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현대사의 뿌리는 스탈린-모택동의 길을 가자는 세력과의 싸움에서 출발!
  • 생명의 길


    이승만·박정희 죽이기 <백년전쟁>, <생명의 길>로 새빨간 거짓 들통나
    논픽션을 실제인 양 가르친 80년대…가장 [反대한민국]적인 세대 양산
    말과 행위의 左右 따지기 앞서 참·거짓 가리는 양식(良識) 살아있기를


    류근일


  • 류근일 뉴데일리 고문/전 조선일보 주필ⓒ
    ▲ 류근일 뉴데일리 고문/전 조선일보 주필ⓒ

    대한민국 현대사를 둘러싼 역사관(歷史觀) 전쟁이
    2라운드로 접어들고 있다.
    싸움을 일으킨 쪽은 <백년전쟁>이라는 동영상을 만든 사람들이다.
    이 동영상에 따르면 이승만 박정희는 [친일파]라는 것이었다.
    이게 클릭 수 200만을 넘어서면서,
    "말도 안 된다"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다"는 반론이 일어났다.
    그래서 나온 것이 <생명의 길>이란 동영상이다.
    각계의 이승만 연구자들이 만들어 지난 4월 25일 유튜브에 올렸다.
    왜 제목이 <생명의 길>인가?
    이승만이 만든 길은 사람 살린 길, 김일성이 만든 길은 사람 죽인 길이란 설명이다.


  • '생명의 길' 동영상은 '백년전쟁'과 '2백년전쟁' 하는 마음으로 제작되었다.ⓒ
    ▲ '생명의 길' 동영상은 '백년전쟁'과 '2백년전쟁' 하는 마음으로 제작되었다.ⓒ
     
  • 나치독일의 선전상 괴벨스도 민족문제연구소 앞에만 서면 울고갈 것이다. 그 정도로 츙측한 프로파간다가 '백년전쟁'이다.ⓒ
    ▲ 나치독일의 선전상 괴벨스도 민족문제연구소 앞에만 서면 울고갈 것이다. 그 정도로 츙측한 프로파간다가 '백년전쟁'이다.ⓒ

    <생명의 길>은 <백년전쟁>이 12가지 [새빨간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말문을 연다.
    싸움의 대치선(對峙線)을 "사실이냐 날조냐, 진실이냐 허위냐?"로 긋고 있는 셈이다.
    중요한 분별법이 아닐 수 없다.
    좌(左)니 우(右)니 따지는 것보다 더 우선적으로 해야 할 것은,
    그 말과 행위가 참이냐 거짓이냐를 가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분별은 인간 세상, 지식인 세상의 가장 일차적인 요건이다.

    <생명의 길>이 꼽은 <백년전쟁>의 [새빨간 거짓말]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노인 이승만과 젊은 김 노디 여인이 불륜 행각을 벌였다는 대목이다.
    이걸 [증명]하겠다면서 <백년전쟁>은
    이승만과 김 노디 여인이 당국에 붙잡혔을 때 찍힌 것 같은 사진을 올렸다.
    그런데 그것은 진짜가 아니라 포토샵으로 조작한 가짜라고 <생명의 길>은 들춰냈다.
    당시 미국의 사직 당국도 이 무고(誣告)를 [무혐의]로 끝냈다는 것이다.


  • '백년전쟁' 제작진 측의 포토샵 조작 과정ⓒ
    ▲ '백년전쟁' 제작진 측의 포토샵 조작 과정ⓒ



    이승만의 프린스턴 대학 박사 학위논문이 엉터리라고 주장한 대목도 도마 위에 올랐다.
    그게 정말 그렇게 허접스러운 논문이었다면,
    미국의 유수한 대학출판사가 미쳤다고 그것을 상업출판까지 했겠느냐는 반박이다.
    이에 대해 <백년전쟁> 쪽은 가타부타 말이 없다.
    재반박을 아직 내놓지 않고 있어서인지, 아니면 영 못하고 있어서인지는 알 길이 없다.

    "이승만이 하와이 법정에 동포의 항일운동을 밀고했다"
    "일본과 잘 지내자는 글을 신문에 기고했다"
    "일본 감옥에 들어갔었다고 말했다"
    "하와이 동포들의 성금을 가로챘다"
    "백인 미녀들에게 돈을 뿌렸다" 운운에 대해서도,
    <생명의 길>은
    "그런 적도 없지만, 사실이라면 왜 박헌영이 이승만을 [인민공화국] 주석으로 추대했겠느냐?"는 말로 반박하고 있다.

    주목할 것은 진보적인 주요 학자들도 언론 인터뷰를 통해
    <백년전쟁> 식(式) 이승만 박정희 죽이기를 비판하고 나선 점이다.

    "압도적 농업 국가였고 민주주의를 해본 적도 없는 데다 거의 전쟁 상태였던 시기에 서구 민주주의를 왜 못하느냐고 하는 것은 현실에 대한 올바른 인식이 아니다. (중략) 박정희 모델은 완전히 부정돼야 할 모델이라는 데에 동의하지 않는다."
       -최장집 전 고려대교수


    "공(功)은 보지 않고 일부 과(過)만 집중적으로 드러내는 것은 균형 감각을 잃은 것이다. 시아누크 같은 동남아 건국 1세대들을 여러 차례 만났는데, 이들은 이승만 대통령의 기여를 입을 모아 얘기했다."
       -안경환 서울대교수/전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

    <생명의 길>과 두 학자의 견해는,
    역사 서술을 비롯한 모든 분야에서
    위조(僞造)와 편향(偏向)이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효과를 낼 수 있는가를 새삼 돌아보게 만든다.

    1912년, 영국의 변호사이자 아마추어 지질학자 찰스 도슨은,
    자신이 인류와 원숭이 사이의 [잃어버린 연결고리]를 발굴했다며 온 세상을 놀라게 했다.
    그는 그 두개골을 [필트다운인(人)]이라고 명명했다.
    그러나 1953년, 케네스 오클리라는 학자는 그것이 날조임을 밝혀냈다.
    문제는 거짓이 들통 날 때까지 수십 년 동안,
    [필트다운인]은 생물학 교과서에서 숱한 젊은 학도들을 감쪽같이 속여먹었다는 사실이다.


    이처럼,
    순전한 픽션,
    논픽션으로 착각하게 만드는 픽션,
    픽션으로 각색된 논픽션을,
    마치 실제(實際)인 양
    학교에서, 영화관에서, 출판물에서, 미디어에서, 사이버 공간에서 집요하게 쏟아부을 경우,
    그 착시(錯視) 효과는 여러 세대를 갈 것이다.
    80년대 편향된 이념 출판물들이 [가장 반(反)대한민국적인] 386, 486세대를 양산해냈듯이.

    중요한 것은 그래서 "틀린 것은 틀렸다"고 말하는 것이다.
    "아닌 것은 아니다"고 말하는 것이다.
    말하지 않고 내버려 두면 [필트다운인]은 정설(定說)이 돼버린다.

    "한국 현대사의 뿌리는 친일"이라는 찰스 도슨 식 [창작 사극(史劇)]도 내버려 두면,
    정사(正史)인 듯 돼버린다.

    <생명의 길>이 할 말을 다한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케네스 오클리 같은 말하기의 작은 시작은 되었으리라 믿는다.
    우리 사회에 그 정도 양식(良識)은 살아있다고 믿고 싶다. 

     

    2013. 5. 7 <조선일보> 특별기고 전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