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리비 요리에 버터를 절대로 쓰지 않아요"
  • # 1

    녁 8:30분쯤 페이스북 메신저가 "띠링"하고 울렸다.

  • 뽀미에르의 오너 셰프 이동송 ⓒ 이동송
    ▲ 뽀미에르의 오너 셰프 이동송 ⓒ 이동송


    "셰프님~~~"
    "
    남푠님이랑 집에서 와인마시다가 셰프님생각나서요ㅎㅎ"


    작년말 지인의 소개로 만난 미식가 부부의 안주인이셨다.
    일주일 후 오시겠다는 반가운 소식.
    비교적 최근에 알게 되었지만, 여러모로 연륜과 친근함이 있는 분들이다.

    자연스럽게 나의 베스트 메뉴들을 소개한 상황이지만, 신년에는 처음 뵙는 거라 더더욱 메뉴 선택에 고민이 되기 시작했다.

    앙뜨레(entrée)는 그날 코스의 이른바 '가오마담'(얼굴마담)이자 나의 시그너쳐 메뉴이기 때문이다.
    항상 그렇지만 앙뜨레로 쓸, 살아서 육즙이 흐르는(
    succulent) 재료는 많지 않다.

    언듯 가리비(scallop) 생각이 났다.


  • 큰가리비. 원형에 가까운 부채꼴 모양의 큰 조개다. 우리나라에서는 동해안에서만 난다.ⓒ 한국학중앙연구원
    ▲ 큰가리비. 원형에 가까운 부채꼴 모양의 큰 조개다. 우리나라에서는 동해안에서만 난다.ⓒ 한국학중앙연구원



  • 먹기좋게 손질한 가리비살. 질 좋은 가리비살에는 세로줄이 선명하게 나타난다. ⓒ 이동송
    ▲ 먹기좋게 손질한 가리비살. 질 좋은 가리비살에는 세로줄이 선명하게 나타난다. ⓒ 이동송


    # 2

    강원도 고성, 동해안쪽 휴전선에 바짝 붙어 있는 바닷가에서 양식하는 가리비를 떠올렸다.
    가리비는 한여름이어야 살이 가득 찬다.
    겨울 가리비는 수심 30m의 혹독한 환경을 이겨내느라 살이 작다.
    안타깝게도 살보다 껍질이 더 크다.
    그래서 제철이 아닌 가리비는 껍질을 돈주고 산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래도 가리비 생각만 하면 흥분된다.
    살아있는 가리비에게 물리는 생각을 한다.
    지난 15년동안 나는 얼마나 많은 가리비를 사용했을까?
    속초에서 서울에서.

    2000년 8월 중순, 대통령 방북행사가 있던 날.
    나는 속초의 어느 군인휴양소에서 가리비 70마리와 야채를 꼬치에 끼운 이태리식 꼬치요리(Gli spiedini orto mare)를 밤새도록 했다.
    그 휴양소에 휴가온 모든 군인 가족들에게 가리비 꼬치를 맛보게 해드렸다.

    나를 셰프(chef)의 길로 가게했던 가리비다.
    다이애나 왕세비도 그렇게 가리비를 좋아했다지만, 나만큼 가리비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을까?


    # 3

  • 1735년에 창업한 '리차드 지노리'는 이탈리아의 전통 도자기 브랜드다. 2013년에 '구찌'가 사들였다.ⓒ 뉴데일리DB
    ▲ 1735년에 창업한 '리차드 지노리'는 이탈리아의 전통 도자기 브랜드다. 2013년에 '구찌'가 사들였다.ⓒ 뉴데일리DB

    오늘은 미식가 부부의 예약일이다.
    거의 한달만에 만져보는 가리비다.

    살아있는 가리비를 따끈하게 데운 접시 위에 플레이팅 하는 과정은 고난도의 테크닉 그 자체다.

    아! 어떤 접시에 어떻게 담아야 하나?
    우리 레스토랑엔, 다 기억하지 못할정도로 좋은 그릇들이 많지만, 뭔가 스페셜한 접시를 쓰고 싶다.
    그릇으로 겹겹이 꽉들어찬 그릇방을 뒤지고 꺼내 보았다.
    전부 다 천으로 싸고, 그걸 다시 비닐로 또 싸놓은 그릇들이라 한 번 못찾으면 포기해야 한다.

    오늘은 지노리(Ginori)의 플래티넘 시리즈를 골랐다.
    2000년대 후반에 내놓은 최신작이다.
    조심해서 다루지 않으면 플레이트의 페인팅이 벗겨질 수 있는 고급 자기이다.
    그중에서 작은 접시 2개와 수프 볼 2개를 꺼냈다.
    얇고 가벼운데다 광채가 장난이 아니다.
    몇 번 안쓴 나의 컬렉션이다.


  • 지노리의 플래티넘 시리즈 그릇. ⓒ 이동송
    ▲ 지노리의 플래티넘 시리즈 그릇. ⓒ 이동송


    # 4

    바쁜 날이다.
    속초의 지인에게 특별히 부탁한 가리비도 터미널 가서 찾아야 하고, 새로 들어온 이태리 밀가루도 배달 받아 정리해야 하고….
    가리비 말고도 준비해야 할 일들이 너무 많다.
    혼자 주방에서 일을 하니 모든 것을 스스로 챙겨야 한다.
    그것도 까칠하고 변태적으로 정리정돈 하면서….

  • 가리비를 다듬기 위해 만든 전용 칼. ⓒ 이동송
    ▲ 가리비를 다듬기 위해 만든 전용 칼. ⓒ 이동송

    일단 내가 만든 가리비 칼을 꺼낸다.
    양식 나이프를 몇 번 구부려서 만든 칼.
    가리비의 살이 조금이라도 껍질(shell)에 붙어있지 않게 완벽하게 비집고 들어가서 살아 있는 가리비 오른쪽 힘줄을 끊어낼 수 있도록 고안했다.
    그리고도 십여번에 걸쳐 수정하고 또 수정한 전용 작업칼이다.

    작업은 시작된다.
    칼이 가리비의 오른쪽 틈새(slot)를 비집고 들어가서 탁 벌려지게 순식간에 찔러야 한다.
    가리비의 맨 바깥쪽 테두리의 막을 제거한다.
    이 테두리 막은 프랑스인들이 망또(manteau)라 부르는 아주 쫀득한 띠 모양의 살이다.
    먹이를 먹고 껍질(shell)을 닫을 때, 껍질과 같이 움직이며 가리비 내부를 외부와 완벽하게 차단시키는 역할을 한다.

    한마리의 가리비를 10초 내외에 예리하고 정확한 손놀림으로 하지 않으면 살이 망가진다.
    그것도
    찬물에 맨손으로 해야한다.
    온전한 살을 얻기 위해서는 연습 밖에 없다.

    약간 찌그러진듯한 원기둥 모양의 가리비 중심살과 망또를 김막동 소금장인의 5년 토판염과 이태리 최고의 올리브오일(Frantoio di Santa Tea), 그리고 꼬냑(Henessy Cognac XO)으로 마리네이드 한다.
    이건 내가 최고라고 생각하는 재료에 대한 예우다.

     

  • 이탈리아 토스카나 피렌체 지방 곤넬리(Gonnelli) 社의 품질 좋은 올리브 오일 ⓒ 이동송
    ▲ 이탈리아 토스카나 피렌체 지방 곤넬리(Gonnelli) 社의 품질 좋은 올리브 오일 ⓒ 이동송


  • 손질해 놓은 가리비. 위에 보이는 것이 망또다. ⓒ 이동송
    ▲ 손질해 놓은 가리비. 위에 보이는 것이 망또다. ⓒ 이동송


    맨 프라이팬(frypan)을 뜨겁게 달군다.
    유럽이나 미국에선 달군 팬에 다량의 버터를 넣고 가리비가 버터에 절도록 튀김 수준으로 요리한다.
    몇년전 세계적인 셰프들인
    다니엘 불뤼(Daniel Boulud)알랑 뒤카스(Alain Ducasse)가 뉴욕에서 운영하는 최고급 레스토랑에서 먹어보았는데 모두 느끼했다.

  • 최근 다니엘이 쓴 책이 우리말로도 번역 출판됐다.ⓒ뉴데일리
    ▲ 최근 다니엘이 쓴 책이 우리말로도 번역 출판됐다.ⓒ뉴데일리

    필자 주 :
    프랑스 출신 오너 셰프 다니엘 불뤼(Daniel Boulud)가 1982년 뉴욕에 진출해 만든 최고의 프렌치 레스토랑이 Daniel이다.
    미슐
    랭으로부터 별 3개 평점을 연속으로 받기도 했다.
    다니엘은 자신의 레스토랑에서 수많은 후배  요리사들을 배출했다.
    요리에 관한 책도 여러권 출간했다.

    알랑 뒤카스(Alain Ducasse)는 흔히 프랑스의 3대 셰프 중 하나라고 이야기 된다.
    파리의 대표적 호텔인 플라자 아테느에 있는 자신의 이름을 건 식당
    Alain Ducasse가 그의 트레이드 마크다.
    그는 파리는 물론 뉴욕, 런던, 모나코, 동경, 홍콩 등 전세계에서 수십개의 레스토랑을 운영하고 있다.
    그 중 뉴욕에 있던 레스토랑이 Adour.
    그러나 2012년에 문을 닫았다.


    나는 맨 프라이팬에서 굽듯이 한다.
    가리비에 살짝 마리네이드 해놓은 올리브유 양이면 충분하다.
    김이 날 정도로 뜨거운 팬에 한 면만 15초, 그리고 재빨리 꺼내서 차가운 접시에서 식혀야 한다.
    고온에서 구웠기 때문에 잔열이 있게 되면, 생각했던 것보다 더 익어서 촉촉하게 되지 않는다.
    고기로 말하면 이른바 레어(rare)를 얻는 과정이다.

    졸인 우유와 화이트 와인으로 만드는 가리비 화이트소스(Sauce blanche pour Coquilles St-Jacques).
    가니싱으로는 시칠리아에서 공수해온 소금에 절인 케이퍼(Caperi al sale marino).
    가리비가 들어 앉은 지노리(Ginori) 접시는 더 할 나위 없다.

    메인 디쉬로 내놓는 최상급 한우 암소 립아이 스테이크(rib-eye steak)야 당연히 강력(powerful)하고 그날 식사의 꽃이겠지만, 나는 내심 가리비 요리가 어떻게 각인되었을까가 더 궁금하다.

    나의 가리비 요리가 통했으면, 그 손님들은 나와 친구가 될 수 있다.


  • 가리비로 만든 앙뜨레. ⓒ 이동송
    ▲ 가리비로 만든 앙뜨레. ⓒ 이동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