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친떼](종북-친북-떼촛불)와, [문화]와 [사상]과 [정신]의 [전쟁]을 원한다!
  • 돌아오라!
    탈영병 조선일보여!
    [정신의 전쟁터]로 돌아오라!



    대한민국 최고의 인터뷰 전문기자인 <조선일보> 최보식이 1월 11일 칼럼에서 느닷없이 김지하를 사납게 비판했다.
    한마디로 “현실 정치판의 시비에 대해 사납게 떠들지 말고 ‘독립된 개인’으로서 고고하게 처신해라”는 소리이다. 

    나는 눈을 의심했다.
    왜?
    최보식이야말로 김지하 및 그 부인 김영주 토지문화관장에 대해 가장 잘 아는 사람 중의 하나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가 2011년 2월 28일에 쓴 <박경리의 딸, 김지하의 아내… 김영주 토지문화관 관장>이라는 인터뷰 기사는 눈물 나오도록 절절하게 김지하 및 그 가족의 속사정을 전한 명문이다. 


  • 그런 최보식이 김지하의 등짝에 칼을 찔렀다.
    그것도 3류 정치투기꾼 황석영과 동급의 인물로 비교하면서.

    나는 이것이 최보식 개인의 의견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최보식은 <조선일보>의 속내 혹은 분위기를 고스란히 전하는 나팔수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
    <조선일보>는 불편한 것이다.
    무엇이?

    [종친떼](종북, 친북, 떼촛불 혼합체)가 누려온 문화권력에 대한 본격적인 [정신의 전쟁]이 시작된 것이 몹시 불편한 것이다.
    이 살벌한 전쟁판에서는 <조선일보>의 입지가 줄어들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 엄청나게 배알 뒤틀리는 것이다. 차분히 그 내막을 까보자.



    1. 최보식은 무엇이라 썼나?


  • 최보식의 김지하 비판은 다음과 같은 네 개의 명제를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다.

    첫째, 김지하의 말이 너무 험하다.
    그의 말은 화해와 통합은 커녕 오히려 사회에 불화와 분열을 불러일으킨다. 

    그의 말과 글은 정곡을 콕콕 찌르고, 스스로 '욕쟁이 입'이라고 했듯이 그의 거침없는 언행은 통쾌하게만 들린다.
    아마도 그만큼 공적으로 말의 자유를 누리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그는 한 수 훈계를 한다고 여기겠지만, 안하무인(眼下無人)의 언어는 단지 상대방에게 상처를 줄 뿐이라는 걸 알지 못한다.
    그는 시대와의 화해를 얘기했지만, 현실에서는 불화와 분열을 더 조장할 공산이 높다.


    둘째, 시인이 뭐 하러 선거와 정치판의 최전선에서 떠드는가?

    그는 자신이 초연한 위치에 있다고 믿지만, 박근혜 당선인의 맨 앞줄에 전사(戰士)처럼 서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다...
    …선거와 정치판에서 잘 싸우는 역할은 그와 같은 시인(詩人)이 아니어도 할 사람들이 줄을 서 있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정치에서 절제란 할 말 못 할 말 구분하고 잘사는 사람 못사는 사람 구분하는 거야. 그런 것도 없는 사람(안철수씨)이 자기 전문 영역과 정치의 관계도 모르고"라고 비판했다.
    하지만 바로 그 자신도 그런 함정에 발을 들여놓았다는 걸 깨닫지 못한다.


    셋째, ‘우파’라는 특정 정파, 특정 이념 지향자들의 환호소리에 재미를 붙여 자기 자신을 경망스런 존재로 타락시키고 있다.

    매스컴은 그를 찾고 우파 단체도 모시려고 한다.
    그의 말문이 열릴 때마다 세간의 반응은 폭발적이다.
    그동안의 고립과 소외감에서 그가 벗어날 때도 됐지 않았는가.
    정치권력으로부터 대접받는 날도 와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런 재미에 빠질수록 많은 사람이 그에 대해 가졌던 막연한 부채 의식과 경외심, 시인다운 시인에 대한 기억은 사라질 것이다….
    "노년의 김지하가 왜 저렇게 됐을까." 특정 이념과 정파의 열렬한 환호 속에서 이런 작은 목소리도 묻혀있는 것이다.


    넷째, 김지하의 정치 참여는 황석영의 정치 참여와, 그 본질이 동일한 샴쌍둥이다. 

    김지하씨가 거울 앞에 서면 그 속에는 황석영씨가 보인다.
    황씨는 작년 연말 등단 50주년을 맞았다. 나이 일흔이 됐다.
    그럼에도 그는 "만약 정권 교체에 실패한다면 프로방스 시골로 떠나 밥집이나 하겠다"고 말했으니, 열정과 가벼움은 나이와 상관없을 수도 있다.



    2. 우리는 [문화와 사상의 전쟁]을 원한다


    최보식은 "김지하의 말이 (문화와 사상의) 화해-통합이 아닌 분화-분열을 일으킨다"고 말한다.
    이것이 최보식의 김지하 비판 네 가지 중에서 제일 핵심이다.
    나머지 세 개의 비판은? 헛소리일 뿐이다.

    그렇다.
    최보식은 (문화와 사상의) 화해-통합을 찬양하지만, 우리는 분열-전쟁을 찬양한다.

    왜?
    지난 25년 동안 대한민국의 문화와 사상이, [종친떼](종북, 친북, 떼촛불의 혼합체)에 의해 지배-왜곡 당해왔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추잡하고 잔인한 문화권력으로부터의 해방을 원한다.
    이 문화권력의 전복을 원한다.
    이 문화권력의 타도를 원한다.

    그렇다.
    우리는 정신의 영역에 있어서 만큼은, 화해와 통합이 아니라 분열과 전쟁을 원한다.

    [정신의 전쟁]을 치열하게 전개해야 비로소 [생활의 평화]를 이룰 수 있다.
    [정신의 총탄]—컨텐츠—를 퍼부어야 [생활의 번영을] 달성할 수 있다.

    내 말이 극단적으로 들리는가?

    아니다.
    가장 평화스런 방법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을 뿐이다.

    최근의 예를 하나 들자.
    남조선민족해방전선(1979년 검거) 사건의 핵심 참여자였던 임헌영이 이끄는 민족문제연구소가 이번 대선을 겨냥해서 만든 <백년전쟁>이라는 영상물을 보라.

    뱀발:
    임헌영, 그는 이름을 고친 사람이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박헌영과 같은 이름으로 고쳤을까?


  • 2백만 조회를 일으킨 초대박 영상물이다.
    이승만을, [친일 깡패 정치투기꾼]으로 몰았다.
    박정희를, [미국이 기획/주도한 경제개발계획의 성과를 자신의 업적으로 찬탈한 모리배]로 몰았다.
    한마디로, 대한민국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수치스런 나라]로 규정한 것이다.

    <백년전쟁>이라는 영상물 제목 자체가 으스스하다.
    1910년 한일합방 이후 백년동안 계속되고 있는 전쟁이란 뜻이다.
    대한민국이 [친일파가 지배하는 사실상의 식민지]라는 뜻이다.
    [(비록 못 살고 가난하지만) 평양이야말로 민족의 정통성과 정기를 실현한 체제]라는 암시이다.

    [종친떼] 문화권력은 이렇게 살벌하게 우리 사회를 규정짓고 지배해 왔다. 


  • <조선일보>도 이 사정을 잘 알고 있지 않은가?
    지난해 12월 3일 김지하의 일갈 <한류 르네상스를 가로막는 쑥부쟁이>를 칼럼으로 실었던 신문이 바로 <조선일보< 아닌가!
    쑥부쟁이는 바로, [종친떼] 문화권력의 얼굴마담 백낙청을 지칭하지 않았던가!

    <조선일보>는 [종친떼] 문화권력에 대한 [정신의 전쟁]에서 탈영 중이다.
    최보식의 칼럼이 바로 이를 증명한다.

    돌아오라!
    탈영병 <조선일보>여!
    가치와 원칙을 바로 세우기 위한 [정신의 전쟁터]로 돌아오라!

    <조선일보>는 왜 탈영 중일까?
    본격적인 [정신의 전쟁]에서 주도권을 잡을 가능성이 낮다고 보기 때문 아닐까?

    <조선일보>에게는, [종친떼] 문화권력을 적당히 (그러나 결코 치명상을 입히지는 않을 정도로) 비판하면서 짐짓 ‘보수 정론지’ 이미지를 팍팍 풍기는 것—이것이야말로 가장 안전한 철밥통이다.

    이제까지의 정치판은, ‘집토끼’ 한나라(새누리)와 [종친떼] 야권 사이에, 서로 빨대를 꼽은 [양극 기생체제](兩極 寄生體制)—서로가 서로의 존재이유를 제공해 주는 체제였다.
    바로 그러듯이 이제까지의 사상-문화지형은, 뜨듯미지근한 ‘보수’ 진영과 그악스런 [종친떼] 진영 사이의 [양극 기생체제]였다.

    구역질난다.
    걷어치워야 한다.
    때려부숴야 한다.

    [정신의 전쟁] [종친떼]의 본질—진실을 경멸하고 생명번영의 길을 은폐한다는 범죄적 행태—를 폭로하는 전쟁이다.
    [정신의 전쟁]은, 진실과 생명번영을 옹호하는 [네오-르네상스]의 물고를 트는 싸움이다.

    [정신의 전쟁]
    으로 무엇이 달라질까?

    토폴로지가 바뀐다.
    하늘과 땅이 뒤집힌다.
    <백년전쟁>과 같은 흉악한 컨텐츠들이 ‘진실’이라고 선전해 온 이야기들이 거짓이며 죽음이며 사기질이라는 것이 모두 드러난다.

    이 전쟁에서는 <조선일보> 아니라 그 무엇이라도 전혀 아무런 프레미엄을 인정받지 못 한다.
    왜?

    오직 치열한, [진실에 관한 엄격]‘머리의 정직성’(intellectual integrity)만이 중요할 뿐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프레미엄을 인정받지 못 하는 거대한 전쟁이 시작되었다는 점—이것이 최보식을, 그리고 <조선일보>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이렇게 징징대는 것이다.

    “김지하!
    당신의 말은 화해와 통합이 아니라, 분열과 투쟁을 불러 일으켜!
    제발 입 좀 다물고 있어!
    응?”


    김지하처럼 화끈하고 솔직하게 진실을 이야기하는 것이 그토록 불편한가?
    <조선일보>는 입맛을 바꾸도록!
    혓바닥이 둘로 갈라진 이중화법(二重話法)을 버리고, 전투적 인민의 화법을 배우도록!

    갈릴레오가 <두 개의 우주관 사이의 대화>라는 자신의 대표작을 왜, (학문하는 사람들의 언어인 라틴어가 아니라) 시정잡배의 개상스런 언어인 현대 이탈리아 말로 썼었는지, 좀 더 고민해 보도록!

    아직도 모르겠다고?
    니체의 시 한 수를 잘 음미해 보도록.

    내 말투는 인민의 말투.
    토끼 새끼 같은 인종들이 듣기에는 좀 거칠고 뜨끈뜨끈할 거야.
    잉크 속에서 헤엄치며 노는 글쟁이들이나
    돼먹지 않은 엉터리 글을 써 갈기는 여우 같은 인종들한테는 더 이상하게 들릴걸?

    내 손모가지는 바보의 손모가지.
    바보처럼 아무 데나 마구 써 갈기지.
    바보가 써 갈기고 낙서할 수 있는
    모든 테이블과 모든 벽과 모든 공간에 재앙이 있기를!

    내 발은 말의 발.
    언덕을 오르고 계곡을 내려가지.
    뛰고 밟고, 여기 저기, 들을 넘어 다니지.
    전력으로 내뺄 땐 글쎄, 악마도 좋아서 까무러칠걸?



    3. 김지하가 박근혜 편에 선 게 아니라,

    박근혜가 김지하 편에 섰다


    최보식은 김지하가 할 말, 못 할 말 가리지 않고 떠들면서 실은 박근혜의 전위부대 역할을 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시인이 정치와 선거의 일선에 뛰어들었다고 비판한다.

    이것은 사실에 관한 날조이다.
    최근 김지하의 발언은 1975년 로터스상(Lotus Awards, 흔히 '제3세계의 노벨문학상'이라 불림) 수상 소감에서 했던 [화엄개벽의 세상, 여성이 주도하는 세상]이라는 소리와 하나도 다름이 없다.
    최근 발언은 1991년 조선일보가 게재했던 [죽음의 굿판을 걷어 치워라]라는 일갈과 조금도 틀림이 없다.

    입은 비뚤어졌어도 말은 바로 하라고 했다.

    김지하가 박근혜 편에 선 게 아니라, 박근혜가 김지하 편—혹은 [김지하가 추구하는 가치의 편]—에 선 것이다.

    그래서 이 [정신의 전쟁]이 살떨리도록 치열해 지는 것이다.
    특정 정치인, 특정 정권을 위한 전쟁이 아니라, [개인의 존엄], [진실의 옹호], [생명의 번영]을 위한 전쟁이기 때문이다.
    여성과 약자와 생명에 충성을 맹세하고 그를 지켜내려는 위한 위대한 기사도 정신(Chivalry)—김지하의 용어로는 [모심](侍)—이 그 원초적 에너지가 된 전쟁이기 때문이다.

    김지하는 [모심]에 대해, 내게 이렇게 말했다.

    여성의 우주적 위상을 달봉우리(月峰)라 한다.
    여러 가지 첫이마(初眉=원초적 태도) 중에 여성의 우주적 위상을 모시는 남성의 태도가 가장 으뜸가는 첫이마이다.

    김지하의 입장에서는, 박근혜가 이 같은 에너지에 화답할 수 있는 유일한 대통령 후보였기에 지지했을 뿐이다. ‘1천명 학살대상자 명단’ 제일 첫줄에 자신을 올린 박정희 대통령의 딸임에도 불구하고!
    혹은 딸이기 때문에 더욱 더!

    원수의 딸을 새 시대의 여성지도자로서 지지하는 행동을 통해서, 김지하는 자신을 수십년동안 잡고 있었던 원령(怨靈)들을 완전히 털어 버렸다.
    자기 자신을 넘어섰다.

    무슨 원령들이냐고?
    [이승만과 박정희]라는 두 명의 걸출한 지도자들이 위로부터 전격적으로 실행한 [근대국가의 건설] [근대문명의 풍요] [적응하지 못 한], [적응하기 거부한], [적응에 반란한] 수백만의 원령이다.

    그 찌끄레기가 앞서 말한 <백년전쟁> 같은 흉측한 동영상으로 나타난, 바로 그 원령들이다.


    4. 김지하가 재미로 우파를 지지한다고?


    김지하가 제일 듣기 싫어하는 단어가 [우파]라는 말이고 제일 경멸하는 사고방식이 좌-우 편가르기이다.
    그럼에도 최보식은 김지하에 대해 [‘우파’라는 특정정파, 특정이념을 지지한다]는 식으로 말한다.
    그야말로 깡통 같은 소리이다.

    정치 경제에 관해서 김지하는 폴라니(K. Polanyi)나 슈티글리츠(J. Stiglitz) 같은 중도좌파 성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최보식은 알지 못 하는가?
    김지하가 말하는 신시(神市) 경제란, ‘이윤 극대화’ 동기를 넘어선 시장질서에 대한 갈망이라는 것을 최보식은 알지 못 하는가?
    시장 속에서 움직이는 비영리조직에 대해 김지하는 한없는 애정을 가지고 관찰한다는 것을 최보식은 알지 못 하는가?

    모르면서 왜 상대방에 [우파]라는 낙인을 찍는가?

    김지하가 아니더라도 좌-우 구분은 아무 쓸모가 없다.
    왜? 




  • [우][좌]가 맹렬하고 선명할 때 나타나는 구원투수이기 때문이다.
    지금부터 60여 년 전 우리 선배세대는, [스탈린과 모택동의 무제한 지원을 받은 세계최강의 스탈린주의자]들과 싸웠다.
    그들은 스스로에 대해 자랑스럽게 [우파]라고 부를 자격이 있다.

    그런데 우리는?
    [인류최악의 전체주의 끝물]과 싸우고 있을 뿐이다.
    북한에서는 마르크스, 레닌, 스탈린, 모택동의 책이 사실상의 금서이다.
    오직 김일성 유일사상을 세뇌할 뿐이다.
    [북한 전체주의] [스탈린 전체주의][일본 미카도이즘](Mikadoism, 천황 혈통에 바탕한 극단적 민족주의)이 뒤섞인 [교잡종]일 뿐이다. 


  • 한마디로 좌파 역사의 그 어디에도 족보가 없는 [흉측한 전체주의 끝물]일 뿐이다.
    [북한 전체주의]를 추종 혹은 옹호하는 [종친떼](종북, 친북, 떼촛불 혼합체)가 위세를 떨치는 이유는, 그들이 순정(純正)하거나 강력해서가 아니다.
    우리 사회의 [주류제도권]-<조선일보>도 포함-이 [이익에 관해 탐욕]스럽고, [진실에 관해 비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스스로를 [우파]라 부를 자격이 없다.
    좌, 우를 찾기 전에 사회를 보다 공정하게 만들고, 진실에 관한 용기를 회복하기만 하면 [종친떼]는 쉽게 물리칠 수 있다.

    한마디로 북한이 전혀 [좌파]스럽지 못하기 때문에, 국내의 [종친떼] 역시 좌파스럽지 못하다.
    따라서, 우리는 스스로를 [우파]라 부를 수 없다.
    그러니 최보식은 김지하를 함부로 [우파]라 불러서는 안 된다.

    그와 이런 대화를 나눈 적 있다.

    “왜 그 놈의 좌파, 우파 찾아?
    지금 세상에 좌, 우가 어딨어?
    깡통빨갱이들이 무슨 좌파야?
    그 놈들이 마르크스를 한번이라도 읽었어?"

    “안 읽었죠.
    요즘은 진지하게 공부하는 사람이 없어요.”

    “근데, 마르크스에서 도둑질 해 올 수 있는 게 있을지도 몰라”

    “어떤 거요?”

    “유물론과 변증법은 버려야지.
    그 두 가지 버리고 나면 훔쳐올 게 좀 있을 거야.”

    “<부르메르 18일>(Brumaire 18th)이나 <고타강령비판>(The Critique of Gotha Program)에서는 배울 게 좀 있지요.”

    “배우는 게 아니라 훔쳐오는 거래두!
    아무튼 이 깡통빨갱이들 하구 싸운답시고 좌파, 우파란 용어를 쓰지 마.
    난 그런 구분이 정말 싫어.”


    최보식은 김지하가 우쭐한 마음에 도취되어 있다고 비판한다.
    이는 매우 무례한 이야기이다.

    그는 그 자신의 운명을 아는 사람이다.
    시인이며 전령(傳令, 소식을 전하는 사람)이 바로 그 운명이다.
    김지하는 다급하고 갑갑해서 일갈을 내지르는 것일 뿐이다.

    그는 대중의 갈채가 아니라 소수의 동지(同志) 혹은 지음(知音, 뜻을 알아주는 친구)과의 소통을 갈구할 뿐이다.

    이미 30대에 ‘밤의 대통령 김지하’라고 불렸던 사형수.
    죽어 나자빠져 있었던 탈춤, 판소리, 마당극, 전통가락을 되살려낸 문화인류학자.
    세계 최고봉의 저항 시를 썼던 시인.
    지금은 망가질 대로 망가진 몸으로 하루하루를 살아내고 있는 노인.

    삶과 죽음의 경계를 오락가락하며 살아 본 사람은 안다.
    오직 가없는 자긍심—자아의 척추—만이 그런 인생의 하중을 받아낼 수 있다.

    이런 종류의 고요하면서도 뜨거운 자긍심을 가진 사람은 결코 ‘대중의 갈채’라는 허영에 굴복하는 일이 없다. 최보식은 자신의 알량한 인격을 잣대 삼아 김지하 영혼의 깊이를 측정하려 설치지 말기를.


    5. 김지하가 황석영과 샴쌍둥이라고?


    최보식은 김지하의 정치참여가 황석영의 정치참여와 같은 차원의 일이라고 말한다.
    다시 말하자면, 박근혜와 문재인은, 얼마든지 서로 바꾸어 선택할 수 있는 후보들이었다는 소리이다.

    과연 그런가?
    나는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문재인의 핵심 기반은 [종친떼](종북, 친북, 떼촛불 혼합세력)였다.
    종북의 아이콘인 이정희가 문재인을 위해 사퇴했다.
    [떼촛불]
    의 아이콘인 나꼼수가 문재인 캠프에서 지극히 중요한 역할을 했다.

    문재인의 낮은 단계 연방제, 국가보안법 폐지, NLL 뭉개기는, 대한민국의 주춧돌을 약화시키자는 주장이다. 민주통합당이 지난 4.11 총선에서 통진당을 대거 국회에 진출하도록 만들면서 합의했었던 정책에는 한미FTA 백지화와 강정해군기지 전면 재검토가 들어 있다.

    이번에 50대가 90%나 투표했던 것은, 바로 문재인 진영의 이 같은 빌어먹을 풍조에 대해 철퇴를 내리기 위함이었다.

    지금 민주당이 해결해야 할 가장 중요한 과제는 바로 이 같은 해괴망측한 편향성을 철저히, 전면적으로 반성하는 것이다.
    나아가 [종친떼]와의 모든 연결 및 연대를 과감하게 끊어버리는 것이다.

    사정이 이러함에도 문재인에 반대하고 박근혜를 지지한 것이, [본질적으로 대동소이한 여러 정파 중의 하나]를 선택한 행위이고, [본질적으로 대동소이한 여러 이념 중에 하나]를 골라잡은 행태인가?

    한국의 정치 토폴로지를 이렇게 안이하게, 게게 풀린 눈으로 바라보는 것은 최보식 개인의 관점인가?
    아니면 <조선일보> 전체의 관점인가?
    이렇게 차별성, 변별성을 뭉갬으로써 최보식은 (혹은 <조선일보>는) 무엇을 얻고자 함인가?

    황석영은 밀입북해서 김일성의 비위를 얼마나 잘 맞췄는지 ‘민족의 재간동이’라는 애칭을 들었던 사람이다. 평양에서 극진한 환대를 받으면서 대한민국을 공격하고 헐뜯는 작품을 썼던 사람이다.
    홍명희의 ‘임꺽정’과 너무나도 유사한 서사구조를 가진 ‘장길산’을 제외한다면, 1970년대 초반까지 썼던 작품들 외에는 아무런 이렇다 할 창의성을 보이지 못 한 ‘그저 그런’ 작가이다.


     

  • 최보식은 도대체 무슨 생각에서 황석영을 김지하와 동급에서 비교하는가?
    무식한건가?
    배알이 뒤틀린 건가?

    최보식에게, 진짜 ‘우파 천재 작가’ 한 명을 알려주고 싶다. 
    김지하를 굳이 다른 사람과 비교하고 싶다면 이 작가와 비교하도록.

    남아프리카공화국 태생의 로이 캠벨(R. Campbell)이다.
    런던에서 20대 초반에 엄청 떴던 시인이다.
    당대의 문호 엘리엇(T. S. Eliot)이 끔직이 아꼈던 사람이다.
    '현대의 바이런'이라 불렸다.
    그의 보들레르(C. Baudelaire) 시집 번역은 지금도 명번역으로 꼽힌다.

    그런데 그만 당시 영국의 문화권력을 움켜쥐고 있던 버지니아 울프(V. Woolf)의 ‘블룸즈베리 클럽’과 대판 싸움을 벌였다.
    블룸즈베리 멤버들의 문란한 양성애를 혐오했던 그는, ‘그룹섹스 하는 년/놈들’이라는 비판을 서슴지 않았다. 문화권력과의 싸움 때문에, 그만 이 천재 시인의 앞길이 망쳐졌다.

    게다가 1930년대의 스페인 내전에서 그는 프랑코 편에 자원 입대해서 싸웠다.
    지식층 대다수가 인민전선의 편에 입대해서 싸웠던 당시의 풍조와는 완전히 반대되는 행보였다.

    문화권력 및 시대 풍조에 대해 정면으로 맞섰던, 남아프리카 공화국 출신의 이 천재시인은, 영문학사에서 거의 이름을 남기지 못 하고 쓸쓸히 죽었다.


    6.  맺 음


    김지하는 거의 반평생 동안 [종친떼] 문화권력과 끊임없는 긴장과 갈등 속에서 살은 사람이다.
    만약 정신병에 걸리지 않았더라면 그 문화권력을 일찌감치 개박살냈을 사람이다.

    이제 그는 [종친떼] 문화권력에 대한 [정신의 전쟁]에 있어 엄청난 아이콘, 상징이 되었다.
    최보식 같은 사람이 아무리 징징대고 헐뜯어도 이 전쟁은 멈추기는커녕 점점 더 강화된다.
    김지하라는 아이콘의 무게와 의미도 점점 더 커질 것이다.

    이 전쟁은 <조선일보>와 같은 제도권의 거대 미디어에게 다음과 같은 곤혹스런 이야기를 던진다.
    이 곤혹과 불편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것이 바로 이번 최보식의 글이다.

    [정신의 전쟁]에 참여할래?
    참여해도 별다른 프리미엄은 없어.
    그냥 다 함께 충심으로 싸워나가는 전쟁일 뿐이야.

    싫다고?
    예전과 같은 양극 기생체제에서 누렸던 절대적인 영향력을 보장해 달라고?
    미쳤어?

    그런 건 없거든.
    여기는 그냥 전사(戰士)의 대지일 뿐이야.

    두리번거리지 마.
    양극 기생체제는 어차피 다 깨져나가고 있어.
    [종친떼]를 적당히 (그러나 죽지 않을 정도로) 쥐어패기도 하고, [주류제도권]의 탐욕과 비겁을 적당히 꾸짖기도 하면서 절대적 지배자로 군림할 수 있었던 시절은 끝났거든.

    마음 비우고 그냥 와!
    이곳! [정신의 전쟁터]로!”



  • 박성현 저술가/뉴데일리 논설위원. 서울대 정치학과를 중퇴하고, 미국 조지워싱턴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1980년대 최초의 전국 지하 학생운동조직이자 PD계열의 시발이 된 '전국민주학생연맹(학림)'의 핵심 멤버 중 한 명이었다. 그는 이 사건에 대해 재심을 청구하지도 민주화보상법에 따른 보상도 일체 청구하지 않았다. 
    한국일보 기자, (주)나우콤 대표이사로 일했다.
    본지에 논설과 칼럼을 쓰며, 두두리 www.duduri.net 를 운영중이다.
    저서 : <개인이라 불리는 기적> <망치로 정치하기>
    역서 : 니체의 <짜라두짜는 이렇게 말했지>
    웹사이트 : www.bangmo.net
    이메일 : bangmo@gmail.com
    페이스북 : www.facebook.com/b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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