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YT, 미국에 퍼진 음모론 평가…美정부 조작설, NWO 조작설 등 소개
  • 현재 미국에서는 에볼라 공포가 확산되고 있다. 사진은 CDC의 지역별 격리시설 지도. ⓒ美폭스 TV 보도화면 캡쳐
    ▲ 현재 미국에서는 에볼라 공포가 확산되고 있다. 사진은 CDC의 지역별 격리시설 지도. ⓒ美폭스 TV 보도화면 캡쳐

    ‘자칭 깨어있는 시민들’에 따르면, ‘음모론’은 정보가 차단된 독재국가에서 ‘진실’을 알려주는 것이라고 한다. 이들 말대로라면 미국도 이제 독재국가가 된 걸까.

    서아프리카 등에서 4,300여 명 이상의 사망자를 낸 에볼라 바이러스가 美본토에까지 퍼지자 미국 내에서 ‘음모론’이 확산되고 있다고 ‘뉴욕타임스(NYT)’가 18일(현지시간) 보도했다.

    NYT가 전한 ‘에볼라 음모론’ 가운데는 ‘미국이 만든 생물무기’설, 세계 비밀결사체가 인구 수를 줄이기 위해 만든 무기설 등도 있다.

    ‘미국이 만든 생물무기’설은 지난 9월 라이베리아 현지 언론 ‘데일리 옵저버’가 보도하기도 했다고 한다. 이 언론은 “에볼라는 의료적 재난이 아닌 ‘생물 무기’로 美국방부가 지구의 인구를 줄이기 위해 이 무기를 만들었다”고 주장했다.

    이와 유사한 소문은 이미 15년 전부터 돌았으나, 언론사의 보도가 나오자 ‘음모론’이 돼 확산되기 시작했다고 한다. 현재 온라인에서는 美질병통제예방센터(CDC)가 에볼라 바이러스를 활용해 특허를 냈으며 제약사들과 함께 개발한 백신을 배포해 막대한 수익을 올릴 것이라는 주장도 나돌고 있다고 한다.

    ‘일루미나티’ 등 세계 엘리트들이 모인 비밀 결사조직이 추진 중인 ‘뉴월드오더(NWO)’ 계획에 따라 전 인류를 원하는 대로 격리, 추방하고 이들의 지시를 받는 각국 정부가 계엄령을 선포할 수 있도록 하려고 에볼라 바이러스를 만들었다는, ‘해묵은 음모론’도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고 한다.

  • 일각에서는 에볼라 바이러스가 '일루미나티'와 같은 비밀조직이 만들어 낸 인구조절용 무기라고 주장한다. 사진은 음모론자들이 늘 주장하는 美 1달러 지폐 안의 비밀조직 표시라는 '全視眼'. ⓒ美음모론 사이트 캡쳐
    ▲ 일각에서는 에볼라 바이러스가 '일루미나티'와 같은 비밀조직이 만들어 낸 인구조절용 무기라고 주장한다. 사진은 음모론자들이 늘 주장하는 美 1달러 지폐 안의 비밀조직 표시라는 '全視眼'. ⓒ美음모론 사이트 캡쳐

    NYT는 이런 음모론이 유명 인사들 사이에서도 퍼지고 있다고 전했다. 이 가운데는 자신의 트위터에 “에볼라는 인구통제 수단 같다”는 글을 올린 미국의 유명 가수 크리스 브라운도 있다.

    미국 내에서 오바마 행정부에 반대하는 러시 림보, 로라 잉그램과 같은 美보수계 인사들은 “버락 오바마가 아프리카에 대한 식민지배와 노예제도에 대한 부채의식 때문에 美본토에서의 전염 가능성이 있음에도 서아프리카에 군 병력을 보냈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고 한다.

    NYT가 전한 음모론을 보면, 2010년 3월 말부터 나돌았던 ‘천안함 음모론’, 2014년 4월 이후 지금까지 한국 온라인에 떠돌고 있는 ‘세월호 음모론’을 떠올리게 한다.

    ‘천안함 음모론’과 ‘세월호 음모론’ 가운데 비슷한 부분은 두 가지. 정부가 일부러 사고를 일으킨 뒤 북한의 소행으로 조작했다는 것과 미국 또는 이스라엘이 ‘사고’를 일으킨 뒤 한국이 뒷수습을 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천안함 음모론’ 당시 음모론자들은 “천안함은 사실 한국군이 설치한 해저기뢰에 당한 것인데 이명박 정부가 국내 정치상황을 유리하게 만들려고 해군 장병을 희생시켰다”고 주장했다. 이후 국제 조사단까지 꾸려져 정밀조사를 진행, 조사보고서를 내놔도 이들은 믿지 못했다.

    ‘세월호 음모론’에서는 정부라는 표현보다는 ‘국정원’이 구체적인 주체로 등장한다. 세월호가 국정원의 소유이며, 국정원이 일부러 여객선을 침몰시키고 수많은 생명을 희생시켰다는 주장이다. 이들 또한 현재 진행 중인 세월호 관련 재판에서 검찰이 조사한 내용, 피의자들의 진술에서 나온 사실 등은 무시하고 ‘정부의 소행’이라는 주장만 내세운다.

  • 천안함 폭침 이후 일각에서 음모론이 들끓자 한 군사전문 블로거가 조목조목 반박하기도 했다. ⓒ군사전문 블로거 판저의 관련 내용 글 캡쳐
    ▲ 천안함 폭침 이후 일각에서 음모론이 들끓자 한 군사전문 블로거가 조목조목 반박하기도 했다. ⓒ군사전문 블로거 판저의 관련 내용 글 캡쳐

    이보다 더욱 인기를 끌었던 음모론은 미국 또는 이스라엘의 소행이라는 것이다. 여기에는 둘 다 잠수함이 등장한다.

    ‘천안함 음모론’에서는 미국 잠수함이 한국과 서해상에서 연합훈련을 빙자해 대북특수작전을 수행하기 위해 연평도 인근 해상으로 침투했다가 천안함을 들이받아 침몰시켰다는 게 골자다.

    음모론자들이 내놓은 근거는 美핵잠수함이 고강도 철강을 사용한 반면 천안함은 오래된 배였다는 점, 천안함 폭침 당시 미군이 침몰지점과는 다른 곳에서 활동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천안함이 폭침당한 곳의 수심이 불과 40m 안팎이어서 길이 107m, 높이 20m 이상인 美핵잠수함이 여기서 활동하는 게 거의 불가능하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러자 이번에는 엉뚱하게도 이스라엘을 ‘범인’으로 지목했다. 북한이 개발한 핵무기가 이란으로 넘어갈 것을 우려한 이스라엘 특수부대가 소형 잠수함을 타고 서해상으로 침투하다 천안함과 부딪혔다는 주장이었다.

    이 또한 이스라엘이 보유한 잠수함으로는 한국까지 비밀리에 오기가 거의 불가능하다는 점이 부각되면서 서서히 잊혀졌다.

  • 지난 여름 유행했던, 세월호와 美핵잠수함 충돌설의 증거 사진. 음모론자들은 오른쪽에 보이는 게 잠수함이라고 주장한다. ⓒ세월호 침몰 당시 영상 캡쳐
    ▲ 지난 여름 유행했던, 세월호와 美핵잠수함 충돌설의 증거 사진. 음모론자들은 오른쪽에 보이는 게 잠수함이라고 주장한다. ⓒ세월호 침몰 당시 영상 캡쳐

    ‘세월호 음모론’에서도 美핵잠수함이 등장한다. 음모론자들은 당시 생존자들이 찍은 휴대전화 사진 등을 근거로 美핵잠수함과 세월호 간에 충돌사고가 일어났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세월호가 침몰한 곳의 수심은 천안함이 폭침당한 곳보다 더 얕아 이들의 주장은 별 관심을 끌지 못했다.

    그러자 음모론자들은 이번에는 “세월호가 사실은 국정원 소유이며, 비밀작전을 수행하다 문제가 생겨 국정원이 일부러 침몰시켰다”는 주장을 퍼뜨리기 시작했다. 이 음모론은 지금도 다음 아고라 등에서 떠돌고 있다.

    한국에서 떠돌던 음모론과 ‘에볼라 음모론’을 보면 공통점이 보인다. 바로 ‘정부의 소행’ 또는 ‘우리가 잘 모르는, 뭔가 거대한 세력의 음모’라는 것이다. 이는 “내가 잘 모르는 사실에 대해 내가 이해 가능한 부분 내에서 설명하기 위해 사실을 왜곡하는” 음모론의 공통적인 특징이기도 하다.

    NYT는 ‘천안함 음모론’과 ‘세월호 음모론’이 떠돌 때 나서서 이를 퍼뜨리던 일부 한국 매체와는 달리 전문가들의 말을 인용해 두 가지 의견을 제시했다.

    NYT는 “음모론은 그 자체로는 ‘거짓’이며 아무 의미도 없지만 대중의 초조함을 나타내는 표현일 수 있다”는 마이클 바쿤 시라큐스大 명예교수의 설명을 인용한 뒤, “음모론은 거짓과 넌센스를 혼합한 것이지만 사회적 공포를 반영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NYT는 “에볼라가 돈벌이 수단이라는 얘기는 3류 스릴러 소설 같지만 미국 의료 시스템의 일면을 건드리는 이야기이기도 하다”라는 마크 펜스터 플로리다大 법학교수의 의견도 전한 뒤 “일각에서는 음모론이 일말의 진실을 담고 있는 것으로 보기도 한다”고 전했다. 

    최근 에볼라 바이러스로 인한 ‘피어-볼라(에볼라 공포증)’로 많은 미국인들이 편집증적인 반응을 보이는 상황에서 NYT의 분석과 평가는 좋은 기준을 제시한 것으로 보인다. 

    만일 ‘천안함 폭침’ 때와 ‘세월호 침몰’ 초기에 한국 언론들이 NYT와 같은 역할을 했더라면, 그 이후에 벌어진 국력 낭비를 크게 줄일 수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