 초청은 온갖 핑계로 미루다 평양을 먼저 들른 뒤에야 서울을 찾았던 푸틴 대통령이다. 마치 박근혜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을 양쪽에 움켜쥐고 저울질이라도 하듯 정치적 셈법에 따라 양측을 좌지우지하려는 러시아의 행태를 꼬집은 심재철 최고위원이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구(舊) 소련의 영광을 되찾겠다는 푸틴이 북한을 동진(東進) 정책의 거점으로 보고 입맛을 다시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주철기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은 하루빨리 입장을 정리해야 한다.

    국제적 정세와 내부 상황을 정확히 읽어야 한다. 국가적 이익 측면에서 득(得)보다는 실(失)이 훨씬 크기에 박근혜 대통령의 러시아 행사 참석은 불가(不可)하다는 것이 중론이다.

    그렇다면 서둘러 러시아 측에 불참 입장을 전달하는 것이 옳다. 차일피일 미룰 시간이 없다. 주철기 외교안보수석이 허수아비가 아니라면, 빠른 시일 내 외교부와 협의해 러시아에 불참 의사를 통보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